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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경향신문 '베이스볼 라운지'

[베이스볼 라운지]드림즈 백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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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화제의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드림즈 전력분석팀장 유경택은 전력분석원 면접 때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이게 야구에 도움이 됩니까.”

팀장이 말한 ‘이것’은 세이버메트릭스라 불리는 야구 통계 분석 기법이다. ‘미국 야구 연구 모임’을 뜻하는 SABR에 ‘계량 분석’을 뜻하는 metrics가 합쳐진 말이다. 타율, 평균자책 등 플레이에 기반한 기존 통계를 뛰어넘어 보다 더 상세한 분석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찾는 노력들을 모두 합한다. 타율은 안타를 타수로 나누기만 하면 되지만, 몇몇 세이버메트릭스 통계 기록은 상당한 수학적 고려가 필요하다. 계산에 집어넣어야 할 항목과 요소가 한없이 늘어나는 경우도 많다. 그럼, 유 팀장의 말대로 이게 야구에 도움이 될까.

야구의 목적은, 아니 야구팀의 목적은 일단 ‘승리’다. 야구규칙 1조 2항은 ‘각 팀의 목적은 상대팀보다 많이 득점하여 승리하는 데 있다’고 정한다. 세이버메트릭스를 외로 꼬고 보는 시선에는 ‘이기는 데 도움이 되냐’는 질문이 담겼다.

숫자는 곧장 승리로 연결되지 않는다. 3할 타자라도 아주 중요한 이번 타석에서 적시타를 때릴 확률은 30%에 그친다. 아무리 정교한 숫자를 들이대더라도 플레이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숫자로 표현하기 힘든 선수들의 역할이다. 그래서 유 팀장은 “숫자 뒤에 가려진 것들이 엄청 많아요”라고 설명한다.

오히려 세이버메트릭스는 승리에 ‘행운’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 연구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방망이에 맞은 타구가 안타가 될지 여부는 BABIP(인플레이 타구 타율)라는 ‘운’에 달렸고, 득점과 실점의 차이로 승률을 예측하는 ‘피타고리안 승률’ 역시 운의 존재를 증명한다. 승리는 그 ‘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경험 많은 ‘선출’들의 ‘감’에 달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결과는 그 결과를 만들어낸 최종 분기점의 선택 하나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결과를 향하는 동안 수많은 분기점의 선택이 모인 결과다. 세이버메트릭스가 도움이 되는 순간은 승리를 향한 결정적 순간이 아니라 승리를 위한 준비의 시간들이다. 숫자는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을 향한 움직임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드림즈가 수년간 계속 꼴찌에 머문 것은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며 제 할 일만 챙겼기 때문이다.

숫자가, 세이버메트릭스가 더 큰 힘을 내는 순간이 있다. 방향뿐만 아니라 노력의 목표도 제시한다. ‘1000번의 스윙’ 대신 효율적인 타구속도, 각도를 바로 보여주는 훈련으로 바뀌었다. 어떤 타구를 만들어내는 스윙이 효과적인지 숫자와 이미지로 뚜렷한 목표를 만든다. ‘100개의 투구’보다 회전수와 방향, 공의 궤적을 확인하는 훈련이 더 효과적이다. 승리를 바로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방향과 목표 설정을 통해 승리 확률을 높이려는 선수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

그런데 세이버메트릭스의 진짜 큰 힘은 방향과 목표 너머에 있다. 숫자는 편견을 제거하는 힘을 지녔다. 덩치가 큰, 야구 잘하게 생긴, 상위 지명된, 어느 학교를 나온, 누구의 아들(또는 조카) 어쩌고 하는 모든 수식어를 지워버린다. 숫자는 오직 실력을 평가하고 가능성을 드러낸다. 오랫동안 봐왔지만, 야구 못하는 팀은 다들 저런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경험 많은 선출’이라는 색안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야구 잘하는 선수, 못하는 선수를 제멋대로 갈랐다. 편견을 지우지 못했다면, 다리를 쓰지 못하는 백영수가 드림즈 전력분석팀원이 되는 일도 없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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