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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한국 축구' 파울루 벤투와 대표팀

[한준의 작전판] 기성용 이탈이 벤투 축구에 미친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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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볼을 점유하고 빌드업을 강조하는 파울루 벤투 감독에게 기성용(30, 뉴캐슬 유나이티드)은 포기할 수 없는 선수다. 벤투 감독 부임 당시부터 자신의 대표팀 경력을 최장 2019 AFC 아시안컵 본선까지로 한정했던 기성용은 필리핀과 1차전에서 입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녹아웃 스테이지 돌입 전 소속 팀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누구도 기성용의 역할을 그대로 해낼 수는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몇몇 중요한 능력을 다른 선수들이 나눠서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발생한 것은 중원의 유연성 저하다.

벤투 감독은 그동안 기성용과 정우영을 주전 중앙 미드필더 조합으로 삼았다. 그 앞에 공격형 미드필더를 배치해 중앙 지역에서 볼이 살아 움직이게 했다. 풀백을 윙어 영역으로 전진시키는 것은 상대 중원 수비를 헐겁게 하고, 중앙 지역에 우리 선수를 많이 포진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 빌드업의 교과서, 기성용이 빠지니 중원 유연성이 사라졌다

조밀한 중앙 지역에서 기회를 만들기 위해선 안정된 볼 관리 능력과 짧은 패스, 드리블 전진, 긴 방향 전환 패스를 섞어 틈을 만들어야 한다. 기성용은 센터백 사이로 내려가 빌드업의 기점이 되는 것은 물론 스스로 공을 운반해 전진하거나, 전방 좌우 지역으로 크게 방향을 전환하는 패스까지 모든 유형의 빌드업을 최고 수준으로 수행하는 선수다.

필리핀과 1차전에 기성용이 부상 당하자 투입된 선수는 황인범이다. 키르기스스탄과 2차전에는 정우영-황인범을 그대로 선발 조합으로 냈다. 두 경기 모두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구자철이 맡았고, 측면에 배치된 이청용이 중앙 지역으로 이동하며 중원 빌드업을 함께 했다.

손흥민이 합류한 중국과 3차전에는 구자철 자리에 손흥민이 들어가고 정우영과 황인범이 다시 중앙 미드필더로 짝을 이뤘다. 바레인과 16강전도 변화는 없었다.

정우영-기성용-황인범으로 중원을 구성했을 때는 위치 이동이 활발했다. 정우영과 기성용이 서로 위 아래로 오르내리고, 황인범이 공격형 미드필더 영역에서 키패스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황인범이 뒤로 내려가면 기성용이 더 올라가기도 했다. 중앙 지역에서 상대의 예측을 깨는 스위칭 플레이가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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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이 빠진 이후 조합은 조금 더 경직됐다. 손흥민은 2선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황인범도 정우영과 손흥민의 사이 지역으로 한 칸 올라가 키패스에 집중한다. 정우영은 센터백 앞 자리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고정된 패턴으로 경기하고 있다.

정우영이 빌드업의 기점이 되고, 윙어로 배치되었지만 실제로는 인사이드 하프, 메찰라로 불리는 하프스페이스 영역의 플레이메이커로 뛰는 이청용이 황인범과 함께 중앙에서 운반하는 역할을분담했다. 공격 시에는 좌우 풀백이 높이 올라가고, 정우영이 중원에서 한 칸 뒤, 이청용과 황인범이 손흥민 뒤에 서는 형태로 빌드업 대형이 이뤄진다. 황의조가 전방 꼭지점으로 상대 최종 수비라인을 상대하고, 황희찬이 돌파 타이밍을 잡는다.

◆ 고정적인 중원 패턴, 불가능한 로테이션

문제는 기성용없는 중원 조합이 기술적인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방향 전환 패스의 속도와 정확성이 떨어지고, 앞서 언급한대로 조합의 변형이 쉽지 않으며, 무엇보다 쉽게 공을 잃어버리는 실책이 빈발하고 있다. 벤투 감독도 바레인전을 마치고 "템포보다 연계 과정에 쉬운 실수"가 문제로 짚었다. 기성용이 있을 때의 안정감이 사라지면서 중앙 지역에서 과감성이 떨어지고, 상대가 역습할 빌미를 주고 있다.

