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내용물이 바뀌면 담아내는 그릇도 바뀌는 게 세상의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를 등지고 애써 엇길로 빠지고 있는 대한민국 체육계의 현실을 목도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한국 체육은 지난 2016년 지형이 요동치는 패러다임 시프트를 단행했다. 분절된 엘리트체육과 생애체육을 한데 모으는 체육단체 통합이 바로 그것이다. 뿌리와 전통,그리고 사회적 배경이 다른 두 분야의 체육을 한데로 묶어내는 체육 생태계의 질적 변화는 많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했던 사안이었다. 당시 현장에서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엄청난 간극과 괴리를 지닌 정책적 무리수”라는 반발이 거셌지만 이미 정부는 궤도를 설정한 듯 새로운 관치체육의 전형을 보여주며 우격다짐식으로 밀어붙였다.
정부와 정치가 손을 잡고 단행한 체육단체 통합에 기존 체육계는 강하게 저항했지만 이유야 어찌됐건 통합 대한체육회는 2016년 어럽사리 첫 발을 내디뎠다. 지난 1920년 조선체육회 출범을 모태로 삼는 대한체육회가 새로운 100년의 밑그림을 꼼꼼하게 그려야 할 시점에 체육단체 통합을 또다시 끄집어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패러다임 시프트라고 불릴 만한 거대한 변화를 단행했건만 한국의 체육 시스템은 아직도 엘리트체육 육성에만 신경쓰는 과거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육단체 통합이라는 정책에 대한 과오를 따지기 이전에 엘리트체육과 생애체육이 한데 어울리고 상생하는 새로운 체육 생태계의 도래는 시대의 준엄한 요구였고, 따라서 체육계는 바뀐 체육 생태계에 부합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데 온힘을 기울였어야 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에도 체육계는 새로운 체육 생태계에 걸맞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엘리트체육 중심의 전통 시스템에 머물러 있다. 엘리트체육과 생애체육이 한데 어울리고 상생하는 새로운 체육 생태계에 적합한 시스템은 무엇일까. 경기력에 따라 팀을 수직계열화하는 디비전 시스템(division system)이 그 답이다. 체육단체를 통합한 지 4년이 흘렀지만 대한체육회 산하 61개 정회원종목 단체 가운데 디비전 시스템을 도입한 단체는 과연 몇이나 되는지 묻고 싶다.
단언컨대 단 한 종목도 없다. 이러한 현상은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는 물론 한국 체육행정을 총괄하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가 아직도 체육에 대한 냉정한 진단과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엘리트체육 대 반엘리트체육의 진영으로 나뉘져 이전투구만 거듭하고 있는 체육계나 철학과 전문성이 결여된 채 정치와 체육현장 사이에서 눈치만 살피는 문체부를 보고 있노라면 선장을 잃고 표류하는 난파선을 보는 듯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체육의 국제경쟁력은 그 어떤 시대라도 포기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라는 게 필자의 확신이다. 다만 압축성장시대의 승리지상주의와 공정한 과정속에서 추구되어야 할 바람직한 국제경쟁력을 혼돈해서는 곤란하다. 국제대회 성적에 함몰돼 소홀했던 인권문제나 그동안 만연됐던 체육계의 부정부패는 더이상 관행과 특수성이라는 변명으로 통용되던 시대가 지났다.
체육의 국제경쟁력은 여전히 포기되어서는 안될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이를 부정하거나 폄훼하는 자들은 머리가 아둔하거나 아니면 용기가 없거나,이 둘 중의 하나다. 그런 점에서 생애체육과 엘리트체육이 서로 상생하고 어울리는 새로운 체육 생태계에서도 충분히 국제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을 육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 또한 그 믿음이 현실에서 꽃피우기 위해선 엘리트선수를 육성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절실하다. 그 선순환의 생태계를 만드는 뼈대는 경기력에 따라 팀을 수직 계열화하는 디비전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엘리트체육에 편중된 과거의 시스템에서 스포츠클럽으로 대변되는 생애체육을 한데 아우르는 새로운 체육의 틀인 디비전 시스템 도입은 현 단계 체육계의 가장 시급한 숙제다.
경기력에 따라 팀을 수직 계열화하는 디비전 시스템 도입을 가로막는 장벽은 크게 두가지다. 우선 엘리트체육의 저항을 넘어서야 하며,책임성을 묻기 힘든 느슨한 체육행정 또한 디비전 시스템 도입을 가로막는 또 다른 벽이다. 엘리트체육계가 디비전 시스템을 꺼리는 이유는 이 제도가 기존 체육계의 밥그릇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 탓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발상은 우물안 개구리의 좁은 식견에 다름 아니다. 다양한 수종이 한데 어우러지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야 먹을 거리가 훨씬 더 많이 생길 수 있다는 의식의 전환이 아쉽다. 느슨한 체육행정은 이 참에 혼쭐을 낼 필요가 있다. 문체부~대한체육회~종목단체로 이어지는 한국 체육의 행정 구도를 놓고 볼 때 일이 다소 까다롭고 힘들면 하위 체계로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가 볼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시대와 제도가 바뀌면 변화에 걸맞는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게 마땅하다. 당연했던 그 길을 애써 외면한 지가 무려 4년이나 됐다. 패러다임 시프트라고 불린 체육단체 통합은 왜 단행했는가. 원초적인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선 조속한 디비전 시스템 도입 외엔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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