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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유레카] 휴스턴의 ‘속임수’와 기부 / 김창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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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인 훔치기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메이저리그 휴스턴 애스트로스 선수들이 코로나19 피해 복구 기부에 나섰다. 외야수 조지 스프링어가 지난 15일 홈구장 일용직 노동자를 위해 10만달러를 낸 데 이어 유격수 카를로스 코레아가 28일 50만달러 이상의 의료기기를 지원했다. 스프링어의 기부는 메이저리그 선수 가운데 처음이었다. 내야수 알렉스 브레그먼과 투수 랜스 매컬러스 주니어도 지역 푸드뱅크에 성금을 내는 등 동참했다.

휴스턴 선수들의 ‘선행’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는 이들이 한달 전만 해도 야구팬의 ‘공공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휴스턴은 월드시리즈 우승 해인 2017년과 이듬해인 2018년 안방 구장에서 전자장비로 상대 팀의 사인을 훔친 사실이 드러나면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5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구단은 단장과 감독을 경질하는 등 강수를 뒀다.

하지만 선수 징계는 없었고, 온라인 야구게임 참가자들이 구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불씨가 살아 있는 상태다. 다른 종목의 선수까지도 휴스턴 선수들을 비난했고, 시즌 중 상대팀 투수들의 위협구에 휴스턴 선수들이 가장 많이 노출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현대 스포츠에서 페어플레이에 대한 주문은 매우 강력하다. 도핑이나 폭력은 일절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페어플레이와 더티플레이의 경계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스포츠는 룰에 따라 진행되지만, 상대방을 ‘속이는’ 데 뛰어난 선수나 팀이 이긴다. 텔레비전 상업주의는 격렬함과 폭력성을 유인한다. 1등과 2등의 상금 격차는 승자 제일주의 문화를 부추기고 있다. 고지대에 적응한 케냐의 마라톤 선수들이 저지대 선수들보다 월등한 산소 공급 능력을 보이는 것을 자연적 도핑으로 본다면 더 복잡해진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팬들의 소송에 대해 “부정행위는 스포츠의 일부”라며 휴스턴 구단을 옹호했다. 이런 인식은 현대 스포츠가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올림픽 정신과는 이질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휴스턴 선수들의 기부 행위는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코로나19의 파도를 넘어 메이저리그의 문이 열리면 휴스턴 선수들에 대한 야구팬들의 태도가 드러날 것 같다.

김창금 스포츠팀장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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