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일 KFA 부회장의 ‘평양 2박3일’
짐 일일이 열어봐 입국심사 150분… 식재료 압수하고 김치-김만 남겨
숙소행 버스에도 요원 동승 ‘침묵’… 무관중 이유 묻자 “오기 싫었겠지”
“어휴, 그건 축구가 아니었다니까요. 축구가 아니야.”
현역 시절 남자 축구 한일전에서 일본의 간판스타 공격수 미우라 가즈요시(52)를 강한 몸싸움과 압박으로 꽁꽁 묶어 ‘족쇄맨’으로 불렸던 그의 눈에도 북한의 축구는 지나치게 저돌적이었다. 한국팀 단장으로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남북전을 다녀온 최영일 대한축구협회(KFA) 부회장(53·사진)의 말이다.
그는 1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그라운드는 물론이고 벤치에 있는 선수들까지 그렇게 강하게 소리치며 신경전을 펼치는 것은 처음 봤다. 우리는 기술적으로 하는데 북한 선수들은 무슨 약을 먹은 것인가 싶을 정도로 강한 몸싸움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들은 북한 측의 ‘시간 끌기 작전’ 탓에 컨디션 관리에 애를 먹었다. 평양 순안공항에서의 입국 심사는 무려 2시간 30분이 소요됐다. “양말은 몇 켤레, 팬티와 티셔츠는 각각 몇 장인지 세세하게 적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짐 가방을 열어 일일이 확인했다. 그런 방식으로 55명(선수 25명과 임원 등 포함)을 검사하니….”
공항을 나와 훈련을 하기 위해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길도 힘겨웠다. 최 단장은 “어두컴컴한 밤에 경찰차로 보이는 차량이 에스코트를 하는 가운데 버스가 뻥뻥 뚫린 도로를 달렸다. 그런데도 시속 30km로 거북이 운행을 했다”고 말했다. 버스 안 분위기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선수들이 탄 버스 안에 북한군 요원으로 보이는 사람 5명이 앞좌석과 뒷좌석에 나눠 앉아 있었다. 휴대전화를 가져오지 못해 노래도 못 트는 데다 (요원이 있으니) 선수들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관중 경기는 상상조차 못 했던 결과다. 최 단장은 “북한 관계자에게 왜 무관중 경기가 됐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오기 싫어서 안 오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하더라. 사실 북한 관계자들이 단장인 나와도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해서 마지막 날(16일)에야 슬쩍 물어봤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경기와 훈련을 제외하고는 숙소인 고려호텔 안에 고립돼 있었다. 호텔 앞에는 북한 경찰 3개 조가 30m 간격으로 배치돼 있었고 한두 명의 외국인 손님을 제외하고 투숙객은 없었다. “호텔 식사는 밥, 국, 요리 등이 있었는데 풍족하지 않았다. 고기 종류도 거의 없었다. 공항에서 입국할 때 고기와 해산물 등을 빼앗겼지만 다행히 김과 김치 등은 호텔로 가져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룸서비스’는 없었냐고 물어봤다. “그런 게 있을 리가…. 밖에 못 나가게 하니 외식도 못 하고…. 아, 그래도 운동 나가면 방 청소는 해줬다.”
최 단장의 말처럼 한국 선수단은 북한 내에서 여러 행동의 제약에 시달렸다. 대표팀 스태프도 마찬가지였다. 대한축구협회 홍보팀 관계자는 “고려호텔에서 e메일로 한국에 정보를 전달하려고 하면 북한 측에서 검열한 뒤 일부 내용을 삭제하고 보내도록 했다. 평상시에는 인터넷을 차단했다가 e메일을 보낼 때만 랜선을 가져와 사용할 수 있게 하고, e메일 전송이 끝나면 즉시 랜선을 다시 가져갔다”고 말했다.
최 단장은 “오히려 경기에 임박해 들어가 북한 내 체류 기간이 짧았던 것이 다행인 것 같다. 실력이나 기술적으로나 우리가 북한보다 훨씬 낫다. 선수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부상 없이 경기를 잘 끝내 만족한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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