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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이슈 [연재] 경향신문 '해외축구 돋보기'

[해외축구 돋보기]주저앉은 아스널과 오바메양…아름답지만 잔인한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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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아스널 오바메양(앞)이 28일 영국 런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2020 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32강 올림피아코스와의 홈 2차전에서 발리 슈팅으로 0-1에서 1-1이 되는 동점골을 넣고 있다. 런던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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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니면 누가 아스널을 구한단 말인가. 외질은 또 ‘투명인간’으로 변했고, 통계업체 스쿼카 풋볼에 따르면 페페는 32번이나 상대에게 소유권을 넘겨줬다. 연장 후반 8분 오바메양의 환상적인 바이시클킥이 터졌을 때 아스널 팬들은 ‘그러면 그렇지’라며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거렸을 것이다. 리그에서만 17골을 터뜨리며 아스널을 혼자 이끌다시피 한 오바메양은 28일 열린 올림피아코스와의 유로파리그 32강전 2차전에서도 아스널의 슈퍼맨이 될 터였다. 골 장면도 아름다웠다. 두고두고 아스널 팬들에게 전설로 회자될 만큼. 외질이 오른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가 올림피아코스 선수의 머리를 맞고 문전 왼쪽에 있던 오바메양 쪽으로 날아왔다. 1m87의 장신인 오바메양은 몸을 옆으로 눕히며 공중으로 뛰어오른 뒤 날아오는 볼을 다리를 교차시키면서 정확하게 차넣었다. 10점 만점에 10점을 줘도 될 만큼 완벽한 동작. 제대로 발등에 얹힌 볼은 그대로 올림피아코스 골네트를 꿰뚫었다.

1~2차전 합계 스코어는 2-1로 다시 아스널의 리드. 남은 시간은 7분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명언은 아스널을 위한 게 아니었다. 연장 종료 1분을 남기고 오른쪽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엘 아라비가 넘어지며 찬 것이 아스널 골문을 갈랐다. 합계 스코어 2-2. 하지만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이날 2골을 터뜨린 올림피아코스에 16강 티켓이 다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반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지막 공격에 나선 아스널에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올림피아코스 수비수가 헤딩으로 걷어낸다는 게 같은 편 몸에 맞고 오바메양 앞에 떨어졌다. 골문과의 거리는 약 4~5m. 골문 뒤에 있던 아스널 팬들이 골을 직감하며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서 나온 골이 난도 10짜리였다면 이번 골은 난도 2~3의 평범한 슈팅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노마크에서 오바메양이 찬 게 오른쪽 골문을 비켜갔다. 그 실축과 함께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차지할 수 있었던 가장 유력한 길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현재 9위인 아스널은 리그 4위 안에 들어야만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 있다.

오바메양은 무릎을 꿇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7분 전의 환희는 한순간에 악몽으로 돌변했다. 경기가 끝나고 위로를 받을 때 오바메양은 넋이 나가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축구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잔인한 얼굴을 할 때도 많다. 아스널과 그 팬들은 이날 축구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느끼고 전율해야 했다. 누가 이런 드라마를 썼는지, 왜 악몽을 꾸어야만 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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