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라, 미래차 개발 위한 환경 조성으로 분석
일본 완성차 기업이 영국에서 철수하는 진짜 이유는 미래차 개발을 위한 환경조성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12일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해외시장뉴스에 따르면 최근 혼다, 도요타, 닛산 등 일본의 완성차 기업들이 ‘영국 생산 철수’를 발표했다.
혼다의 경우 지난 2월19일 영국 남부에 있는 스윈던 공장의 주력생산 모델인 사륜차 ‘시빅’의 생산을 2021년 중 종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치고 다카히로 혼다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철수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와 관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국을 비롯한 각국 주요 언론은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 생산의 메리트가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코트라 측은 혼다의 영국 철수는 오래전부터 예견된 해외생산망 조정 전략이라고 업계 관계자의 말을 빌어 전했다. 스윈던 공장 생산대수는 2018년 약 16만대로 생산능력의 60%를 넘기지 못하고 있으며, 높은 판매율을 예상했던 EU의 판매대수는 생산량의 35%로, 55%를 차지하고 있는 북미 판매와 대비되는 상황이다. 2018년 유럽지역 내 혼다의 시장점유율은 0.8%로 유럽 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F1 자동차 레이스에 참가해 우승까지 했지만 판매실적 확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완성차 기업은 일반적으로 풀 모델 체인지(전면 개량) 계획을 3∼4년 전부터 결정해 주요 부품사에 전달하는데, 이번과 같이 생산 이전을 동반하는 경우에는 훨씬 이전에 결정됐을 것이라는 게 코트라 측의 관측이다.
닛산은 지난 3월3일 다목적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엑스트레일’의 차기 모델을 영국이 아닌 일본 규슈 공장에서 생산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같은 달 12일에는 영국 선더랜드 공장에서 2019년 중반부터 고급차 ‘인피니티QX30’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2018년 인피니티의 유럽 판매량은 5800대로 전 세계 판매량의 2%에 그쳤는데 이를 계기로 향후에는 미국과 중국 2대 시장에 주력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 자동차도 지난 3월6일 노딜 브렉시트의 경우 2023년 이후 영국 생산 철수 가능성을 시사했다. EU 완성차나 부품 거래에 관세가 발생한다면 영국 생산의 경쟁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도요타의 요한 판제일 집행임원(유럽법인 대표이사)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국제 자동차 쇼에서 일본 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관세가 부과되는 것은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며 노딜 브렉시트가 결정된다면 (철수를) 향후 선택지로 의논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요타는 영국 중부 버나스톤에 완성차 공장과 엔진 공장을 갖추고 총 3200명을 고용하고 있다. 버나스톤 공장은 1992년 생산을 개시했고 지난해에는 12만9000대를 생산하며 영국 전체 생산대수의 약 10%를 차지했다. 도요타는 2017년 추가 투자를 발표했으며, 올해 1월 유럽에서 발표한 ‘카로라(구 오리스)’의 신모델의 생산을 시작했다. 노딜 브렉시트가 결정된다면 차기 모델 전환 시기가 도래하는 2023년 이후 영국 생산 철수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도요타의 영국 공장은 생산된 부품의 약 50%와 완성차의 약 90%를 영국 이외의 EU 가맹국으로 수출하고 있는데, 현재는 무관세지만 브렉시트 이후 WTO(세계무역기구)가 정한 대로 10%로 관세가 붙는다면 수익성은 크게 저하될 전망이다.
일본 자동차기업의 자국 유턴은 브렉시트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지만 진짜 이유는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변화 때문이라고 코트라는 추정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자국 공장으로 생산량을 배정하면서 일본 내 자동차 생산량은 증가하고 있는데, 지난해 972만7189대를 생산해 전년 대비 0.4% 증가했다. 2017년 증가율은 5.3%를 기록했다. 일본 내 자동차 생산량은 2006년 1148만대로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가 2011년 900만대 밑으로 떨어졌다. 이후 다시 900만대 후반대로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일본 기업의 자국 유턴 흐름은 엔화 약세와 정부의 법인세 인하 등의 영향도 있었지만 자국 중심의 미래차 생태계 조성 전략이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코트라는 분석하고 있다. 일본의 한 자동차산업 전문가는 인터뷰를 통해 “미래차 등 신기술 개발은 싼 노동력이 필수 경쟁요소가 아니라 부품회사, 연구진과의 긴밀한 협력이 경쟁요소이기 때문에 자국에서 개발하려는 경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코트라는 전했다.
해외 생산망 조정 중인 글로벌 자동차기업은 일본 기업들만 있는 게 아니다. 제너럴모터스(GM)는 2017년 유럽시장에서 철수하고 지난해에는 한국 군산공장과 북미 공장 4곳의 폐쇄결정을 내리는 등 수년째 생산지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우버’의 등장으로 기존 자동차기업 사업모델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우버 테크놀로지즈(Uber Technologies)의 등장을 계기로 글로벌기업에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고 수십만대 생산 규모의 공장을 세계 각지에 두어 판매하는 방식이 과거의 산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MaaS(Mobility as a Service) 사업자의 등장이 판매량으로 경쟁하는 자동차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한계를 주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MaaS는 ‘서비스로서의 이동’이라는 뜻으로 모든 교통수단을 하나의 통합된 서비스로 제공하는 개념을 일컫는 용어다. 단순 카셰어링의 개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개인 교통수단을 포함해 열차, 택시, 버스, 차량 공유, 자전거 공유 등 모든 교통수단이 하나의 앱을 통해 경로를 제공하고 예약과 결제까지 가능한 첨단 시스템을 의미한다.
글로벌 자동차기업도 해외생산 중단과 더불어 MaaS에 주목하고 집중 투자를 하고 있다. 포드는 MaaS 관련 스타트업 체리엇을 인수해 운영 중이고, 다임러는 2008년부터 북미 및 유럽 주요 도시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를 시작해 약 100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GM은 자율주행 스타트업 크루즈를 인수했으며, 미국 주요 도시에서 자율주행 택시 2500대를 투입해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메르세데스 벤츠 또한 보쉬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대에 운전자가 필요없는 자율주행 택시와 셔틀을 운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
미국 신기술 부문 연구소 리싱크엑스(ReThinkX)는 MasS 확산으로 차량 수요가 격감해 2030년에는 미국 시민들의 발이 되는 운송수단 중 95%는 주문에 따라 호출되는 자율주행 전기차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스위스 투자은행(UBS)도 2035년이 되면 시민의 80%가 로봇 택시를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자동차기업도 이러한 산업변화에 발맞춰 미리 대비하고 있다. 도요타의 경우 이미 우버와 2016년 MOU를 체결했고 지난해에는 우버에 5억달러(약 5550억원)를 추가로 투자했다. 양사는 자율주행차량 공동개발에 나서는데 2021년 첫 선을 보이는 것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코트라는 “지금까지 자동차기업은 신차 개발에 필요한 기술이나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공장설비에 투자하고 그 성과를 ‘자산’으로써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으로 이익을 얻어왔다“며 “그러나 앞으로 자동차 그 자체도 ‘자산’이 되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자동차가 제공하는 ‘이동 서비스’가 됐고 자동차기업은 제조한 자동차를 소유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장 수나 높은 판매량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으며 차량생산을 특정차종과 생산지에 집중시켜 효율적으로 이윤을 낳고 그것을 새로운 서비스 투자로 돌리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우상규 기자 skwoo@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