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횡령 혐의 다툼의 여지, 성접대 혐의도 구속사유 안돼"
152명 투입돼 105일 수사… 핵심 의혹 '경찰 유착'도 못 밝혀
이승현(29·예명 승리)씨가 14일 밤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그룹 '빅뱅' 출신 이승현(29·예명 승리)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14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승리의 동업자 유모(34)씨 영장도 기각됐다. 경찰은 승리 구속으로 '버닝썬 사건' 수사를 마무리 지으려 했지만 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에 허점이 있었다는 지적을 받게 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와 지능범죄수사대는 승리와 유씨가 2015년 한국을 찾은 일본인 사업가 일행에게 성 접대를 하고, 자신들이 투자했던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의 자금을 횡령했다며 수사해왔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횡령 부분은 다툼의 여지가 있고,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도 구속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버닝썬은 작년 12월부터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인터넷에서는 경찰의 비호 아래 클럽에서 연예인과 외국인 등이 성범죄를 저지르고 마약을 투약했다는 의혹이 기정사실처럼 언급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고, 민갑룡 경찰청장도 "경찰의 명운을 걸고 수사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152명의 수사 인력을 투입해 105일간 수사해왔다.
경찰 내부에서는 그간 승리 구속을 이번 수사의 '클라이맥스'라고 했다. 경찰은 승리를 총 18차례 조사했다. 승리 측 변호인은 "경찰이 횡령 프레임을 씌워 과도하게 몰아갔다"며 70여쪽 분량의 변호인 의견서를 경찰이 아닌 검찰에 제출했다.
경찰이 승리 구속에 매달린 것은 버닝썬과 관련된 경찰 유착 수사 성과가 미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경찰은 이번 수사에서 현직 경찰 8명을 입건하고 이 중 1명을 구속했다. 하지만 이 중 버닝썬 유착과 직접 관련된 사람은 버닝썬에 미성년자가 출입한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경찰관 한 명뿐이다. 유일하게 구속된 염모 경위는 과거 다른 클럽에서 일어난 미성년자 출입 사건을 무마해준 혐의다.
경찰 관계자는 버닝썬 사건의 발단이 된 작년 11월 폭행 사건에서도 "경찰과 클럽의 유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클럽 손님이던 김모(28)씨는 버닝썬에서 클럽 직원과 시비가 붙었다. 김씨는 성범죄를 막으려다 폭행당했는데 출동한 경찰이 클럽 측을 감쌌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은 지구대 직원을 모두 조사했지만 김씨 주장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버닝썬에 투자했던 승리와 동업자 유씨를 비호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윤모(49) 총경에 대한 수사도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승리, 유씨 등이 참여한 가수 정준영(30·구속)씨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내용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제보했던 방모 변호사는 지난 3월 13일 라디오에 출연해 "승리 등이 경찰서장보다 위인 계급과 유착됐다"는 취지로 주장해 큰 논란이 일었다. 윤 총경은 대화방에서 '경찰총장'으로 불렸다.
하지만 윤 총경에게는 과거 승리 등이 운영했던 다른 클럽의 경찰 수사 정보를 알아봐 준 혐의(직권 남용 권리 행사 방해)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윤 총경이 유씨 등으로부터 식사·골프 접대·콘서트 표를 받았지만 대가성이 없어 뇌물로 볼 수 없고, 액수가 적어 부정청탁금지법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도 "청와대와 여론 눈치를 보다 보니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썼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론에 떠밀려 수사 인력을 대거 투입했는데 결국 '경찰 수사 불신'이라는 역풍을 맞게 됐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18일 버닝썬 사건과 관련해 "불법적 영업과 범죄 행위에 대해 관할 경찰과 국세청 등 일부 권력기관이 유착해 묵인·방조·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짙은 사건"이라고 했다. 서울경찰청은 다음 날 버닝썬 수사 인력을 16팀 152명으로 확대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의 철저한 수사로 유흥업소와 조직적 유착이 없다는 걸 밝혀낸 것"이라면서도 "국민은 꼬리 자르기, 수사 무능으로 바라보니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다"고 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악재(惡材)를 맞게 됐다"고 했다.
[김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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