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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이슈 양승태와 '사법농단'

또 멈춰버린 '임종헌 재판'...재판부 기피 신청에 檢 “지연 전략" 발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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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 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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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은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 중인 임종헌(60·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24번째 재판이 열리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임 전 차장이 지난달 31일 "재판이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담당 재판부를 바꿔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임 전 차장의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는 이날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었던 임 전 차장의 공판 일정을 연기하고 추후 일정을 다시 잡겠다고 했다. 이날 재판 뿐만 아니라 다음날(4일) 예정된 재판도 취소됐다.

임 전 차장 측은 기록 검토 등 재판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검찰은 법에 정해진 절차대로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고 맞선다. 구속기간 등 시간에 쫓기는 재판부도 소송을 지휘해야 하는 입장에서 난감한 것은 마찬가지다. 임 전 차장 측 요청이 받아들여져 재판부가 바뀔 경우 원점에서 다시 1심 재판이 시작된다. 당사자들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임 전 차장의 재판은 다시 ‘시계제로’의 상태가 됐다.

◇임종헌, 재판부 기피 신청...왜?
임 전 차장 측의 재판부 기피 신청 이유는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다. 임 전 차장 측은 "재판부가 어떻게든 유죄판결을 선고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신념 내지 투철한 사명감에 가까운 강한 예단을 가지고 극히 부당하게 재판을 진행해왔다"고 했다. 또 "재판부가 소송지휘권을 부당하게 남용하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했다"며 "형사소송법상 기피 사유에 해당한다"고도 주장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피고인은 재판부가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을 때 기피 신청을 할 수 있다. 재판부 기피 신청의 목적이 ‘소송 지연’이라는 게 명백할 경우 법원은 이를 기각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진행 중이던 본안 재판은 중단되고, 기피신청 자체에 대한 재판이 따로 열리게 된다.

기피신청 재판은 같은 법원의 다른 재판부에서 맡도록 돼 있다. 물론 피고인 측의 기피신청이 합당하다는 판단이 내려져야 재판부가 교체된다. 이 경우 새 재판부는 기록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기각되면 임 전 차장은 항고와 재항고 등 불복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기피 신청에 대한 의견서를 이날 제출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 측의 노골적인 지연전략으로 구속 후 4개월 만에 첫 공판이 열렸고, 임 전 차장은 재판 내내 비법률적 선동을 계속하면서도 발언기회를 충분히 보장받고 있다"며 "다른 재판에 비해 피고인을 더 많이 배려하며 진행되고 있는데, 기피 신청을 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문건을 다수 작성한 혐의를 받는 정다주 울산지법 부장판사가 지난해 8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는 모습. 정 부장판사는 지난 4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현직 법관으로 처음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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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시작부터 변호인단 사임·200여명 증인 세례
임 전 차장의 재판은 이렇게 여러차례 공전하고 있다. 재판 초기에는 변호인단이 일괄 사임했다. 11명으로 구성됐던 변호인단이 재판부가 주 4회 재판을 예고하자 첫 공판기일 직전에 모두 물러난 것이다. 임 전 차장의 재판은 형사소송법상 ‘필요적 변호’ 사건이어서 변호인 없이는 개정할 수 없다.

임 전 차장이 새로 선임한 두 명의 변호인은 재판 자료를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때문에 임 전 차장의 첫 재판은 이례적으로 늦어졌다. 기소된 지 4개월 가까이 지난 3월 1일이 돼서야 첫 재판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 변호인들도 "주 3회 재판으로 기록 검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주장해왔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상 보장된 피고인의 권리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지난달 13일부터 재판을 주 2회 진행하기로 변경한 상태다.

임 전 차장 측은 여전히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임 전 차장 측 이병세 변호사는 지난 4월 24일 재판 도중 "밤을 새도 서류를 다 볼 수가 없다"며 "다음주에 나올 증인과 서류 증거는 그 동안에 했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도저히 재판 진행을 쫓아갈 수가 없다"며 법정을 나가 재판에 다시 들어오기도 했다.

200명이 넘는 증인신문 일정도 큰 산이다. 임 전 차장 측은 전·현직 법관들의 검찰 진술을 증거로 사용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임 전 차장 측이 ‘부동의' 의사를 표시함에 따라 재판부는 200여명의 증인들을 일일이 불러 법정에서 진술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증인으로 소환된 법관들이 당초 정해진 증인신문 기일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재판부에서 재판 진행 의지가 있으면 기각할 것"이라면서도 "만약 재판부에서 기각 결정을 내릴 경우 임 전 차장 측은 당연히 항고할 것이고, 대법원까지 갈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재판이라는 게 누가 지연한다고 지연되는 게 아니다. 그건 검찰의 시각"이라며 "방어를 못하게 하려고 후다닥 조서재판에 요식행위만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검찰이) 수사 기록을 수십만 페이지 만들어놓았는데 피고인 측에서는 얼렁뚱땅 하는게 맞느냐 아니면 모두 검증을 해야 맞는 것이냐"고 덧붙였다.

[백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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