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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스포츠서울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진보라는 신념의 강박이 부른 정선알파인경기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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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2018평창동계올림픽 정선알파인경기장에 대한 논의가 또다시 해를 넘기고 말았다. 존치냐,복원이냐. 과연 가장 지혜로운 해법은 무엇인지 아직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안타깝다. 이 논의의 본질적인 측면은 체육이나 환경 문제라기 보다는 한국 사회에 요구되는 정치적 리더십과 정책결정 과정의 문제점을 잉태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기까지 하다. 알파인경기장의 존치와 복원이라는 두 갈림길에서 합리적 선택을 내리기 위해선 이 논의를 둘러싼 맥락적 흐름과 그에 따른 이해가 필요하다. 생선 토막 치듯 존치와 복원이라는 현상적인 문제에 천착했다간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기 힘들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당시 환경단체의 극심한 반대,그게 바로 알파인경기장의 존치와 복원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게 된 가장 결정적인 배경이다.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후한 점수를 주는 국민적 지지가 절실했다. 그런 분위기속에서 환경단체의 반대는 올림픽 유치에 제동을 거는 걸림돌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2018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는 환경단체의 극심한 반대 기류를 잠재우기 위해 ‘올림픽 후 환경 복원’이라는 고육지책을 비딩파일에 집어넣게 됐다. 물론 약속은 지키는 게 마땅하나 사실 경기장 첫 삽을 뜨면서부터 복원은 안중에도 없었던 게 정확한 팩트(fact)다. 책임있는 중앙 정부 관료조차 “복원은 무슨 복원? 올림픽을 마친 뒤 스리슬쩍 경기장으로 쓰도록 해야지요”라며 존치를 기정사실화했던 발언이 지금도 필자의 기억창고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복원을 염두에 둔 건설과 그렇지 않은 건설은 하늘과 땅 차다. 결국 존치와 복원을 놓고 내려야 할 결정에는 건설 당시의 의도와 밑그림을 고려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2000억원의 건설비용에다 환경을 훼손하면서 발생한 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이를 원상 복원하자는 주장은 경제적 측면을 너무나도 무시한 순진한 발상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복원에 따른 2차 환경문제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다. 지하 매설물 등 폐기해야할 영구 시설물이 무려 7만t에 이르며 이 시설물이 또 다시 2차 환경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귀담아 들어야할 금쪽같은 조언이다.

알파인경기장에 대한 존치와 복원 문제는 누가 뭐래도 국가와 국민의 입장에서 따져보는 자세가 요구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입체적 접근이 절실하다. 종합적인 판단과 고려가 중요한 마당에 사안을 단순화시켜 선악의 이분법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는 여러모로 낭패를 보기 쉽다. 이러한 태도를 불러온 결정적 이유는 신념의 강박이 불러온 정치적 편향성 때문이라는 지적은 귀담아둘 만하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와 대회 준비는 보수정권이 담당했고,개최와 사후 활용방안 논의는 정치적 스펙트럼이 정반대인 진보정권이 떠맡으며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주장은 분명 일리가 있다. 환경과 생태복원이라는 거대담론은 진보진영의 입장에선 포기하기 힘든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이 문제는 신념의 강박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생태와 환경이라는 가치를 신봉하는 사람을 떠나 전체 국민을 염두에 두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해 그에 따른 이익이 고르게 분배되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해결방식이 아닐까 싶다.

올림픽 레거시(legacy)는 유형의 자산에 국한되는 건 아니지만 세계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활강장’으로 평가받은 정선알파인경기장은 2018평창동계올림픽 레거시로서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힌다. 2024년 유스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선 강원도가 숱한 명승부의 땀방울이 고스란히 배인 정선알파인경기장을 올림픽 레거시로 남겨놓는다면 유스올림픽 유치는 물론 올림픽무브먼트 확산에도 큰 도움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정선알파인경기장이 세계 각국의 2022베이징동계올림픽 베이스캠프로 활용된다면 스포츠산업의 새로운 지평도 열 수 있다.

시민사회의 영역이 확대되고 그에 따른 이해관계가 복잡다단해지면서 공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책임윤리는 더욱 중요해졌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가 주창한 책임윤리는 행위의 결과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행위의 동기에 포커스를 맞추는 심정윤리가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도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결과까지 좋아야 하는 책임윤리는 공직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이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특히 공직자의 책임윤리는 진보정권에서 더욱 강조되어야 할 적극적인 윤리에 다름 아니다. 진보정권은 살아움직이는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가치와 명분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서 기대를 모았던 진보정권이 막상 권력을 잡으면 아마추어 정권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실패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현실정치의 살아숨쉬는 날 것을 흡수하고 이를 다양한 정책적 틀로 묶어내야 비로소 진보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소신이다. 현실을 도외시한 무력한 이상주의는 진보정권이 극복해야할 숙제라는 사실은 역사가 전해준 명징한 교훈이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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