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윤의 미식탐구-17] 맛있는 요리의 시작은 재료다. 좋은 재료를 어떤 솜씨로 다루느냐는 그 뒤의 일이다. 세계 최고라고 꼽히는 요리사들에게도 이 단순한 진리는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미식의 정점인 정찬 코스 요리, '파인다이닝(fine dining)'을 만드는 셰프라면 주방에서 요리하는 만큼이나 최상의 식재료를 찾는 데 노력을 들이는 것이 그리 놀랍지 않다.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전 세계 셰프의 축제인 '월드베스트 레스토랑 50' 시상식이 열렸다. 한자리에 모인 셰프들은 요리 토론회, 쿠킹클래스와 간담회를 통해 식재료와 음식 문화에 관한 의견을 나누며 미식 세계를 넓혔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끈 식재료가 있으니 바로 이번 세계 50대 레스토랑으로 꼽힌 업장 셰프들의 25%가 사용하고 있는 노르웨이산 킹크랩 등의 노르웨이 수산물이다.
◆연어와 고등어, 익숙한 노르웨이 수산물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전 세계 셰프의 축제인 '월드베스트 레스토랑 50' 시상식이 열렸다. 한자리에 모인 셰프들은 요리 토론회, 쿠킹클래스와 간담회를 통해 식재료와 음식 문화에 관한 의견을 나누며 미식 세계를 넓혔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끈 식재료가 있으니 바로 이번 세계 50대 레스토랑으로 꼽힌 업장 셰프들의 25%가 사용하고 있는 노르웨이산 킹크랩 등의 노르웨이 수산물이다.
◆연어와 고등어, 익숙한 노르웨이 수산물
2018년 기준 노르웨이의 총 수산물 수출량은 270만t이며 수출액은 약 13조5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한국의 수산물 수출액인 2조8000억원의 5배에 달한다. 쉽게 비유하자면 '노르웨이의 삼성'은 수산물 기업으로, 수산물 생산과 수출이 국가 살림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사업이다. 노르웨이는 세계 2위 수산물 수출 국가로, 전 세계 146개국에 수출하며 이 수산물은 매일 3700만명의 식탁에 오른다. 이 중 연어가 약 40%, 고등어가 10% 정도로 전체 노르웨이 수산물 수출의 50%를 차지한다.
한국인에게도 연어와 고등어를 비롯한 노르웨이 수산물은 일상적인 식재료다. 국내에 유통되는 생연어 수입액의 90% 이상, 훈제연어를 합친 전체 연어 어종 수입액의 70% 이상이 노르웨이산이다. 선명한 줄무늬로 국내산 고등어와 쉽게 구분되는 노르웨이산 고등어도 재래시장부터 대형마트에 이르기까지 어느 매대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 |
국내 마트에서 유통되는 노르웨이산 고등어. |
등 부분이 전체적으로 푸른 은빛인 국내산과는 달리 등 부분의 줄무늬가 선명하다.
