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권영준 기자] “대표팀은 놀러 오는 곳이 아니다. 책임감을 가져주길 바란다.”
손흥민(27·토트넘)이 작정하고 쓴소리를 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주장 손흥민은 지난 5일 터키 이스탄불의 파티흐 테림 스타디움에서 치른 조지아전을 마친 뒤 “한국 축구대표팀이 약체라고 생각할 팀은 없다. 우리가 약체”라고 전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대표팀으로서 창피한 일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이곳에 온 만큼 모든 것을 뽑아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대표팀은 스리백 전술에 대해 낯선 모습을 보이며 아쉬운 경기력 끝에 2-2로 비겼다. 손흥민을 필두로 황의조(보르도) 황희찬(잘츠부르크) 등 유럽파가 대거 가세한 공격진은 개인 능력에 의존했고, 중원과 수비진은 조직적으로 움직여주지 못했다. 아직 단단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어디까지나 평가전이었다. 파울로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평가전을 통해 충분히 실험했다. 이를 통해 보완 및 발전하는 과정을 거치면, 그만큼 대표팀 전력도 강해진다. 이날 조지아전을 발전의 발판으로 삼으면 그것으로도 평가전의 의미를 다 한다.
중요한 것은 조지아전은 통해 선수 스스로 부족함을 느껴야 한다. 무엇이 이뤄지지 않았고, 어떤 부분에서 미흡했는지 느끼고, 깨닫고, 행동으로 보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손흥민이 작정하고 쓴소리를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단순히 ‘평가전이었으니까’에서 끝나면 발전은 없다.
특히 손흥민은 이날 A매치에 데뷔한 젊은 선수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손흥민은 “A매치 데뷔는 축하받을 일이다. 어릴 때부터 꿈꿔온 일을 이뤘다”면서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제 대표팀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만큼 책임감이 필요하다. 대표팀은 놀러 오는 곳이 아니다. (우린 젊은 선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뽑아낼 선수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손흥민이 데뷔전을 치른 선수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축구 사상 7번째로 어린 나이에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이강인(18·발렌시아)의 모습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날 이강인의 플레이는 A매치 데뷔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에 충분했다.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공격 빌드업 역할을 맡아 번뜩이는 패스와 넓은 시아로 공격을 전개했다. 이전에 대표팀에서 볼 수 없었던 창의성이 보였다. 형님들 사이에서도 전혀 주눅 든 모습 없이 자신의 플레이를 펼쳤다. 또한 날카로운 프리킥 슈팅으로 ‘왼발 스페셜리스트’의 존재감을 뽐내기도 했다.
물론 모든 것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벤투 감독의 전술상 상황에 따라 전방 압박은 물론, 수비 가담까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또한 스리백 전술을 활용했기 때문에 볼란치인 백승호를 커버해주는 역할도 함께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수비 가담이나 백승호와의 연계 플레이에서는 다소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이강인은 이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앞으로 더 성장해야 할 선수이다. 이날의 경험은 이강인이 더 큰 선수로 성장하는 데 피와 살이 될 수 있다. 또한 벤투 감독의 전술에 더 적응하면 지금보다는 분명 더 좋은 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다. 그만한 재능이 있는 선수이다.
다만, 플레이 외적인 부분에서는 다시 되짚어야 한다. 이강인은 이날 상대 수비의 거친 몸싸움을 당했다. 성인 대표팀 무대가 처음인 만큼 거칠고 투박한 수비에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쉬웠던 부분은 전반 17분 수비 과정이었다. 앞서 이강인은 공중볼 경쟁 과정에서 발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후 벤치를 향해 오케이 사인을 보내 다시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러나 조지아가 공격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페널티박스 전방에 있던 이강인은 다시 고통을 느끼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 장면에서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조지아는 공격을 진행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슈팅까지 연결했다. 골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슈팅 기회까지 줬다는 뜻이다. 이강인은 이 수비 시퀀스까지는 마무리한 뒤 쓰러졌어야 한다.
물론 이강인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큰 고통이었다면, A매치 데뷔전이라는 큰 의미는 알겠지만, 팀을 위해 앞서 쓰러졌을 때 교체를 해야 했다.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는 것은 그라운드에서 100%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이강인은 그 자리에서 주저 앉은 뒤 다시 뛰었다. 뛸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 상황에서 이강인이 쓰러지면 누군가는 그 역할을 커버해야 한다. 수비진 전체에 부담을 가중하게 된다. 자칫 실점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월드컵 예선이나 본선에서 이와 같은 모습을 보였고, 그것이 실점으로 이어졌다면 대표팀 전체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평가전이라서 그랬다면 더 큰 문제다.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평가전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A매치이고, 어떤 경기고 태극마크를 달고 시작을 했다면 최선의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 수비 시퀀스가 끝난 뒤 치료를 받던지, 교체하던지 결정을 해야 했다. 팀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손흥민이 언급했듯이 어린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강인이 감당하지 못할 사안일 수도 있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다는 순간 18세의 이강인과 27세의 손흥민과 현 대표팀 최고령 33세의 이용(전북) 모두 똑같은 대표선수이다. 플레이로 평가받고, 이에 따라 자신의 위치가 결정난다.
손흥민 역시 대표팀이라는 영광 뒤에 따라오는 책임감이 얼마나 큰지 경험했다.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면 모두가 환호하고, 부진하면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자리가 대표팀이다. 브라질월드컵, 러시아월드컵 2차례 경험을 통해 그 환희와 고통이 얼마나 큰지 몸소 느꼈다.
그 부담감을 이겨내고 자신의 기량을 쏟아내기 위해서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져야 한다. 손흥민이 이날 데뷔전을 치른 어린 선수들에게 쓴소리한 이유도 그 책임감이 얼마나 감당하기 힘든 것인지 알기에, 그러한 마음가짐이 있어야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소신 발언을 한 것이다.
특히 손흥민은 이강인에 대한 애착을 보여왔다. 앞서 이강인의 부담감을 줄여주기 위해 "시간을 두고 지켜봐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날의 당부도 자신이 20대 초반에 겪었던 심적 부담감과 고통을 알기에,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잘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이 작용한 것이다.
18세 이강인에게는 가혹한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이겨내야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다. 이강인이 손흥민의 조언이 한 귀로 흘려선 안 되는 이유이다.
young0708@sportsworldi.com / 사진=OSEN,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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