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독립·투명성 높이지만 ‘과감한 결단’ 쉽지않아
재계에 그룹 총수들의 퇴진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해온 현 정부에서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오너 일가의 지휘 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경영 관행은 전문 경영인에 의한 기업 경영 구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경영 판단의 투명성을 높이고,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얻는다. 객관적으로 기업 비전을 구체화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반면 대규모 투자 등 과감한 의사결정이 위축되고 단기 성과 위주의 소극적인 경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지난 28일 최근의 부실경영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퇴진하겠다고 전격 발표한데 이어 29일 열린 금호산업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금호산업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개최한 제47기 정기주총에서 당초 의결 안건으로 상정했던 박삼구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의안을 철회했다. 이로써 박 회장은 그룹 회장직과 아시아나항공, 금호산업의 대표ㆍ등기이사직에서 모두 물러난다.
박 회장이 퇴진을 결정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당분간 이원태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비상경영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빠른 시일 내 외부 인사를 그룹 회장으로 영입한다는 계획이다. ▶관련기사 2면
앞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대한항공의 사내이사 선임에 실패하며 양대 항공사는 동시에 전문경영인 체제로 접어들게 됐다.
두 사람 모두 경영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됐다는 점에서 완전한 자의로 보긴 어렵지만, 전문경영인 체제로 경영이 빠르게 정상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너들의 전격 퇴진은 지난해 말부터 이어져 왔다.
작년 11월 이웅열 코오롱 전 회장은 그룹 회장직을 내려놓으며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에 이 전 회장은 올해 1월 그룹 회장직을 비롯해 지주회사인 (주)코오롱과 코오롱인더스트리(주) 등 계열사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이 회장의 퇴임 후 코오롱그룹은 지주사를 중심으로 한 각 계열사의 책임 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국내 바이오업계의 신화적 인물로 꼽히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2020년 말 미련 없이 은퇴하겠다고 시한을 발표해 놓은 상태다. 서 회장은 ‘소유와 분리’ 화두를 꺼내들며 은퇴 후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아들에게는 이사회 의장을 맡겨 회사의 미래를 고민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교촌치킨 창업주인 권원강 교촌에프엔비 회장도 최근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창사 이래 최초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너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하는 관행을 바꿔 경영 투명성을 높히는 시도도 주목받고 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최근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지주사 SK(주)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대신 사외이사인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되며 이사회가 경영진을 견제하는 구조를 한층 ‘업그레이드’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추세는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서 전문경영인의 전문적이면서도 객관적인 판단으로 주주와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높일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또 기업의 지배구조가 보다 선진적인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오너 경영’의 순기능을 지목하며 양자의 절충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들의 실적을 보면 오너가 있는 기업과 없는 기업의 차이가 하늘과 땅”이라며 “반도체 등 대규모 투자로 경제를 키워 온 우리나라 실정을 감안하면 대규모 투자와 리스크가 큰 경영 결단이 필요할 때 ‘오너의 부재’는 소극적인 경영 판단을 초래할 우려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세진 기자/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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