벤투 감독은 최근 3경기에서 내리 주세종을 교체 투입했다. 키르기스스탄전에 구자철, 중국전에 이청용, 바레인전에 이청용을 빼고 넣은 뒤 황인범을 조금 더 전진시켰다. 주세종은 빠르고 강한 긴 패스에 능하다. 정우영-황인범-손흥민 내지 구자철 조합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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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빌드업 미드필더 자리에서 수비적 역할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신체조건이 좋은 정우영이 선택되고, 중원 빌드업에서는 황인범이 더 높은 점수를 받고 있어 주세종은 후반 교체 카드로만 기용되고 있다. 기성용이 있는 상황에서라면 보다 다양한 조합과 패턴 플레이가 가능한데, 그가 빠지니 나머지 선수들의 조합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벤투 감독은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남태희를 주전으로 기용해왔다. 이 자리에서 공을 쥐고 라인 하나를 벗길 수 있는 돌파력을 가진 선수이기 때문이다. 황인범은 이 부분에서 아쉬움을 갖고 있다. 단독 돌파 능력을 갖춘 손흥민을 이 자리에 기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자리는 손흥민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다. 상대 수비에 둘러싸여 미끼가 되고, 패스를 뿌려야 하는 역할에 치우친다. 손흥민이 토트넘 홋스퍼에서처럼 뛰지 못하는 이유다.

2선의 측면과 중원, 전방을 활발하게 오갈 수 있는 이재성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도 벤투 감독의 옵션을 제한하는 요소다. 투박하지만 힘있게 돌진할 수 있는 황희찬이 거듭 선발 공격수로 나서며 소진되고 있다. 황희찬은 바레인전에 기어코 득점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패스 미스가 잦아 위험한 장면을 여러번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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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발한 부상, 과부하 걸린 주전 선수들

벤투호의 가장 큰 적은 주력 선수의 부상이다. 이 부상은 단일 경기가 아닌 대회 운영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4연승으로 고비를 넘기고 있지만 팀은 지치고 있고, 경직되고 있다. 대회 일정의 4경기를 치르는 와중에 몇몇 선수들이 체력적인 과부하를 겪고 있다.

벤투호는 1차전에 기성용과 이재성이 다치고, 이승우와 손흥민이 뒤늦게 합류한데다, 완벽한 체력 상태로 합류하지 못하면서 로테이션이 어려웠다. 센터백 포지션도 권경원, 정승현의 컨디션이 훈련 당시부터 좋지 않아 4경기를 치르는 동안 한 번도 바꿔줄 수 없었다.

지동원도 큰 부상에서 막 회복해 벤투호 1기 소집 당시의 날카로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황의조가 4경기 연속 선발로 뛰면서 날카로움을 잃었다.

레프트백 홍철과 김진수 정도를 로테이션했으나, 둘 모두 대회 첫 경기 전에 부상에서 회복했다. 이용은 초반 2경기에 경고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휴식한 덕분에 연장전에 결승골을 어시스트할 체력을 비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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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용에게 바친 16강 승리, 기성용 없이 어려울 8강

한국은 전반전에 선제골을 넣고도 리드를 지키는 영리한 경기 운영이 실패했다. 연장전을 치러 8강전까지 이틀 밖에 쉬지 못하는 데 많은 체력을 소진했다. 노련미의 부족도 기성용이 빠진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대표팀의 주장은 손흥민이지만, 아직 기성용이 선수단 전체에 미치는 심리적 안정감을 대신하기는 어렵다.

선수들은 바레인을 상대로 넣은 두 골을 모두 기성용을 위한 세리머니로 바쳤다. 기성용 없이 8강까지 오르는 데 무리가 없었지만, 8강 이후 일정에는 기성용이 없는 타격이 본격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패턴 변화가 어려운 벤투호의 중원 조합, 주전 선수에 쏠린 체력 부하와 그로 인한 공격 지역에서의 실수는 다음 경기에도 획기적 개선이 어려워 보인다.

벤투호는 이미 20명의 필드플레이어 중 센터백 권경원, 정승현을 뺀 18명의 선수를 모두 기용했다. 8강 이후 상대를 놀라게 할 수 있는 히든 카드도, 변칙 전술도 없다. 벤투 감독이 마법을 부리기는 어렵다. 지금처럼 공을 소유하고, 집중력을 유지한 채 선제골을 얻어야 한다. 대회 첫 선제 실점이 발생한다면, 벤투호는 첫 번째 패배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벤투호는 앞선 4경기보다 공을 잘 지켜야 한다. 공을 쥐고 있다면 실점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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