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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어게인TV] '도올아인 오방간다' 도올, "3.1 운동, 나라 잃은 지 9년 만에 거족적인 민족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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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사진=KBS1 도올아인 오방간다


[헤럴드POP=장민혜 기자]도올 김용옥이 여운형과 3.1 운동을 설명했다.

9일 저녁 방송된 KBS1 '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는 몽양 여운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날 '대한민국은 헬조선인가'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관객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저는 영업을 하고 싶다. 주류 영업과 건설 영업을 하고 싶었는데 다른 분야 영업을 꿈꾼다. 취업 준비 기간이 8개월이었고 자소서를 200곳 썼고 100곳 정도 면접을 봤다. 저한테 면접 질문이 '여자인데 왜 영업을 하려고 하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벽에 부딪혔다. 그 때문에 헬조선이라고 느꼈다"라고 털어놨다.

도올은 "과거 여성들이 불합리하게 억압받던 상황에 비하면 지금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라는 대답을 내놨다. 관객은 "저는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많았던 거다. 제가 지원했던 면접관들은 그랬다. 그런 인식이 바뀌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고 바뀌도록 사회구성원들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도올은 "제1차 세계대전이 나고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외친다. 제국주의는 약소국가를 잡아먹는다. 제국주의에 지배당한 나라들도 자유를 주장할 수 있다. 당시 최강국으로 등장한 미국 대통령의 말에 지배당하던 국가들이 힘을 얻었다. 이때 여운형은 노비들도 독립을 시키고 중국 금릉대학에 입학해서 영어를 공부했다. 여운형 선생이 영어를 꽤 잘한다. 거기서 1918년 상해에서 신한청년당을 조직한다. 딱 7명이었다"라고 말했다.

도올은 "왕정정이라는 중국 친구가 있다. 여운형은 왕정정과 친분이 있었다. 왕정정과의 친분을 계기로 크레인 면담에 성공한다. 일체 침략 하에 신음하던 당시 상황과 독립을 면밀히 알렸다. 크레인은 '윌슨에게 당신들의 사정을 다 전달하겠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파리강화회의에 사람을 보내라'라고 전했다. 밀사를 보내놓고 한국 나름대로 전국규모 운동을 벌이고 세계적으로 여론을 일의면 파리강화회의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거라고 크레인이 말했다. 이렇게 하면 큰 변화가 올 거라고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그날 비전을 얻고 신한청년당은 모여서 회의를 한다. 청원서 두 통을 윌슨에게 보내고 여운형이 서명을 했다. 윌슨에게 정하고 파리특사를 위임하기 위해 연락하기 위해 우사 김규식에게 연락했다"라고 설명했다. 우사 김규식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부주석을 역임했다.

유아인은 "외국에 한국의 상황을 알리는 게 여운형 선생의 목적이었다는 게 맞냐"라고 물었다. 도올은 "국민들은 세부적으로 모르더라도 지도자들이 독립 선언을 기획하고 있다는 것에 희망을 품었다. 일본에 저항해야 한다는 자각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도올은 "나라를 잃은 지 9년 만에 거족적인 민족운동을 했다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도올은 "3.1 운동이 전 국민이 평화적으로 만세를 부른 거다. 몇 달을 계속했다. 어린 학생이 태극기를 흔들자 일본 경찰이 팔을 잘랐다. 다른 팔로 흔드니까 그 팔도 잘랐다. 그러면서 북경대학 학생들이 '조선 민족들은 국가를 찾기 위해 이토록 용감한데 우리 중국인들은 과연 무엇하고 있는가'라는 논설이 있다. '조선독립운동 중에서 우리는 새로운 걸 얻어야 한다. 3.1 운동은 무기를 갖지 않은 혁명이고 순수한 학생들이 주체가 된 혁명이다. 3.1 새 교훈을 얻어 일제의 산둥반도에 대한 세력을 분쇄하고 중국에서 몰아내자'라고 했다. 근대적 국가가 되려면 '우리 민족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민족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중국은 민족의식이 부족했고 국가관이 박약했다. 중국은 독립 투쟁이 없었다. 우리는 나라를 뺏겼고 나라를 찾아야 한다고 하는 거국적인 민족의식이 형성되면서 이런 운동이 일어나서 중국 지식인들이 3.1 운동을 엄청 부러워했다. 중국도 사실 3.1 운동 영향으로 근대적 민족국가로의 변화를 꾀했다. 당시 중국에서 엄청난 민족 운동이 일어났다. 5.4 운동도 3.1 운동을 교훈 삼아 일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도올은 "일본은 여운형을 변절시키면 민족운동은 끝날 거라 생각했다. 일본에 데려다가 엄청난 대접을 해 주고 원하는 대접을 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작전을 짠 거다. 모든 사람이 가면 안 된다고 했지만, 여운형은 가겠다고 했다. 여운형은 '내가 죽을지언정 변절을 하지 않겠다'라며 일본으로 떠났다. 여운형은 가서 일본 고관들과 대화를 했다. 대화를 하는 족족 다 분쇄를 시킨다. 당시 일본 최고였던 제국 호텔이 있다. 제국호텔 가장 넓은 연회장에 전 세계 언론인들을 불러놓고 여운형은 연설을 했다. 여운형은 조선민에게도 생존권이 있고 민족 독립을 희구하는 건 당연하다. 왜 일본은 조선민에게 숨쉴 권리를 주지 않고 무슨 권리를 주장하냐. 나는 밥을 먹어도 독립을 꿈꾼다고 말했다. 진정으로 일본이 살고자 한다면 조선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독립시키지 않는다면 일본이 패망한다고 선언했다. 여운형과 같은 인품, 자신감, 용기를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그는 "20세기 전반 세계의 약 80%가 식민지였다. 많은 식민지 중 전 국민이 독립운동을 위해 일어났고 임시정부를 유지 시킨 민족은 대한민국뿐이다. 우리는 치열하고 치밀하게 싸웠고, 그때는 정말 청년 한 사람의 힘이 이렇게 컸다. 전적으로 국민들의 힘이지만 국민의 열망을 결집시킨 의지가 몇 명의 청년 힘 가지고도 가능했다. 이러한 젊은이들이 결집이 지금도 가능하지 않냐고 생각한다. 헬조선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혁명조직을 만들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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