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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국회와 패스트트랙

'패스트트랙' 압도적 찬성? '답정너' 여론조사 문항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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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형 비례대표제' 설문에선 "현행 선거제도에 문제점 있다"고 전제
공수처법 설문에는 "독립적으로 수사하기 위한 기관이 공수처"
패스트트랙 처리 설문엔 "자유한국당은 반대한다" 표현 넣어

"자유한국당이 장외투쟁을 하고 철야농성에 들어갔는데, 참 명분 없는 민망한 일이다. 왜냐하면, 공수처에 대한 국민의 찬성률은 거의 80%에 이르고 선거제 개혁도 최근 여론조사를 봤더니, 찬반이 58대21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여야 4당이 함께 하겠다는데 이에 반대해 장외투쟁을 하고 농성하는 것은 국민의 뜻과 거꾸로 가겠다는 선언이다."

조선일보

지난달 29일 밤 국회 사개특위 이상민 위원장이 문체위 회의실에서 열린 사개특위 전체회의에서 한국당 의원들의 항의 속에 공수처법·검경수사권 조정 법안 패스트트랙 지정을 알리는 의사봉을 드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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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최고위원은 국회에서 열린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권역별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 법안 등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기 위해 한국당을 뺀 여야4당이 한국당을 압박하고 있을 때였다. 4당은 이런 여론을 내세우며 지난달 29일 밤 패스트트랙을 강행 처리했다.

그러나 일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법안에 대한 여론조사의 설문 문항이 특정한 응답을 유도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해당 여론조사 질문지를 보니 가치중립적이라고 판단하기 힘들게 설문이 구성돼 있다. 이런 설문은 응답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리얼미터·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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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박광온 최고위원이 언급한 선거제 개정에 대한 여론조사는 지난해 11월 8일 발표된 것이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tbs의뢰로 11월 7일 전국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선거법 개정안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58.2%, 반대한다는 응답이 21.8%로 조사됐다.

이 설문 문항은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에서는 2위 이하를 찍은 투표는 모두 사표(死票)가 되고,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고 전제했다. 설문 대상자에게 현행 선거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전제한 뒤 답변을 물어본 것이다. 이 설문에선 선거제 개정에 대해 '개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하는 정당이라면 몰라도 여론조사라면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개혁 대신 '개편'이나 '개정'이라는 더 가치중립적인 단어를 쓰는 게 조사의 객관성 측면에서 더 타당할 수 있다. 개정안에 대해 '개혁'인지 '개악'인지 판단하는 것은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선거제는 복잡하기로 소문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한 번 더 변형한 것으로 현역 의원들조차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은 "국민은 선거제도를 다 알 필요가 없다"는 말을 했을 정도다. 국민에겐 난수표 같은 복잡한 선거제 개편안을 '사표를 최소화하고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선거제 개혁'이라고 단순화하고 긍정적으로 설명한 뒤 답변을 얻는 것은 정확한 여론을 반영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 문항은 선거법 개정은 현행 의원정수인 300석보다 의석 수가 늘어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여야4당은 의원정수를 300석으로 유지하는 내용의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제 개편 법안을 제출하긴 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상정이 처리 된 뒤 여권에선 벌써부터 지역구 축소에 반발해 의원정수를 확대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응답자의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현행 선거 제도에 문제가 있고, 그래서 개혁하려고 한다'고 물어보면 당연히 찬성 응답이 높게 나온다"며 "게다가 새로 도입하려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설문하지 않았다면 정확한 여론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당을 뺀 여야44당이 추진한 선거제 개편에 찬성 응답이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른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뜻의 신조어)'식 조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리얼미터·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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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서 언급한 공수처법 관련 여론조사는 올해 1월 10일 발표된 것이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9일 전국 유권자 5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공수처 설치 찬성 응답은 76.9%, 반대 응답은 15.6%로 집계됐다.

이 설문 문항은 "재작년 9월, 대통령, 국회의원, 판·검사, 고위공무원과 경찰 등의 범죄를 독립적으로 수사하기 위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권고안이 발표됐다"고 설명했다. 고위공무원의 범죄를 '독립적'으로 수사하는 기관이 공수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야4당이 제출한 공수처 설치법에 따르더라도 공수처가 과연 대통령 등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수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반론이 존재하고 있다.

여야 4당이 제출한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장은 야당이 반대하더라도 대통령과 여당이 원하는 사람이 임명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한국당에선 주장하고 있다. 또 공수처 내 검사 역시 처장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때문에 한국당에선 "이번 정권의 '코드 인사' 기조에 따라 공수처에 민변·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이 대거 기용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조선일보

리얼미터·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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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과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국민의 요구'라고 말했다. 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패스트트랙 처리를 시도한 지난달 25일 오전, "리얼미터의 조사에 의하면 패스트트랙 합의에 대해 긍정 평가가 50.9%, 부정 평가는 33.6% 였다. 국민은 선거제도 개선과 공수처 설치를 신속하게 추진하라고 국회에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 즉 조 의장 발언 하루 전에 결과가 나왔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달 23일 전국 성인 504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것이다.

설문 문항은 이렇다. "여·야 4당은 선거제 개편,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등 개혁 법안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해,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국회 본회의 표결에 자동 상정하는, 이른바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는데 합의했다." 역시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정부·여당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해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 1일 에 대해 "(수사권 조정안은) 특정한 기관(경찰)에 통제받지 않는 1차 수사권과 국가정보원이 결합된 독점적 권능을 부여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도 "경찰은 국내정보 업무를 전담하면서 거의 통제를 받지 않는 1차 수사권을 행사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과거 국정원에 모든 사건에 대한 1차 수사권을 준 것과 다름없게 됐다"고 했다. 이런 반론은 소개하지 않고 '개혁 법안'이라고만 설명한 것이다.

패스트랙이 여야 대치 속에 강행 처리된 후 지난 2일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30일 tbs 의뢰로 전국 성인 503명에게 패스트트랙 처리에 대한 인식을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잘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51.9%, '잘못했다'는 부정적 평가는 37.2%로 조사됐다.

이 결과가 나온 설문은 "여·야 4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선거제 개편, 공수처 설치 등 관련 쟁점법안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했다. 이에 대해 한국당은 반대하고 있다. 이 같은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당은 반대하고 있다'는 문장을 넣어, 한국당 지지자가 아니라면 패스트트랙에 긍정적으로 평가하라고 유도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 같은 쟁점 사안에 대한 여론조사에 대해 전문가들은 질문지에 응답자의 판단을 유도할 수 있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점이 있다'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고 있다'와 같은 표현이다. 배종찬 인사이트K 연구소장은 "설문조사는 묻고자 하는 것만 최대한 간단하게 질문해야 한다. 설문 문항을 단순 명료하게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질문지가 균형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형준 교수는 "패스트트랙에 대한 설문조사 등은 여권에 유리하게 설계된 설문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기사에 언급된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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