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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남화영의 골프장 인문학 35] 골프 대중화의 선봉장 군산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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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군산CC는 한 곳에 81홀이 모인 국내 최대 규모 퍼블릭 골프장이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남화영 기자] 전라북도 군산의 군산컨트리클럽은 대체로 그린피 저렴한 골프장으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개장부터 지금까지 15년간 골프장이 취해온 이력을 따라가면 ‘한국의 골프 대중화’라는 큰 물줄기를 만들어온 철학을 가졌음을 알게 된다.

총 81홀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데 9홀의 9개 코스가 모두 퍼블릭이다. 이곳에서 미래 한국 골프의 모습인 노캐디 골프가 오늘도 학습되고 있다. 골프장 음식값의 현실화는 선도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해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 1박2일, 2박3일 패키지 골프 문화가 여기서 발현했다. 게다가 프로 선수라면 적어도 한 번은 이곳을 거쳐가는 엘리트 골프의 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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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정읍코스는 노캐디 전동카트 라운드를 체험할 수 있다.


셀프에서 양잔디까지 다양한 선택지

군산CC는 서울에서 내려가자면 2시간30분에서 3시간 거리여서 하루 당일치기 라운드는 부담이 된다. 그래서 군산CC를 가려면 골프텔에 묵으면서 1박2일이나 2박3일로 모든 코스를 체험할 수 있다. 요즘은 전국 방방곡곡에 흔한 국내 패키지 골프여행의 시작은 군산CC였다. 서종현 부사장은 “2년여 전부터는 2박3일로 골프장을 이용하는 패키지 고객들이 늘었다”면서 “첫날 27홀 둘째날 36홀 마지막날 18홀로 이용하면 모든 홀을 다 칠 수 있다”고 했다.

바다를 메운 넓은 매립지에 9홀 코스가 9곳이라고 해서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코스들이 아니다. 군산CC에서는 다양하게 골프를 체험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김제, 정읍 2개 코스는 전동 카트를 끌면서 노캐디 셀프라운드를 할 수 있다. 리모컨을 사용하는 5인승 카트를 이용하면 그린피를 합쳐 9만5천원, 1인승 전동 카트를 이용하면 9만원이다. 이제는 유럽 선진국처럼 자신의 전용 카트를 가지고 오는 골퍼도 생겨났다고 한다. 골프장은 그런 사람들을 막지 않는다. 노캐디 셀프 플레이는 노년층 뿐만 아니라 젊은 골퍼들 사이에서도 확산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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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3번 홀은 전장 1004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긴 파7 홀이다.


두 셀프 플레이 코스는 워킹 코스의 묘미를 살리는 두 개의 홀이 있다. 김제 1번 홀은 파6로 화이트 티에서 614m나 되고, 정읍 3번 홀은 세계 유일의 파7 홀로 화이트 티에서 933m, 챔피언티는 1004m로 전 세계에서 가장 긴 단일 홀이다. 한 홀을 마치려면 드라이버 한 번에 우드를 서너번 쯤은 잡아야 한다. 페어웨이는 넓은 편이지만, 파세이브가 결코 쉽지 않다. 어디서도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워킹 골프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애초 회원제로 시작해 양잔디가 식재된 리드-레이크 코스는 2017년부터 퍼블릭으로 전환했다. 매년 프로골프 대회 군산CC오픈이 열리는 토너먼트 세팅을 유지하는 코스로 코스매니지먼트가 까다롭고 난도가 높아 상급자용으로 여겨진다.

국산 중지가 페어웨이에 깔린 나머지 5개 코스도 난이도 격차가 있다. 부안, 남원, 순창 코스는 중간에 호수가 있고 전장도 길어 중급 난도를 가진 코스로 보기 플레이어들이 즐기기에 알맞다. 초보자들이라면 전주, 익산 코스에서 시작하는 게 편하고 스코어도 잘 나온다. 한 곳에서 9가지의 다른 성격의 코스를 치는 다채로운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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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골프장협회를 창설하고 오늘날까지 키운 박현규 회장(오른쪽)이 올해 3월 회장직을 박예식 신임회장에게 넘겨주고 기념촬영을 했다.


박현규 회장의 골프 대중화 신념

군산CC가 저렴한 그린피를 받는 이유는 설립자인 박현규 회장의 골프장 설립 과정과 대중화에 대한 철학이 굳건하기 때문이다. 2003년 폐염전 부지인 옥보면 옥봉리 137만평 일대에 군산레저산업이 설립된 것이 골프장의 시작이었다. 당시 사업승인을 해주는 담당자조차 쉽게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박 회장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지방 공무원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사업 승인을 받았다.

조성 공사에서는 종전까지 없었던 역발상이 나왔다. 폐염전을 준설해 페어웨이를 만들고 잔디를 깔았다. 흙을 파낸 옆으로는 물길을 내 전체 부지의 36%인 46만평이 수로로 조성됐다. 준설토를 활용해 코스를 올린 덕에 81홀 공사비가 당시 비용으로 27홀을 짓는 정도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절약된 공사비는 저렴한 그린피 정책의 바탕이 됐다. 2005년에 전주, 익산, 김제 27홀을 개장하기 시작해 이듬해 정읍, 레이크, 리드 코스가 개장했고, 2007년에 나머지 3개 코스를 개장해 총 81홀이 국내 최대 규모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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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염전에 펼쳐진 81홀 코스로 전라도의 주변 지역 명칭을 딴 코스 네이밍도 참신하다. 맨 오른쪽이 양잔디 레이크 리드 코스.


