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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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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 만화덕후에서 아카데미 4관왕까지, 봉준호의 52년 인생 역주행[SS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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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지난 2017년 6월 영화 ‘옥자’ 레드카펫 행사에서 봉준호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안은재 인턴기자]조용한 만화덕후는 어떻게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최초의 한국인 감독이 될 수 있었을까.

순둥순둥한 얼굴과 시종 따뜻하고 겸손한 태도는 감독보다 학자가 어울리는 봉준호, 영화를 좋아해 시나리오 작가 겸 조연출로 충무로에 입성했으나 월급 20만 원 남짓한 돈을 벌며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고, 감독 입봉작 ‘플란다스의 개(2000년)’는 누적 관객 수 5만7469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을 기록하며 흥행참패했다.

여기서 ‘마침표’를 찍었다면 오늘의 봉준호는 없었을 터. 그로부터 딱 20년이 지난 9일(현지시간) 봉준호 감독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싹쓸이하며 세계가 주목하는 거장으로 우뚝 섰다.

자연인 봉준호와 ‘봉테일’ 봉준호는 어떤 시간을 거쳐 세계가 사랑하는 ‘디렉터 봉’이 되었는지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 본인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52년 인생을 따라가 봤다.

가족이 본 봉준호-책을 좋아하던 조용한 아이

어린 시절 봉 감독은 디자인을 전공한 아버지의 서재에서 다양한 책을 읽으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그의 아버지 故 봉상균 영남대 교수는 1세대 그래픽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인 봉 감독의 형 준수 씨는 “아버지가 미대 교수님이셔서 서재에는 시중에 없던 서양 책이나 영화, 건축, 디자인 관련 책이 많았다”면서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 문학, 음악을 다 좋아했다”고 전했다.

봉 감독의 어머니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구보 박태원 선생의 딸이기도 하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봉 감독이 영화를 한다고 했을 때 그의 부모는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라”며 격려해주었다.

연성대 교수로 재직 중인 봉 감독의 누나 지희 씨는 “어린 시절 준호는 조용하고, 말수가 없었고, 느렸다. 공부는 굉장히 잘하고, 리더십도 있었지만, 특별히 끼가 있다거나 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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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제 5회 미쟝셴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봉준호 감독. 스포츠서울DB



◇ 스무 살의 봉준호-사람이라는 수천 개의 세계를 체험했던 날들

영화를 좋아했지만 연극영화과 대신 연세대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여파로 민주화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서울에서 세계인의 스포츠축제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서적에 따르면 그는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지 않았다고 해서 영화감독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봤다. 나는 영화를 전공하는 것보다 인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영화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게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그는‘노란문’이라는 영화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 대학생활 동안 그는 학창시절에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삶을 폭넓게 경험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그의 영화 속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구현됐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우(최우식 분)의 고액과외 아르바이트도 그의 생생한 경험담에서 출발한다. 그는 “대학 때 남자 중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애랑 놀다가 두 달 만에 잘렸지만. 하하. 철문을 삐그덕 열면 정원이 나오는 고급 복층 빌라였다. 2층에 사우나도 있고 신기했다. 처음 사모님 면담 때 느낌이나 대리석 바닥의 넓고 싸한 촉감 등이 참고가 됐다”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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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은 만화광으로 직접 그리는 것도 즐겼다. 왼쪽은 봉 감독이 연세대 재학시절 ‘연세춘추’에 연재한 만화, 오른쪽은 봉 감독이 직접 그린 ‘기생충’ 원본 스토리 보드.



◇열혈 만화덕후, 머릿속 세계를 스크린에 담다

그는 유명한 만화광인 데다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도 즐긴다. 학창시절 교내신문 ‘연세춘추’에 한동안 ‘연돌이와 세순이’라는 제목의 만평을 연재하기도 했다.

