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등이 만든 방청단, "양승태 재판 개입" 편향적 책자 나눠줘
"인권 부르짖던 민변, 재판받는 전·현직 법관 인권은 안중에 없어"
‘시민방청단’이 지난 29일 재판 방청객들에게 피고인 얼굴을 그려보자며 나눠준 책자. /박국희 기자 |
지난 29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첫 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법정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재판을 방청하려는 일반 시민, 취재진 등이었다. 교육의 일환으로 법원을 찾은 서울의 한 고등학교 학생 10여 명도 줄을 섰다.
이 중에는 '두눈부릅 사법농단 재판 시민방청단'이라는 단체 소속 30여 명도 있었다.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참여연대가 이 재판이 공정하게 이뤄지는지 감시하겠다고 만든 조직이다. 이들은 "법관이 전·현직 법관을 재판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 식구 감싸기 재판'이 되지 않도록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단체 관계자는 고등학생들을 비롯한 방청객들에게 15쪽짜리 안내 책자를 나눠줬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 등의 혐의와 죄목을 정리해 놓은 것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치열한 유·무죄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단체가 나눠준 책자 내용 상당 부분은 편향적이고 일방적이었다. 재판은 시작도 안 했는데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취급했다" "재판에 개입했다"며 혐의 대부분을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단정적으로 기술했다.
급기야 이를 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아내가 단체 소속 시민과 설전을 벌였다. 임 전 차장 역시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돼 재판받고 있다. 그는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학생들에게까지 이렇게 일방적 내용의 책자를 나눠주는 것은 재판에 영향을 끼치려는 것 아니냐"고 따졌고, 단체 소속 시민은 "학생들이 내용을 잘 모르니까 알려주는 것 아니냐"고 맞받았다. 임 전 차장 아내는 "그러면 양쪽 시각을 담은 의견을 골고루 나눠줘야지 이렇게 해도 되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기자에게 "완전히 여론 재판이다. 이들의 행태에 치가 떨린다"고 했다.
이 단체가 나눠준 책자에는 양 전 대법원장 재판을 유희거리로 삼는 듯한 내용도 많았다. '사법 농단 피의자 재판 현황'이라는 페이지에는 '미션: 피의자 얼굴도 그려보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전·현직 법관 14명의 이름과 직책이 나열돼 있었다. 이들 이름 옆에는 얼굴 모양 윤곽과 빈칸이 각각 있었다. 재판을 방청하며 피고인 신분이 된 전·현직 법관들 이름·직책을 알아보고 재판을 받고 있는 그들의 얼굴을 빈칸에 그려보라는 취지였다. 책자에는 '사법 농단 낱말 퀴즈, 조금 어렵지만 도전~!'이라는 문구와 함께, 전·현직 판사들의 이름 등을 가지고 가로세로 낱말풀이 게임을 하는 페이지도 있었다.
이를 나중에 본 한 변호사는 "이런 일들이 재판 감시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그동안 인권을 부르짖던 민변 변호사들이 정작 재판받는 전·현직 고위 법관들의 인권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이 방청단은 오전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에 있는 민변 사무실에서 식사하고 자체 강연 시간을 가진 뒤 오후 재판을 마저 방청했다. 법원 고위 관계자는 "이들의 행태가 재판부에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박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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