◆살아 있는 킹크랩, 세계 미식가가 주목하다
노르웨이 수산물 중 연어와 고등어가 매일의 식사에 어울리는 보다 '대중적인' 식재료라면, 노르웨이산 갑각류는 주로 호텔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으로 유통되는 고급 식재료에 가깝다. 지난해 노르웨이는 킹크랩 등을 비롯해 약 550억원의 활(活)갑각류를 수출했는데 이는 예년과 비교해 56% 증가한 수치로, 부가가치가 높은 활 갑각류가 수산물 수출액 성장을 견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는 자국 수출 성장을 이끌고 있는 고부가가치 갑각류 등의 프리미엄 수산물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하향식(Top-down) 트렌드 주도 전략을 채택했다. 고급 정찬 레스토랑에 오는 미식가층과 소수의 음식 전문 인플루언서를 중점적으로 타기팅하는 것에서 시작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자국 수산물을 점차 알리며 최종적으로 일상적 소비가 가능하도록 트렌드를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노르웨이킹크랩(Norway Kingcrab)사(社)의 대표 스베인 루드(Svein Ruud) 씨는 "작년 활킹크랩과 가재 수출은 각각 48%, 163% 증가했다"며 그 동력을 최고급 레스토랑을 통한 프리미엄 마케팅에서 찾았다. 실제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는 2016년, 2018년, 2019년 총 3년간 월드베스트 레스토랑 50 행사를 후원하며 자국의 갑각류를 알리고 있다. 2019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월드베스트 레스토랑 행사에서도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 후원으로 세계적인 셰프들이 노르웨이산 킹크랩, 가리비, 랑구스틴을 사용해 다양한 미식 행사와 클래스를 진행하며 업계의 관심을 모은 것에서도 이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고급 갑각류 마케팅…국제 미식 행사를 통해 길을 찾다
경기 성장 둔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 확산, 해외여행 보편화 등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트렌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확실하고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다소 가격이 부담스럽더라도 선뜻 자신을 위해 소비하고, 이를 SNS로 공유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최근 소비자의 동향이다. 이런 '가치소비' 트렌드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최고급 식재로 불리는 송로버섯, 캐비아 등이 올 4월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배, 2배 판매량을 보였다(G마켓 기준). 귀하고 비싼 것을 소비하는 경험과 이를 공유하는 행위의 만족감이 더없이 커진 세대다.
![]() |
150여 명의 셰프와 미디어가 참여한 수산물 세션 |
이에 발맞춰 수산강국 노르웨이의 갑각류 시장 확대 전략 또한 '미식가에서 대중으로'로 요약할 수 있다. 세계적 셰프와 인플루언서, 식음 전문기자가 모인 이번 2019년 싱가포르 월드베스트 레스토랑 행사에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가 후원한 배경이다. 올해 아시아베스트 레스토랑 50 순위에서 10위를 차지한 싱가포르의 레스토랑 번트 엔즈(Burnt Ends)에서도 노르웨이 프리미엄 수산물을 이용한 행사가 열렸다. 순위에 오른 레스토랑 시상식에 앞서 세계 곳곳에서 모인 셰프와 기자, 레스토랑 사업가 등 150여 명에게 자국 수산물을 홍보하기 위한 자리로, 킹크랩 관자 랑구스틴 등 다양한 종류의 노르웨이산 갑각류를 이용한 요리를 선보였다.
![]() |
행사 당일에 사용된 노르웨이산 레드 킹크랩 |
행사가 진행된 번트 엔즈 레스토랑의 데이브 핀트(Dave Pynt) 셰프는 불과 나무를 사용해 재료의 본연을 맛을 살리기 위한 요리를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요리를 호주에서 공수한 적목(붉은 나무) 장작에 구워내는데, 자신의 출신이기도 한 호주식 바비큐에서 영감을 받았다. 큰 기교 없이 숯불에 재료를 구워내는 그릴 요리가 중심이 되다 보니 "최상급 식재료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 셰프의 관점이다. 그는 항상 항공직송된 노르웨이산 킹크랩을 쓰는데, "유통량이 많은 러시아산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살이 꽉 차고 자연스러운 단맛이 좋다"며 노르웨이산을 고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
노르웨이 수산물이 잡히는 바다 |
킹크랩뿐 아니라 대부분의 갑각류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이지만, 갑각류가 자라는 바다의 수온이 낮을수록 미식가들이 눈독을 들이는 프리미엄 식재료로서의 '맛있는 갑각류'가 탄생한다. 낮은 수온으로 인해 성장이 느려야 성숙한 개체가 되기까지 살이 꽉 차며 단맛이 돌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산 레드 킹크랩은 북해와 바렌츠해 등의 차가운 환경에서 자라며 육질이 탄력적이다.
![]() |
킹크랩이 자라는 바다 수온은 -1.8℃에서 5.5℃ 내외다 |
한편 이튿날 이어진 키친 잼(Kitchen Jam) 세션에서는 셰프와 업계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조리법을 공유했다. 잼 세션이란 재즈 용어로, 재즈 연주자들이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악보 없이 즉흥적인 연주를 행하는 일을 말한다. 이처럼 노르웨이 수산물을 주제로 모인 미식가들이 킹크랩, 관자, 랑구스틴 등을 앞에 두고 자유롭게 생각과 영감을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태국 출신의 여성 요리사인 페 추몽콘(Fae Chummongkhon) 셰프가 킹크랩을 이용해 독창적인 스타일의 요리를 제시했다.
