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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홍혜민의 B:TV] ‘봄밤’, 전작 지운 차별화의 좋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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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봄밤'이 전작을 지우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제이에스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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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드라마에 있어 가장 넘기 어려운 산이자 라이벌은 바로 전작(前作)이 아닐까.

비단 시리즈물에서의 전작뿐만 아니라 같은 시간대 방송됐던 작품이든, 주연 배우의 전 출연작이든, 혹은 감독이나 작가의 전 연출작이든 호평을 받았던 모든 형태의 ‘전작’들은 현재의 결과물과 비교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항상 새 드라마의 출발을 알리는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작품만의 차별점에 관한 질문은 언제나 빠지지 않는 취재진의 단골 레퍼토리다. 많은 이들이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해 왔지만 글쎄, 실제로 자신감에 걸 맞는 차별화에 성공한 작품이 몇이나 될진 모르겠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MBC ‘봄밤’이 출발 전 많은 이들의 우려를 한 몸에 받았던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밥누나’)에서 섬세한 연출로 호평을 받았던 안판석 감독이 연이어 선보이는 로맨스 드라마인데다, ‘밥누나’의 남자주인공이었던 정해인이 또 한 번 주연으로 나서면서 전작과의 유사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해인과 호흡을 맞출 상대 배우 역시 ‘밥누나’의 손예진과 마찬가지로 연상인 한지민으로 낙점되며 ‘여주인공과 채널만 바뀐 밥누나2’가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이 같은 상황 속 지난 20일 첫 방송을 이틀 앞두고 열렸던 ‘봄밤’ 제작발표회에서는 안판석 감독에게 두 작품의 차이점에 대한 질문이 전해졌다. 당시 안 감독은 “(두 작품의 차별화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전작과 어떻게 차별성을 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서 ‘어떻게 다르게 만들까’를 고민하고 이런저런 계산을 하는 건 생각조차 없다. 그저 이야기에만 집중했다”고 답했다.

“전작과의 차별성을 두는 데 연연하기보단 ‘봄밤’의 이야기 자체에 집중했다”는 안 감독의 말은 작품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대답이었다. 22일 첫 방송 된 ‘봄밤’은 모든 드라마들이 숙제처럼 안고 있는 ‘전작과의 차별화’에 대한 모범적인 답안을 제시하며 ‘밥누나’의 그늘을 완벽히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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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은 ‘밥누나’와는 전혀 상반된 인물 설정으로 차별화에 성공했다. MBC ‘봄밤’ 캡처


먼저 ‘봄밤’은 전작과는 완전히 달라진 주요 인물들의 성격과 관계 설정을 통해 스토리에서의 비교 지점을 최소화 했다. ‘밥누나’에서 오랜 시간 알고 지냈던 누나 동생 관계였던 남녀 주인공이 ‘봄밤’에서는 우연한 기회에 처음 만난 동갑의 남녀로 바뀌었으며 여자 주인공에게는 결혼을 고민하고 있는 오래된 연인이, 싱글 대디인 남자 주인공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다는 전혀 다른 상황이 더해졌다.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얽힌 가족들 간의 관계에서도 특별히 전작과의 유사성 지적을 유발하는 부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해인, 한지민을 필두로 한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력 역시 ‘봄밤’의 차별화에 힘을 실었다.

먼저 정해인의 경우, 싱글대디 유지호라는 캐릭터를 맞춤옷처럼 소화하며 자신에게 쏠렸던 우려를 기대로 바꿨다. 앞서 ‘밥누나’에서 청량하고 설레는 직진 연하남의 이미지로 사랑을 받았던 정해인은 이번 작품에서 현실적이고 때로는 속을 알 수 없지만 자신을 찾아온 설렘에 솔직한 30대 ‘어른 남자’로의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풋풋함의 빈자리를 담백함으로 채운 정해인에게서 전작의 잔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한지민 역시 ‘눈이 부시게’에서 보여줬던 20대 대학생의 명랑한 모습 대신 장기간 연애, 결혼 앞에 고민하는 30대 여성의 모습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전작의 기억을 지웠다.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배우들의 완벽한 이해와 ‘믿고 보는’ 연기력을 통한 소화가 곧 작품의 차별점이 된 셈이다.

대신 ‘봄밤’은 ‘밥누나’에서 큰 호평을 받았던 서정적인 OST와 색감이 돋보이는 섬세한 연출은 그대로 유지하는 방향을 택했다. 참으로 영리한 선택이다.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한 강단 있는 태도는 ‘봄밤’에 안판석 고유의 감성을 더하며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

이만해도 첫 방송은 합격점인데, ‘봄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전작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계산하지 않았다”는 안판석 감독의 말처럼 ‘봄밤’은 전작뿐만 아니라 기존 로맨스 드라마들의 공식을 깨는 현실적인 설정들로 자신만의 색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랜 연인을 두고 새로운 남자에 대한 궁금증을 내 비추는 여주인공에게 절친이 건넨 “너 근데 지금 한 눈 팔면 그거 바람이다”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직언은 기존 로맨스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절친이 ‘무조건적인 사랑의 조력자’가 되어주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현실성 없는 러브라인 형성을 통해 로맨스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구태의연한 방식도 ‘봄밤’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례로 극 중 정해인이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이것도 인연이니 친구로 지내자”고 제안하는 한지민에 “미안하다.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고 답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한지민이 자리를 떠난 뒤 혼자 남겨진 정해인이 오랜 시간 혼자 화면을 채웠지만, ‘로맨스 드라마의 법칙’대로라면 돌아왔어야 할 한지민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앞서 현실 연애를 그렸던 다양한 작품들도 결국 정형화 된 로맨스 패턴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상황에서, ‘봄밤’이 보여준 현실적인 스토리 전개는 ‘역대급 변주’에 대한 기대감을 낳기에 충분했다.

큰 숙제를 떠안은 채 시작했던 ‘봄밤’ 속에는 흥행 공식에 의존한 전작의 답습도, 무조건적인 전작의 배척도 없었다. 전작의 벽 앞에서 고민하는 드라마들에게 ‘봄밤’은 꽤 오랜 시간 ‘차별화의 좋은 예’로 남을 듯싶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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