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이성한 감독의 7년
영화 '바람'으로 뜨거운 성장기를 그려냈던 이성한 감독이 8년 만에 신작을 내놨다. 21일 개봉하는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는 흔들리는 청춘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괜찮다'는 말을 건네는 작품이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일본의 고등학교 교사이자 작가인 미즈타니 오사무의 책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를 원작으로 한다.
최근 서울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성한 감독은 인터뷰 전 인사와 함께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OST가 담긴 앨범을 건넸다. 그는 서른 개가 넘는 트랙을 음악감독과 함께 고민하며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음악뿐만이 아니다. 제작에 총 7년이 걸린 이 영화의 대부분엔 이 감독의 손길이 닿아 있다.
이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자세하게 기억했다. 원작을 처음 접한 시기와 미즈타니 선생이 영화화를 허락하며 어떤 눈빛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를 차근차근 떠올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2012년 미즈타니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믿지 않았다'는 이 감독은 책을 읽으며 마음을 사로잡혔다.
'학창 시절부터 미즈타니 선생님 같은 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어른이 현실에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어요. 단숨에 책을 읽어 내리곤 선생님에게 만남을 청하는 짧은 메일을 보냈죠. 선생님을 만나서 제 진정을 담은 편지를 건네고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그날 오후가 돼 영화화를 허락해주셨죠. 사실 그전에도 한국서 영화화를 위한 접촉이 몇 번 있었지만, 거절하셨대요. 선생님에게 '왜 저를 선뜻 믿고 허락해주셨냐'고 여쭤보니, '믿어주는 것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다'라고 답해주셨어요. 제 영화 '바람'을 좋게 봤다는 이야기도 해주셨고요. 전작의 흥행 실패로 힘들던 중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여러 감정이 들었어요. '괜찮다'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죠.'
자신감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책을 영화에 적합한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것에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몇 번의 시나리오 수정을 거치며 현직교사인 전정 작가가 각색에 합류했다. 그는 영화 속 인물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이 감독은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시나리오를 정리하고 영화에 필요한 화면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영화에 콜라주처럼 자주 등장하는 화면들은 그때 촬영한 것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니까, 마지막엔 용기가 필요했어요. 더 머뭇거리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미즈타니 선생님에게 이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었고, 다른 작품에 눈 돌리면 내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했어요. 부담감이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함 뼘 더 자랄 수 있었어요.'
이 감독은 7년간 공들인 작품이 처음 관객을 만난 순간도 회상했다. 전주영화제 상영 GV 당시 '감동을 받았다'는 관객의 말에 '감사하다'는 말밖에 되풀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이 영화로 위로를 받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만들었는데, 첫 번째 질문자가 그런 말을 해줘서 목적을 이룬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날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스크린에서 본 미즈타니 선생은 어떤 말을 남겼을까.
'미즈타니 선생님이 영화를 보시고 눈물도 많이 흘리시고 좋아하셨어요. 특히 선생님이 주인공이 아니라,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라는 점을 마음에 들어 하셔서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힘든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았으면 해요. 청소년뿐만 아니라 아직 마음이 성숙하지 못한, 저와 같은 어른들이 보고 인생을 살아내셔서 언젠가는 본인을 인정해주고 손잡아주는 누군가를 만나서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부영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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