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저화질 경기영상 보내… 지상파 3사 녹화중계조차 취소
통일장관, 무관중 경기에 "남북 응원단 모두 없어 공정" 궤변
도대체 평양에서 얼마나 격렬한 경기를 치렀길래 선수들이 이런 말을 하는지 국내 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 눈으로 확인하길 원했다. 하지만 이 경기를 모두 담은 풀 영상은 끝내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北이 준 '저화질 영상' -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북한 리은철이 공중볼을 다투던 정우영의 얼굴을 팔로 가격했다. 북한이 준 영상은 브라운관 TV에 쓰던 저화질이다. /대한축구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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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17일 오후 녹화 중계를 잡아놓았던 지상파 3사는 대한축구협회가 북한 측으로부터 받아온 영상을 확인하고 편성을 취소했다. 지상파 관계자는 "북한이 준 영상은 SD(기본화질)급으로 해상도가 현저히 낮았다. 화면 비율도 예전 브라운관 TV에 쓰던 4대3 비율이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고의적으로 질(質)이 떨어지는 영상을 보내준 게 아니냐고 보고 있다. 북한은 2010년대 초반부터 HD 방송을 하고 있다. 실제 지난달 6일 조선중앙TV가 녹화 중계로 방영한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 레바논전은 16대9 화면에 HD급 화질이었다. 북한은 2대0으로 이긴 다음 날 이 경기를 내보냈다.
도저히 납득 못 할 상황에서 남북 교류 주무 부서인 통일부 최고 책임자는 궤변으로 더욱 울화통이 터지게 하였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17일 열린 통일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남측) 응원단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자기들 나름대로 (관중을 동원하지 않는) 공정성의 조치를 취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고 했다. 외신들도 '유령 경기' '기괴하다'고 비판한 것을 두고 우리 통일부 장관은 '북측의 배려'라고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양승동 KBS 사장은 17일 국정감사에 출석해 "화질이 너무 떨어져 축구 경기를 중계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신용현 의원이 이에 대해 "북한 선수들이 비신사적 매너를 보여 북한에 대한 여론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중계를 취소한 것 아니냐"고 지적하자 양 사장은 "그렇지 않다. 뉴스에서는 사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번 한국-북한전의 중계사인 지상파 3사는 조총련계로 알려진 일본 대행사를 통해 북한축구협회와 중계권 협상을 진행했다. 생중계를 전제로 협상을 시작했지만, 북한축구협회가 거부하는 바람에 녹화 중계를 하기로 합의했다.
지상파 3사는 통상적인 A매치 관례에 따라 이번 남북 대결에 3억원 안팎을 계약금 성격으로 미리 북한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지상파 3사는 3억원 정도를 지불해 화질이 크게 떨어지는 영상 하나를 받았으나 이마저도 녹화 중계를 하지 못하게 됐다.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남북 축구 중계는 계약금을 떼일 위기다. 결국 지상파가 북한에 퍼주기 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됐다"고 지적했다. 양승동 KBS 사장은 "북한축구협회에서 대행사를 통해 '방송용'을 주기로 약속했는데 받고 보니 '기록용' 영상이었다. 계약금 반환 소송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 사장의 말과는 달리 대한축구협회가 17일 취재진에게 공개한 영상은 화질은 나쁘지만 6㎜ 카메라로 찍은 분석용이 아니라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원한 중계용 영상이었다. 방송계 관계자는 "화면 전환과 클로즈업, 슬로모션 등을 볼 때 연출된 중계용 화면"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북한이 한국에 DVD를 줄 때 일부러 해상도를 떨어뜨린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만약 북한이 사전 약속대로 중계용 영상을 보낸 것이라고 주장할 경우, 계약금을 돌려받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날 오후 6분짜리 하이라이트 편집 영상을 유튜브 채널인 'KFA TV'를 통해 공개했다. 협회 관계자는 "AFC에 6분짜리 영상을 공유해도 되겠냐는 문의를 했고, 구두 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편집 영상을 본 축구 팬들은 "하이라이트가 이 정도로 거치니, 전 경기를 다 보면 팬들이 분노로 폭발했을 것" "UHD (초고화질) 시대에 선수 구별도 잘 안 되는 영상을 보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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