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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양의지 빈자리 채운 박세혁, 비결은 비밀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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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백업' 꼬리표 떼고 두산 새 안방마님으로 활약

포수 명가(名家) 두산 더그아웃에서 주전 포수 자리는 어딜까. 시원하고, 수분 섭취하기 편한 음료수 냉장고 오른편이다. 지난해까지 9년간 오직 양의지만 앉았다. 올해는 박세혁(29)이 거기 있다. 박세혁은 두산 입단 8년 만에 '백업' 꼬리표를 떼고 매일 경기에 나간다. 양의지가 NC로 이적해 '어우두(어차피 우승은 두산)' 전력이 안 될 거란 우려를 개인과 팀 성적으로 잠재웠다. 두산은 올 시즌도 21일 기준 단독 선두다.

◇'어우두' 안방마님 박세혁

최근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박세혁은 "매일 경기를 나갈 수 있다는 게 꿈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경기 시작까지 5시간도 더 남았는데 그는 벌써 몸을 풀었다. 비기(秘器)는 수시로 들춰보며 기록하는 수첩이다. 오늘 상대할 타자 8명과 투수진, 대타 요원들의 특성을 한 바닥씩 써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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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두산의 안방마님 박세혁은 국내 프로야구 최고의 포수 양의지가 떠난 자리를 완벽하게 메우고 있다. /인천=허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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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투수 : 몸쪽 직구 투 스트라이크 이후 포크볼 패턴.' 'B타자 : 공격적으로 치기 때문에 코스를 넓게 사용!' 'C타자 : 바깥쪽은 장타로 이어짐.'….

박세혁은 지난 3월 23일 개막전 이후 하루도 안 거르고 이 수첩을 쓴다고 했다. 끝난 경기를 복기하다가 떠오른 생각, 전력분석팀의 조언 등도 모조리 적는다. 그는 "포수는 야구장의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존재"라면서 "상대 타선을 삼진 잡거나 땅볼을 유도하고, 진루를 저지하는 일 등이 다 포수 손에 달렸다. 포수가 잘해야 팀이 이긴다"고 했다. 두산은 양 팀 최고 선발투수들이 연달아 격돌했던 LG와 어린이날 3연전 시리즈를 모두 이겼고 최근 SK전 2연승을 거둬 리그 단독 선두에 올랐다. 박세혁의 '지피지기(知彼知己)' 공부가 한몫했다.

◇'빡세' 야구로 우승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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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포수 박세혁이 매일 기록하는 야구 수첩. /양지혜 기자


20일 기준 46경기에 나선 박세혁은 타율 0.314, OPS(출루율+장타율) 0.845로 공격력이 리그 통틀어 상위권이다. 폭투와 패스트볼을 허용하는 비율도 매우 낮아 투수들이 마음 편하게 공을 던진다.

현재 리그 타율 1위(0.385)인 양의지는 언제나 그와 비교 대상이다. 그럼에도 박세혁은 양의지가 고맙다고 했다.

"의지 형은 그날 최소 실점을 미리 계산해 경기할 정도로 노련했어요.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FA(자유계약선수)로 높은 몸값을 받아 포수의 가치를 보여준 형이 자랑스러워요." 만약 양의지가 두산과 재계약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해야 할 운동을 계속했을 것"이라고 무심하게 답했다. 볕 들 날에 연연하지 않고 땀 흘렸기에 주전 마스크가 자랑스럽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세혁이는 일희일비 안 한다. 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치켜세웠다.

그에겐 양의지도 부러워할 '발'이 있다. "제가 포수치곤 달리기가 빠르거든요. 안타를 2루타로 만드는 주루 플레이로 득점 기회를 극대화할 겁니다. 발 빠른 포수의 매력을 느끼실 거예요."

박세혁의 아버지는 1989년 한국시리즈 MVP인 박철우(55) 현 두산 코치다. 어머니는 남편에 이어 아들의 야구까지 뒷바라지했다. 부자(父子)가 함께 있어 어머니는 마음 놓고 두산만 응원한다. 박세혁은 "우승 주역이 돼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관건은 체력. 여름엔 한 경기 뛰고 나면 체중이 2~3㎏ 빠지는 게 포수다. 박세혁은 지난겨울 괌 개인 훈련을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아베 신노스케(40)와 함께하며 베테랑 주전이 되는 법을 보고 배웠다고 전했다. 두산에서 올해 요미우리로 옮긴 고토 고지 타격코치가 다리를 놔줬다.

올 시즌 그의 목표는 '빡센 야구'다. "제 별명이 '빡세'거든요. 빡세게 한국시리즈까지 가 볼게요."

[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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