대학 등록금 문제와 수강신청 등 대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재치있게 만화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영화를 만들 때도 각본을 직접 만화 콘티(카메라 앵글까지 구현한 촬영용 대본)로 그려낸다. ‘기생충’에서 기우 역을 맡은 배우 최우식은 “모든 것은 봉 감독님의 머릿속에 다 있다”면서 “아이패드로 콘티를 만화처럼 그리는데, 동작 하나하나까지 디테일하게 다 들어가 있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극심한 생활고, 영화 포기하려 했을 때 잡아준 아내 정선영

누적 관객 수 525만 명을 동원한 흥행작 ‘살인의 추억(2003년)’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 봉준호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지난 10일 특별 편성된 MBC ‘감독 봉준호’에서 봉 감독은 “1995년 결혼해 ‘살인의 추억’ 개봉까지 굉장히 힘들었다”면서 “대학 동기가 집에 쌀도 갖다 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영화를 포기할 생각은 안했느냐”는 질문에 “막판에는 솔직히 아슬아슬했다. 98년도인가, 아내(정선영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올 한해 1년만 달라고 했더니 ‘그동안 모아둔 돈이 있으니 간신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좋다. 못 먹어도 고’라는 마음으로 영화에 올인했다”고 털어놓았다.

흥행에서 실패했던 데뷔작 ‘플란더스의 개’를 제작한 우노필름에서 다시 한 번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살인의 추억’은 소품 하나하나까지 치밀하게 짜여진 수작으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별명 ‘봉테일’이 탄생한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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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오른쪽)이 지난 1월 25일 개최된 제 72회 미국감독조합상 시상식에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단상에 오르자 흥분한 얼굴로 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미국감독조합상 시상식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의 ‘성덕(성공한 덕후)’ 봉준호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던 시절부터 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

9일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봉 감독은 함께 후보에 오른 ‘아이리시맨’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이 영화의 지침이었다며 영광을 돌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 현대영화의 거장으로 알려진 마틴 스코세이지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유일하게 제 목소리를 내온 작가주의 감독으로 대표작으로는 ‘분노의 주먹’, ‘비열한 거리’ 등이 있다.

‘쿠엔틴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랑하고 아끼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봉 감독은 지난 달 25일 미국감독조합상 시상식에서 타란티노 감독이 단상에 오르자 들뜬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공개되며 ‘성공한 덕후’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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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첫 흥행작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왼쪽)와 김상경. 출처|영화스틸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데 가장 섬세한 그는 ‘봉테일’

봉 감독은 인덕이 많은 사람 중 하나다. 성공한 감독으로서 누리는 행운 보다는 함께 일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쌓아온 인프라다.

봉 감독의 영화인생을 함께 구축해온 배우 송강호와의 인연도 작은 배려에서 시작됐다. ‘살인의 추억’의 성공은 사실 젊은 무명 감독의 손을 잡아준 송강호의 캐스팅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강호는 한 인터뷰에서 무명의 연극배우 시절 조연출이었던 봉 감독과 처음 만났던 일화를 공개했다. 그는 “보통 영화 오디션을 보러가면 그쪽도 내가 필요해서 연락을 하는건데, 나중에 결과가 어찌되었는지 가타부타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모텔선인장(1997년)’ 조연출이었던 봉 감독이 나에게 장문의 음성메시지를 남겨놨더라. 정말로 예의바르고 진심을 다해 장문의 음성을 남겼는데 참 인상이 깊었다”고 말했다.

그 배려와 고마움을 기억했던 송강호는 봉 감독이 ‘살인의 추억’의 주인공 박두만 역을 제안했을때 두말없이 승낙했다. 두사람의 인연은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괴물(2006년)’ ‘설국열차(2013년)’, 그리고 ‘기생충(2019년)’에 이르기 까지 20여년간 굳건했다.

스태프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그의 태도는 ‘봉준호표 영화’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고, 외국어영화로는 사상최초로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수상한 감독 반열에 그를 올려놓았다.
eunj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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