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회장, 모든 직책 내려놓고 물러나기로
산업은행 등 채권단 압박 컸을 듯
내년 부채비율 1000% 달할 것으로 보이나 마땅한 대책 없어
아시아나 “회장으로 외부인사 영입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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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유동성 위기 등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하자 “곪았던 상처가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박 회장의 과거 공격적인 인수 등으로 촉발된 자금난이 결국 박 회장을 끌어내렸다는 평가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자금난의 출발점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박 회장은 그룹 외형 확장 차원에서 총 10조5000억원을 들여 대우건설(2006년)과 대한통운(2008년)을 인수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면서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 대우건설 등의 기업가치가 떨어지고, 채권단의 자금 상환 압박이 거세지면서 재무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결국 2009년 박삼구 회장과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결별하고 그룹도 두 개로 쪼개졌다.
당시 박삼구 회장은 사태에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났으나 2010년 채권단의 요구로 회장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그룹 재건’을 내세우며 다시 무리한 인수전에 나섰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매각하고 주요 계열사 워크아웃 등으로 그룹을 잠시 살렸지만, 2015년 7300억원을 들여, 전에 팔았던 금호산업의 재인수에 나섰다. 2017년에는 금호산업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내식 업체를 바꾸는 등 무리한 경영을 벌이다 지난해 7월 ‘기내식 대란’을 낳으며 대국민 사과까지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그룹 대들보인 아시아나항공의 부실화가 급격히 진행됐고, 이는 박 회장이 경영 퇴진을 선언하는 결정타가 됐다. 별도기준 부채비율이 800% 이상으로 치솟은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확보 계획이 거듭 실패하고, 최근 감사보고서 ‘한정’ 사태로 시장 신뢰까지 잃었다. 이 상황에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압박이 거세지자 박 회장은 책임을 지고 퇴진을 선언했다.
27일은 박 회장에게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됐다. 아시아나항공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쪽 설명을 종합하면, 박 회장과 이동걸 산은 회장은 이날 만나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정상화 추진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박 회장은 산은 쪽에 경영정상화를 위한 협조를 요청했으나, 이 회장은 “협조에 앞서 대주주와 회사의 시장 신뢰 회복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 회장은 본인의 용퇴까지 내걸고 지원을 요청했고, 결국 하루 만에 경영 퇴진을 공개 선언했다. 금호아시아나는 박 회장의 퇴진 뒤에도 추가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동걸 산은 회장은 전날 오전 국회 정무위 업무보고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자구노력’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의 업무협약(MOU)’을 요구한 바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핵심 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은 만성적인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지 못한 채 위태로운 상태다. 지난해 4월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5500억원가량을 조달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기로 업무협약(MOU)을 맺었지만 약속했던 영구채 발행이나 유상증자 등에 실패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이날 낸 보고서에서 “2018년 말 총차입금이 전년에 견줘 9천억원 감소하긴 했지만, 주요 노선의 현금흐름이 담보로 제공되는 유동화차입금 의존도는 26%에서 36.3%로 늘었다”며 “실질 재무부담이 완화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해 12월엔 박 회장이 보유한 금호고속 등 지분을 산은에 담보로 제공하고 산업은행의 외화보증여신 700억원의 만기 연장을 겨우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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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시아나항공의 감사보고서 ‘한정’ 의견 사태는 남아있는 한 줌의 신뢰마저 잃게 했다. 아시아나항공은 22일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보고서 ‘한정’ 의견을 받아 감사보고서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매출액·영업이익 숫자가 바뀌었고, 당기순손실은 애초 발표보다 900억원이나 늘어났다.
이번 결정으로 박 회장은 2002년 그룹 회장에 오른 지 17년 만에 경영에서 물러나게 됐다. 박 회장의 퇴진으로 전날 주총에서 축출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까지 20년 가까이 국내 양대 국적항공사를 이끌어온 수장이 하루 사이에 자의든 타의든 대표직에서 내려오게 됐다.
아시아나항공은 당분간 이원태 부회장을 중심으로 그룹 비상 경영위원회 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비상경영위는 그룹 매출의 60%를 담당하는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고, 이 위기가 다른 계열사에 전염되지 않도록 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배구조는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지고 아시아나항공 아래에는 아시아나아이디티(IDT), 아시아나에어포트,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자회사가 있다.
신민정 정세라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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