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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동물원]가장 위험한 설치류 산미치광이

조선일보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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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동물원]가장 위험한 설치류 산미치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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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국방성 "美핵잠 부산 입항, 군사적 긴장 고조·엄중한 정세불안정 행위"
'위험한 짝짓기' 속 과천서 두 마리 태어나
날카로운 가시로 때문에 천적들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애완동물 인기높은 고슴도치와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1월 초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야행관. 칠흑 같은 어둠 속 우리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간혹 갸르릉하는 울음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몸길이 60㎝짜리 산미치광이 암수 한 쌍이 짝짓기 중이었다. 등과 허리부터 꼬리에 이르는 몸통이 날카로운 가시로 뒤덮인 산미치광이의 짝짓기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자칫 자세가 흐트러지기라도 할 경우 뒤엉키면서 상대방을 가시로 찌를 수도 있다. 사랑이 자칫 파국으로 끝날수도 있는 것이다.
포큐파인 또는 호저라고도 불리는 산미치광이. 최대 35센티미터까지 자라는 가시가 든든한 무기가 돼준다. /서울대공원 제공

포큐파인 또는 호저라고도 불리는 산미치광이. 최대 35센티미터까지 자라는 가시가 든든한 무기가 돼준다. /서울대공원 제공


정성들여 벼린 듯 뾰족한 끝을 가진 산미치광이의 가시는 몸길이의 절반을 넘는 35㎝까지 자란다. 이 ‘위험한 사랑’의 결실로 지난 4월 15일과 17일 이틀 간격으로 새끼 두 마리를 순산했다. 채 10㎝가 안되는 자그마한 몸뚱아리에 새끼 동물 특유의 핏빛을 띄고 있지만 몸에 난 가시가 영락없이 어미와 아비를 빼닮았다.

산부인과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아빠에게 먼저 보여주고 가위로 탯줄을 자를 수 있도록 해주곤 한다. 그러나 새끼들의 아비인 수컷은 세상에 나온 자식들을 바로 보지 못하고 격리당했다. 과거 서울대공원에서 수컷 산미치광이가 갓 태어난 자신의 2세를 그 자리에서 먹어치운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다. 실제로 야생에선 수컷 산미치광이가 어린 동족을 포식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지난 4월 서울대공원 야행관에서 태어난 새끼 산미치광이의 출산 직후 모습. 짧긴 해도 등에 빳빳한 가시가 보인다. /서울대공원 제공

지난 4월 서울대공원 야행관에서 태어난 새끼 산미치광이의 출산 직후 모습. 짧긴 해도 등에 빳빳한 가시가 보인다. /서울대공원 제공


야행관 김진수 사육사는 “다행히 적응 기간을 거쳐서 무리에 합사됐고, 지금은 부모와 자식, 다른 성체 등 7마리가 오손도손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포큐파인(pocupine), 또는 호저(豪猪)라고도 불리는 산미치광이는 커다란 덩치와 몸을 뒤덮은 가시 때문에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설치류로 알려져있다.

적이 접근해오면 가시를 곧추세우고 공격 태세를 갖춘다. 산미치광이의 가시는 사실은 털의 일부가 딱딱하게 변화한 것이다. 날카로운 데다 건드릴 경우 쉽게 빠진다. 독성이 있지는 않지만, 한 번 찔리면서 깊은 상처를 입을 경우 세균이 번식하면서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게 된다. 독화살, 독침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한 국립공원에서 산미치광이를 잡아먹으려던 표범이 되려 얼굴에 곳곳에 가시가 박히는 공격을 당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와일드카드홈페이지(www.wildcard.co.za)캡처

아프리카의 한 국립공원에서 산미치광이를 잡아먹으려던 표범이 되려 얼굴에 곳곳에 가시가 박히는 공격을 당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와일드카드홈페이지(www.wildcard.co.za)캡처


실제로 아프리카에서는 굶주린 맹수들이 산미치광이를 먹잇감으로 노리고 공격했다가 비명횡사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다. 대형 뱀인 비단구렁이가 산미치광이를 통째로 삼켰다가 가시 등이 장기에 꽂히면서 폐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표범도 산미치광이를 공격했다가 날카로운 가시에 찔렸다 시름시름 앓다 죽은 사례도 숱하게 보고돼있다.


산미치광이는 맹수 뿐 아니라 동물원 사육사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다. 예민하거나 위협을 느끼면 누워있던 털이 빳빳하게 선다. 공격 대상을 노려보고 전진 공격할때만 있는게 아니라, 성큼성큼 뒷걸음질하며 후진 공격을 할 때도 있다. 이 후진 공격을 할 때가 특히 섬뜩하다고 동물원 사육사들은 말한다.

온몸이 가시로 뒤덮여있다는 점 때문에 산미치광이는 종종 고슴도치로 오해받기도 한다. 야행관을 찾은 관객들이 “와, 고슴도치다”라고 외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제로 비슷한 생김새지만, 쥐(설치류)의 족속인 산미치광이는 두더지 등이 속한 식충류로 분류되는 고슴도치와 친척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동물이다.
산미치광이와 종종 혼동되는 고슴도치. 작고 귀여운 생김새때문에 애완동물로도 인기가 높다.  /세이헤지호그닷컴 홈페이지(www.sayhedgehog.com) 캡처

산미치광이와 종종 혼동되는 고슴도치. 작고 귀여운 생김새때문에 애완동물로도 인기가 높다. /세이헤지호그닷컴 홈페이지(www.sayhedgehog.com) 캡처


몸길이는 20~30㎝로 고슴도치가 훨씬 작다. 고슴도치는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생김새 때문에 애완용으로 개량돼 요즘은 반려동물로도 제법 인기가 있다. 인기 게임·애니메이션·영화 캐릭터인 ‘바람돌이 소닉’도 산미치광이가 아닌 고슴도치다. 고슴도치가 전반적으로 산미치광이에 비해 둥글고 순하고 길들여진 이미지지만 먹성은 정반대다. 산미치광이가 주로 풀뿌리나 줄기, 열매 등을 먹고 어쩌다 제 새끼를 잡아먹는 근본적 채식주의자인 반면, 고슴도치는 벌레와 지렁이, 새알 등을 즐겨먹으면서 종종 과일 등을 곁들여먹는 천성적 육식주의자다.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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