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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연재] 조선일보 '민학수의 All That Golf'

[민학수의 All That Golf] 자존심이 중요해? LPGA의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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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전에 '골프 자존심' 버리고 다른 종목·연예계 스타 등 초청

갤러리 2만명 몰려들며 흥행 "팬들 외면받는 것보단 나아"

조선일보

여러 해 미국에 골프 취재를 다니면서 LPGA(미 여자프로골프) 투어 경기를 TV에서 제대로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대개 PGA(미 남자프로골프) 투어 경기 중계 틈틈이 잠깐씩 비추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한국 선수들이 우승 경쟁을 벌이는데 중위권의 미셸 위나 렉시 톰프슨 같은 자국 스타 선수를 더 많이 보여줬다. '미국에서 여자 골프는 정말 존재감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런 점에서 21일 막을 내린 미 LPGA 투어 개막전 '다이아몬드 리조트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는 예외 중의 예외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미국 골프 채널이 중계에 상당 시간을 할애했고, 공중파인 NBC까지 가세해 시청자들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골프장엔 많을 땐 2만명 가까운 갤러리들이 몰려들었다.

지난 3년간 바하마에서 팬도 시청자도 거의 없는 '그들만의 개막전'을 치르던 LPGA로선 흥행 '대박'이라 할 만했다.

다만 주연이 LPGA 투어 선수들이 아니었다. 이 대회는 2년간 LPGA 투어 우승 선수들과 함께 스포츠와 연예계 유명인사들이 대회 동안 함께 경기하도록 독특하게 운영했다. 49명의 참가 인사 중엔 메이저리그의 그레그 매덕스, 로저 클레먼스, 존 스몰츠, 이반 로드리게스를 비롯해 NBA(미 프로농구) 레이 앨런, NFL(미 프로풋볼) 마커스 앨런 등 스포츠의 전설적인 스타들이 팬들과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주연 역할을 했다. 라운드를 마친 후 선수들에게 사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곳에서도 팬들의 시선은 온통 스포츠와 연예계 인사들에게 쏠렸다. 야구 유니폼을 입고 야구공을 든 야구 팬이 가장 많았다. 이번 대회 거의 매일 선수와 유명인사들이 함께 참가하는 파티가 열린 것도 독특했다. 이번 대회를 스폰서한 다이아몬드리조트는 몇 년 전부터 유명인사가 참가하는 골프 자선대회를 열고 있었는데, 마침 새로운 개막전 스폰서를 찾던 LPGA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대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자존심과 명분에 얽매이지 않는 LPGA의 변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투어가 심각한 위기에 몰리자 별의별 시도를 다했다. 글로벌 투어를 표방하며 여자골프 인기가 뜨거운 한국 등 아시아 개최 대회를 늘리고, 스폰서 기분에 맞추려 그랜드슬램 대회 수를 4개에서 5개로 늘려 '족보 없는 투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유서 깊은 LPGA 챔피언십 대회 주관을 PGA오브아메리카에 넘기고 대회 명칭도 위민스 PGA챔피언십으로 갈아치우기도 했다. 이번엔 주연에서 들러리로 밀려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실험에 나선 것이다.

대회장에서 만난 여러 LPGA 관계자들은 "미국 팬들과 시청자들은 LPGA를 휩쓰는 한국 등 아시아 선수들 이름도 좀처럼 익숙해지기 힘들어한다"며 "외면받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LPGA를 알리는 게 낫다"고 했다. 여자 골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LPGA 생존 노력은 이렇게 눈물겨울 정도였다.

[올랜도(미 플로리다주)=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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