![]() |
페 추몽콘 셰프의 킹크랩 요리 |
페 추몽곤 셰프는 세계 1위 레스토랑으로 손꼽히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Noma)에서 식재료의 간결한 아름다움을 표방하는 노르딕풍 요리를 배우고, 프랑스 조리기법과 타이 향신료 등을 더해 독창적인 요리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노르웨이 킹크랩을 이용해 그녀가 선보인 것은 새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사워크림과 연어알, 타이풍의 허브 오일을 곁들인 킹크랩 다리살 요리다.
◆미식가들의 선택, 노르웨이 랑구스틴
미식가들이 손꼽는 최상의 갑각류 식재료를 이야기할 때 랑구스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민물가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차가운 북반구 바다에서 자라는 갑각류의 일종으로, 한국에는 다소 생소한 식재료이지만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캐비아, 송로버섯 등과 더불어 최고의 럭셔리 식재료로 받아들여진다. 랑구스틴은 랍스터와 가까운 친척 격으로, 크기는 7㎝에서 25㎝까지 자랄 수 있다. 껍데기는 밝은 주황색과 붉은색으로, 일부 갑각류가 검푸른 빛이다가 조리를 하는 경우 붉은빛으로 변하는 것과는 달리 생물이건 익힌 상태이건 색이 다르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 |
머리와 꼬리가 손질된 랑구스틴 |
랑구스틴의 라틴어 이름은 네프로스 노르베지쿠스(Nephrops norvegicus)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산지가 노르웨이다. 최근에는 스코틀랜드 서해안과 아이슬란드 인근 북해에서 최근 랑구스틴 어획량이 많고, 원산지인 노르웨이도 랑구스틴을 꾸준히 수출하고 있다.
단점이 있다면 가격이 높다는 것이다. 작은 케이지를 바다 아래에 두고 랑구스틴이 들어오도록 유인한 뒤 소량으로 거두는 방식이므로 어획이 까다롭고, 최근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 유럽연합(EU)에 의해 보호종으로 지정되며 어획량을 통제하고 있어 가격이 더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랑구스틴은 전 세계의 명망 높은 셰프라면 기꺼이 쓰고 싶어하는 최상의 식재료로, 그 이유는 단순하다. 맛있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미식 기자로서 수년간 세계를 다니며 귀한 식재료를 많이 먹어보았음에도 새롭게 경탄할 만한 맛이다.
![]() |
요리를 준비 중인 하이디 비아스카(Heidi Bjerkan) 셰프 |
노르웨이 왕실에서 7년 동안 수석셰프로 근무하고, 미쉐린 1스타를 받은 크레도(Credo) 레스토랑의 오너이기도 한 하이디 비아스카 셰프는 이번 행사에서 노르웨이 랑구스틴을 이용한 그릴 요리를 선보였다.
![]() |
하이디 비아스카(Heidi Bjerkan) 셰프의 랑구스틴 요리 |
비아스카 셰프는 랑구스틴을 나무 숯불에 은근히 구운 뒤 브라운 버터와 발효한 체리시럽을 곁들였다. 가볍게 구운 랑구스틴의 맛은 어떨까?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대하에 비교하자면 대하가 구웠을 때 다소 뻑뻑하고 단단해지는 것에 비해 살의 질감이 훨씬 부드럽고 진득하다. 살짝 데친 베트남산 새우가 탱글탱글하고 뽀득거리는 식감을 주는 것과도 전혀 다르다. 오히려 일식 스시집의 단골 재료 '단새우'로 흔히 알려진 북쪽분홍새우를 커다랗게 바꿔놓았다고 하면 상상하기가 편하다. 달고 농축된 부드러운 질감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다시 찾게 되는 이유다.
[이정윤 콘텐츠디렉터·다이닝미디어아시아 대표(julialee@diningmediaasia.com)]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