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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지 떠난 자리, 박세혁이 꽉 채웠다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파이낸셜뉴스 성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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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지 떠난 자리, 박세혁이 꽉 채웠다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서울맑음 / -3.9 °
‘우승 포수’ 꿈은 이루어졌다
주전 도약 첫해에 통합우승 쾌거
KS서 4할대 타율 MVP급 활약
‘두산 왕조’의 화수분 야구
핵심선수들 FA로 줄줄이 떠나도
인재 육성으로 슬럼프 없이 건재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포수 박세혁. 뉴시스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포수 박세혁. 뉴시스


국내 프로야구 10개 구단 주전 포수의 평균 나이는 만 29.1세다. 다른 포지션에 비해 나이가 많은 편이다. 포수 한 명을 주전으로 성장시키기엔 그만큼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올 시즌 가을 야구를 경험한 5개 구단 주전 포수의 평균 나이는 30.4세. 나머지 5개 구단은 27.8세다.

경험 많은 포수들이 이끈 팀의 성적이 더 좋았다. 지난 해 최하위 NC는 포수 양의지(32)를 영입한 후 2019시즌 5위로 도약했다. 양의지 한 명의 힘이라고는 믿지 않지만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포수로서 양의지의 비중은 굳이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런 점에서 두산의 2019시즌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지난 해 2위를 차지한 두산은 겨울 FA 시장서 양의지를 잃었다. 상당한 내상을 입었을 거라고 진단했다. 어쩌면 2014년 이후 5년 만에 가을 야구 진출에 실패할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감지됐다.

두산의 새 안방마님은 박세혁(29). 원래 대학(고려대) 시절 포수보다 내·외야수로 주로 뛰었던 선수다. 2012년 두산에 입단한 후 2군과 상무를 거쳐 2016년부터 백업 포수로 기용됐다. 그의 앞에는 항상 양의지라는 높은 산이 버티고 있었다.

양의지는 투수 리드, 타격, 그라운드 장악력을 두루 갖춘 한국 프로야구 최고 포수다. 박세혁을 주목한 이유는 그의 탁월한 플레이밍(flaming·포수가 미트 동작으로 볼을 스트라이크로 만드는 능력) 때문이었다.

2017시즌부터는 방망이도 곧잘 쳤다. 백업 포수로 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양의지의 공백을 확실히 메워줄 만큼 대단한 포수로 여겨지진 않았다. 2019 정규리그를 치르며 박세혁은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켜 나갔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험난한 테스트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가을야구 최고의 무대인 한국시리즈였다. 큰 경기 경험이 적은 박세혁이 첫 한국시리즈서 분명 한계를 드러내지 않을까. 박세혁은 보란 듯 또 한 번 장애물을 뛰어넘었다.

박세혁은 지난 26일 끝난 키움과의 한국시리즈서 MVP 투표서 2위(26표)를 차지했다. 1위 오재일(36표)과의 표 차이는 크지 않았다. 포수라는 중책을 맡으며 12타수 5안타 4할1푼7리의 높은 타율을 기록했다.

박세혁이 아니었더라면 한국시리즈는 4차전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두산이 0-2로 뒤진 2회 초 2사 1루. 박세혁은 키움 1루수 박병호 옆을 총알처럼 빠져 나가는 2루타를 터트렸다. 두산은 2회에만 3점을 뽑아 승부를 뒤집었다.


키움이 6점을 빼내 3-8로 재역전한 4회. 박세혁이 안타를 치고 나간 후 홈을 밟아 4-8로 따라붙었다. 아무리 달아나려 해도 자꾸만 따라오는 상대에겐 앞서가는 쪽이 질리는 법이다. 두산은 5회 5점을 보태 9-8로 승부를 다시 뒤집었다. 키움 선수들에게 '해도 해도 안 되는 구나'라는 절망감을 안겨준 점수였다.

두산은 최근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 가운데 세 차례 정상에 올랐다. 2015년 우승 이후 알토란같은 FA 선수들을 잇달아 내보냈다. 민병헌(롯데) 김현수(LG)에 이어 양의지까지 떠나보냈다.

그러고도 다시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양의지와 함께한 지난해는 준우승, 그를 잃은 올해엔 우승을 차지했다. 여느 팀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큰 나무들을 뽑아낸 자리엔 어김없이 새싹이 돋아났다. 두산 야구를 '화수분 야구'로 부르는 이유다.


이제 두산은 해태(현 KIA)-삼성-SK에 이어 왕조로 불리기에 손색없다. 두산은 초대 박용민 단장 이후 지금의 김태룡 단장에 이르기까지 프런트가 강한 팀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우승을 시키는 힘은 현장에서 나온다. 하지만 우승하는 팀을 만드는 것은 프런트의 능력이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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