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 <옛사람의 삶과 풍류-조선시대 풍속화와 춘화>전시, 다음달 24일까지]
#1. 빼어난 여색은 좋은 반찬이라는 말은 / 천 년을 두고 내려오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 그대의 책상 아래 이 화첩을 드리니, / 날마다 부드럽고 따뜻한 고향에 들어가는 맛을 보리라. / 어찌 원제(元帝)의 풍정(風情)을 부러워하겠는가.
역관 이상적이 1844년 봄, 춘화첩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면서 쓴 발문의 내용이다. 전한(前漢) 때 궁녀를 그림으로 그려오게 해서 낙점했다는 왕 원제의 유희도 부럽지 않을만한 이 화첩은 신윤복의 <건곤일회첩>이다. 요즘으로 치면 '포르노그래피'나 '야사'에 빗댈 수도 있겠지만 조선시대의 춘화를 보고 있자니 운치와 함께 유머가 느껴져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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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1844년경, 종이에 수묵담채, 23.3x27.5cm (사진제공=갤러리현대) |
#1. 빼어난 여색은 좋은 반찬이라는 말은 / 천 년을 두고 내려오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 그대의 책상 아래 이 화첩을 드리니, / 날마다 부드럽고 따뜻한 고향에 들어가는 맛을 보리라. / 어찌 원제(元帝)의 풍정(風情)을 부러워하겠는가.
역관 이상적이 1844년 봄, 춘화첩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면서 쓴 발문의 내용이다. 전한(前漢) 때 궁녀를 그림으로 그려오게 해서 낙점했다는 왕 원제의 유희도 부럽지 않을만한 이 화첩은 신윤복의 <건곤일회첩>이다. 요즘으로 치면 '포르노그래피'나 '야사'에 빗댈 수도 있겠지만 조선시대의 춘화를 보고 있자니 운치와 함께 유머가 느껴져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건곤일회'(乾坤一會)는 제목대로 '하늘과 땅, 즉 남녀가 만나는 일'이 담겨있다. 여기 눈에 띄는 그림이 하나 있다. 지체 높은 양반가의 여인으로 보이는 두 여인이 춘화 삼매경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잠옷인 속적삼에 흰 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왼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춘화첩을 넘기고, 그 옆에 여인은 엎드려 뚫어져라 바라본다. 얼마나 은밀하고 짜릿한 그림일까, 보는 사람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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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단원 김홍도 (傳 檀園 金弘道), 운우도첩(雲雨圖帖) 중 일부, 19세기 전반경, 종이에 수묵담채, 28 x 38.5 cmx 27.5cm경, 종이에 수묵담채, 28 x 38.5 cm (사진제공=갤러리현대) |
#2. 대저 천지만물에 대한 관찰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사람에 대한 관찰은 정(情)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묘한 것이 없고, 정에 대한 관찰은 남녀의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진실된 것이 없다. (후략)
18~19세기를 걸쳐 살았던 문무자(文無子) 이옥(1760~1812)의 남녀풍속에 관한 글이 당대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조선 후기에는 춘화가 등장할 조건이 충족돼 있었다. 경제력의 성장과 함께 성리학 이념을 기반으로 삼던 예교와 풍속이 흐트러져 있었고, 일본·중국 등 이웃나라에서도 춘화가 대거 유행하던 때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에는 애정소설이나 사설시조, 판소리 등 문예작품에도 남녀의 성희와 애정사가 풍부하게 묘사됐다. 이는 춘화가 발달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배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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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는 "우리 춘화는 배경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며 "방 안에 담뱃대나 섹시한 모양의 촛대 등도 유심히 보라"고 말했다. |
전시 오픈에 앞서 갤러리현대에서 만난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전시된 춘화 한 점 한 점을 손자손녀들에게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설명했다.
이웃나라의 춘화들이 그러했다면, 한국의 춘화는 어떤 멋과 풍류를 담고 있을까.
"우리 춘화는 아주 서정적이지. 그러니까 그림을 볼 때 배경을 꼭 같이 봐야해. 진달래가 흐드러진 곳이나 물이 한껏 오른 버드나무 옆에서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세팅'이 기가 막히거든. 주인공과 무대를 같이 보라는 거야."
유 교수의 구수하고도 귀에 착착 감기는 설명 때문일까. 에로틱한 장면도 어쩐지 낭만이 젖은 삶의 한 부분으로 다가온다. 유 교수는 한 춘화를 가리키며 "이야~ 이것 좀 봐, 얼마나 좋으면 이렇게 달려들겠어? 허허" 웃으며 "우리 춘화를 보고 있으면 유머가 깃들어 있어 아주 재미있다"고 말했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춘화에 대해서도 "아주 섬세한 예술적인 품격이 살아있다"며 "이런 격조 있는 춘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는 흔치 않다"고 했다.
지난 15일 개막한 <옛사람의 삶과 풍류-조선시대 풍속화와 춘화> 전시는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과 두가헌 갤러리에서 다음달 24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회화의 다채로운 장르를 두루 섭렵한 미공개작까지 한데 모았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작품으로 전해 내려오는 만 19세 이상만 관람할 수 있는 춘화 15점을 비롯해 대중에게 처음 공개되는 심전 안중식의 '평생도'와 조선후기 화가들의 풍속화 10점 등을 선보인다. 또 평민 출신 풍속화가 김준근의 작품 중 새로 발굴된 미공개작 50여 점도 만날 수 있다.
전시 기간 중 갤러리현대 신관 지하 1층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무료강의가 열린다. 오는 23일 오후 2시 '옛사람들의 삶과 풍류'(강사: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와 다음달 13일 오후 2시 '조선춘화의 에로티시즘'(강사: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이다. 선착순 150명이며 사전예약은 할 수 없다. 전시 관람료는 일반(대학생 포함) 5000원, 학생 3000원. (02)2287-3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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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근 풍속도 '시집가고', 19세기 말, 비단에 채색, 30x36cm (사진제공=갤러리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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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기자 ash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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