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고발해 문학계 미투를 촉발한 최영미 시인의 여섯번 째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 출간됐다. 자신이 차린 출판사를 통해 내놓은 시집은 2017년 겨울, 시적 고발 이후 진행된 사회적 파장과 겪어야 했던 고통, 마음의 풍경을 보여주는 생생한 시들이 담겼다. 화제의 시, ‘괴물’도 함께 실었다.
시인은 ‘독이 묻은 종이’란 시에서 “대한민국 법원에서 보낸 소장을 받고/나는 피고 5가 되었다//두터운 종이에 쪽수도 매겨 있지 않았다/이걸 내가 왜 읽어야 하지?//한 편의 짧은 시를 쓰고,/100쪽의 글을 읽어야 하다니(…)/싸움이 시작되었으니/밥부터 먹어야겠다”며, 소송전에 임하는 마음을 담아냈다.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이란 시는 지난 2월 고은 시인이 1심 패소한 뒤, 즉각 항소하면서 이후의 항소이유서를 기다리는 심경을 담았다. “만루 홈런을 쳤는데도/튀어오르는 기쁨은 보이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소송을 당하고 지속적으로 시달려야 하는 상황을 야구에 비유했다.
“당사자 심문을 앞두고 3년이나 대기한 시립요양원에 자리가 나왔는데도 엄마를 옮겨드리지 못했다” ( ‘ 뭘 해도 그 생각’)는 시인은 올해 새해 소망에서 “화면과 자판의 이음새가 깨져 테이프로 고정시킨 노트북으로 책상 위의 괴물과 싸웠다”며, “내 노트북만 완전히 망가뜨리지 않는다면/한 해 더 살아주마”고 각오를 다진다.
최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내 생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며, 정신이 사나워져 시를 잊고 살았다”며, 어느 봄날 목련송이를 보고 노래가 나를 찾아왔다고, “사랑을 떠올릴 수 있는 동안은 시를 영영 잃지 않을” 것이라고 시쓰기를 다짐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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