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체육도 두 동강이 났다. 한국 체육이 유사이래 둘로 갈라진 건 아마도 처음일 듯 싶다. 하기야 한쪽에서 대놓고 총을 쏘고 있는 판에 넋놓고 당할 사람은 없기에 사달이 났다. 민·관주도로 출범한 스포츠혁신위위원회(혁신위)에 맞서 최근 선진체육을 위한 체육인연대(선체연)라는 단체가 출범했다. 혁신위가 엘리트체육의 가치를 폄훼하며 한국 체육의 새로운 판짜기를 위해 맹공을 퍼부은 데 대한 반작용으로 출범한 게 바로 선체연이다. 정치를 등에 업은 혁신위의 기세등등한 밀어붙이기가 철학의 부재와 논리의 결여로 제동이 걸리자 선체연이 체육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고자 조직을 꾸렸다.
체육 현장이 두 개의 진영으로 갈라진 건 이례적이다. 결과적으로 엘리트체육 대 반 엘리트체육의 구도로 진행되고 있는 이 싸움의 깊은 속살을 파헤쳐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한 전략을 짠 일단의 그룹이 포진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확신이다. 정치를 등에 업은 이들의 우격다짐식 밀어붙이기가 결국 체육계를 진영의 논리로 갈라놓은 결정적 배경이 됐다.
혁신위의 밀어붙이기에 수수방관하던 체육계가 선체연이라는 단체를 출범시킨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많은 체육인들이 경쟁이라는 스포츠의 본질적 가치를 무시하고 신념의 과잉 탓인지 편향된 시각으로 체육에 접근한 혁신위의 태도를 마뜩잖게 여겼기 때문이다. 선체연은 “혁신위 배후 세력이 체육개혁을 앞세우고 있지만 이들의 정치적 의도와 셈법이 밖으로 알려진 명분과 너무나 동떨어져있다”면서 “그 허상을 깨기 위해 치열한 논쟁을 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향후 벌어질 두 단체의 힘겨루기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다.
최근 한국 체육은 혼돈, 그 자체다. 정치권이 주도하고 정부가 뒤를 받치며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정책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책이 시대와 사회를 제대로 이끌고 있다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오히려 대다수의 체육정책이 시대를 역행하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 그러한 정책 양산에는 핵심그룹이 존재하고 있고,여기에 정치권력까지 가세했다. 이들은 엘리트체육을 기반으로 굳건한 아성을 구축하고 있던 대한체육회를 흔들어놓기 위해 제 1단계 작전을 짰다. 바로 3년 전 단행한 체육단체 통합이다. 분절된 체육을 한데로 모은다는 거창한 명분 아래 단행된 국민생활체육회와 대한체육회의 통합은 기실 새로운 체육생태계를 구축하는 상생의 결단이 아니라 체육을 갈라놓고 갈등을 조장하는 첫 걸음에 불과했다.
이후 체육은 통합이라는 거대한 흐름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통합의 기조와는 달리 체육을 다시 쪼개는 분리의 정책을 폈다. 대학체육을 분리하며 만든 대학스포츠협의회의 케이스를 반면교사로 삼아 또 초중고 체육을 분리한 학교체육진흥회의 출범은 그들의 검은 속내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논란이 되고 있는 초·중·고 학생선수들의 주·중대회 금지와 소년체전 폐지에 정치적 음모가 숨어 있다는 사실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라는 그럴싸한 명분 뒤에 숨어 있는 그들의 현실적 목표는 대한체육회의 힘빼기와 예산 탈취,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한체육회와 기존 체육단체의 사업을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대학스포츠협의회와 학교체육진흥회에 이관시키는 게 이들의 목표다. 체육을 권력의 투쟁으로 여기고 두둑한 예산을 확보하는 정치적 노림수를 개혁으로 포장하려는 건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체육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이러한 태도는 체육의 교묘한 사유화와 다를 게 없다.
혁신위가 엘리트체육의 부정적인 측면을 침소봉대해 마치 엘리트체육의 가치가 시대적 소명을 다한 낡아빠진 가치로 폄훼한 것은 이러한 정치적 의도 때문이라고 체육계는 믿고 있다. 그래서 출범한 단체가 선체연이다. 개혁이라는 거창한 명분 뒤에 숨어 있는 새로운 체육 판짜기가 과연 한국 체육을 위한 길인지 아니면 소수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또다른 체육 사유화인지를 밝혀내는 게 선체연의 임무다.
선체연이 혁신위의 허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한국 체육의 바로 서기에 기여하는 건강한 역할을 다하려면 선결과제가 있다. 바로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실천이다. 시대정신과 시민사회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엘리트체육의 병폐를 더 이상 옹호하고 방관해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한국 체육의 건강한 바로 서기는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뼈를 깎는 주체의 각성, 혁신위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선체연에게 들려주고 싶은 충언이자 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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