박현규 회장은 골프장을 만들 때 ‘그린피와 밥값은 저렴해야 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건강을 위해 골프를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코스에서 인조매트는 없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여기선 커피가 3000원, 500CC맥주 한 잔 4천원이다. 조식 1만원, 중식은 1만3천원, 1박2일 조식뷔페는 1만5천원이다. 골프장이라고 해서 폭리를 취하지 않는다. 이는 개장부터 지켜지는 운영 원칙이다.

초창기에는 월요일 ‘우먼데이’를 열어 여성 골퍼에게 할인했고, 60세 이상 골퍼에게는 경로 우대 차원에서 주중 1만원을 추가 할인해주었다. 군산 시민이 7시30분 이전 티오프하면 2만원을 추가 할인해주고, 심지어 종교인에게도 주중 3만원 할인했다.

개장 초기에는 잠깐 인조 매트가 쓰였지만 지금은 81홀 중에 어디에고 인조 매트를 찾을 수 없다. 수도권의 값비싼 골프장과 회원제 코스들도 겨울이면 당연한 듯 인조 매트를 사용하지만 군산CC의 운영은 원칙을 지킨다. 박 회장은 외부에 좀처럼 얼굴 내밀고 나서는 법이 없지만 2010년에 대중골프장협회를 설립하고 오늘날까지 이끌어온 산 증인이다. 지금은 골프장 운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그가 세운 운영 원칙은 오늘날도 오롯하게 지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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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옆에 100실 규모의 골프텔은 소박하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국내 패키지 골프의 요람

해외에 무제한 패키지 골프를 나가는 건 그만큼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충분히 저렴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다면 어떨까? 군산CC 초기에 저렴한 골프 비용으로 소문나면서 여름이면 관광버스가 전국에서 온 골퍼를 실어 날랐다.

지난 2011년 11월에 100실 규모의 골프텔을 코스옆에 오픈하면서 숙박 문제가 대폭 해소됐다. 15평 프라임 2인실 골퍼는 모텔 가격을 내고, 4명 한 팀이 묵을 수 있는 23평 디럭스스위트도 비싸지 않다.

군산CC는 오는 12월16일부터 1월말까지를 동계 시즌으로 정하고 비용을 30% 할인해 주중에는 1박2일에 15만원 주말은 23만원이다. 연간 휴장하지 않는 게 군산CC의 특징이다. 해안가에 인접한 군산CC는 겨울이면 오히려 바람이 잦아들어 골프 치기에 적당하다. 그린이 좀처럼 얼지 않고, 새벽에 설사 얼었다 하더라도 겨울철 일조량이 많아 금방 녹는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일부 프로 선수들이 해외 전지훈련 대신 이곳에서 겨울 훈련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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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CC는 매년 KPGA대회 뿐 아니라 180일 정도에 엘리트 대회가 열린다. [사진=KPGA]


한국 프로 골프의 조력자

군산CC는 1년 365일중에 180일은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군산CC전북오픈을 대회가 열린다. 올해 12년째 개최한 시즌 개막전 DB손해보험프로미오픈은 2008년 동부화재프로미배매치플레이에서 시작되었다. 국내 남자 투어가 대회가 없어서 백방으로 후원사를 찾던 2013년에는 군산CC오픈으로 대회를 열기도 했다.

여자 선수들을 위해서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의 2부 리그인 드림투어도 일 년에 네 번을 개최한다. 주니어나 시니어 투어 대회도 군산CC에서는 수시로 열리는 건 이 골프장이 가진 책무감 때문인지 모른다. 골프가 직업인 선수들에게 할인폭도 가장 후한 골프장으로 알려져 있다.

골프장도 물론 군데 군데 잔디 관리가 부족한 곳이 있고, 맨땅이 드러난 곳도 보인다. 하지만 81개의 티잉구역 중에 인조매트가 한 개도 없다는 사실이 이 골프장의 내공을 웅변한다. 프로 대회가 수시로 열려서인지 페어웨이와 러프의 경계가 주는 난이도 차이가 뚜렷하다는 점도 칭찬할 만하다.

한국에서 골프대중화를 말할 때 군산CC를 빼놓을 수 없다. 국내 여러 골프장들이 마케팅과 상업성을 내세울 때 군산은 저렴한 가격과 이용 모델을 제시했다. 주변 골프장들이 영업에 지장을 준다고 프로대회를 외면할 때도 군산은 프로 선수들을 위해 기꺼이 코스를 내주었다.

군산CC도 첫해는 카트비를 따로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카트비가 별도로 계산되지 않고 그린피에 포함되어 나온다. 심지어 개인 카트를 가져와도 된다.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접근성의 불리함을 이 골프장은 ‘수도권 18홀 비용으로 1박2일 36홀 라운드’는 신박한 캠페인으로 대응했다. 한국의 골프장이 나아갈 길을 앞서서 개척하는 골프장이 군산C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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