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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박린의 아라비안나이트]꼬꼬마 군단 베트남, 169cm 밧데리 박항서처럼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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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꺾고 아시안컵 8강진출

베트남 24팀 중 최단신, 평균 1m75㎝

이란, 한국보다 8~9㎝ 작아

박항서처럼 작지만 악바리 같은축구

중앙일보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20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요르단과 아시안컵 16강에서 승부차기를 바라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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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키가 작아서 베트남 선수들의 비애를 잘 압니다. 작지만 빠르고 기동력 있는 축구를 펼치겠습니다."

지난 2017년 박항서(60) 감독은 베트남축구협회 임원 면접 때 머리 위에 손을 대고 이렇게 말했다. 당시 베트남 감독 지원자만 300명에 달했다. 박 감독 특유의 솔직한 화법에 베트남 임원들은 크게 웃으면서 "당신의 축구를 이해하겠다"며 호감을 표시했다. 매니지먼트사인 DJ매니지먼트의 이동준 대표가 전해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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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막툼 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컵 요르단과 베트남과의 16강전에서 박항서 감독이 연장 후반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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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성인남성의 평균 키는 1m65㎝인데, 박 감독 역시 키가 1m70㎝로 작은 편이다. 선수 시절 박항서와 축구대표팀 2군격인 충무에서 함께 뛰었던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항서는 당시 키를 재면 1m70㎝에 1㎝가 모자랐던 걸로 기억한다. 항서는 특유의 곱슬머리에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녀서 별명이 '밧데리'였다"고 전했다.

2019 아시안컵에 출전한 베트남축구대표팀의 평균신장 1m75㎝다. 2019 아시안컵에 출전한 24개국 중 최단신 팀이다. 1위 이란(1m84㎝)과 2위 한국(1m83㎝)에 비하면 거의 10㎝ 가까이 적다. 1m60㎝대 선수가 5명이나 된다. 미드필더 트란민부옹은 키가 1m65㎝에 불과하다. 하지만 '꼬꼬마 군단' 베트남은, '밧데리(배터리)' 박항서처럼 뛰고 있다. 작지만 악바리 같은 축구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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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0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아시안컵 16강 요르단과 경기 승부차기에서 승리한 후 기뻐하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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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20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요르단과 아시안컵 16강에서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4-2로 승리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요르단은 조별리그에서 디펜딩 챔피언 호주를 꺾고 조1위로 올라온 팀이다. 1m80㎝대 선수들이 5명이나 됐다. 마치 이란과 알제리처럼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워 베트남을 압박했다. 결국 전반 39분 선제골을 터트렸다.

조 3위로 올라온 베트남은 조1위를 차지한 요르단보다 이틀을 덜 쉬었다. 체력적으로 굉장히 불리했다. 하지만 박 감독은 1m68㎝ 꽝하이를 필두로 잘게잘게 연결하는 패스축구로 맞불을 놓았다. 파이브백을 포백으로 전환했고, 양쪽 측면 자원을 전진 시켰다. 상대가 롱패스에 의존한 선굵은 축구를 한다는 것도 간파했다.

베트남은 후반 6분 응우옌 쫑호아의 택배처럼 정확한 크로스를 응우옌 꽁푸엉이 발리슛으로 동점골을 만들었다. 그리고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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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20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요르단과 아시안컵 16강 연장을 앞두고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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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이 2017년 10월 지휘봉을 잡았을 때만해도 베트남은 속된 말로 '당나라 군대' 같았다. 더운 날씨 탓에 선수들은 경기든 훈련이든 시간이 절반 흐르면 쉽게 포기했다. 박 감독은 베트남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뒹글면서 한가지를 깨달았다. '체격'이 작을 뿐 '체력'은 떨어지지 않고, 민첩성과 스피드가 뛰어나다는 점이다. 물론 피지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밤마다 30분씩 상체 강화 트레이닝을 했다. 오리고기, 우유 등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권했다. 베트남 선수들은 '신장'은 작지만, '심장'은 컸다. 베트남 선수들을 줄기차게 그라운드를 누볐고, 후반기로 갈수록 강해졌다.

박 감독은 승리 후 "폭스스포츠 기자가 베트남이 수비축구를 한다고 혹평했던데 인정하기 싫다. 우리 베트남은 우리 몸으로 가장 잘할수 있는 실리축구를 한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에게 "오늘도 전쟁이 시작됐다. 육체적으로 피곤하다는건 변명이 되지 않는다. 끝까지 싸우고 포기하지 말자"고 말해줬다. 박 감독은 베트남 선수들이 쓰러지면 심판에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선수들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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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20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요르단과 아시안컵 16강에서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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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한국에서 인기 아이돌 방탄소년단(BTS)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K리그 3부리그격인 창원시청을 맡으면서 일반직장으로 치면 정년퇴직까지 염두에 뒀는데▶머리숱 적은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사람이 ▶약팀을 이끌고 기적을 써내려가는 스토리. 여기에 대한민국이 열광하고 있다. BTS가 케이팝으로 한국을 널리 알렸듯, 한국인 지도자가 베트남에서 한류열풍을 몰고왔다.

박 감독의 진심을 담은 인터뷰도 베트남과 한국에 어필하고 있다. 그는 요르단전이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박항서 매직? 베트남은 저 혼자만의 팀이 아닙니다. 우리 선수들, 코치진, 밤낮없이 뒷바라지하는 스태프가 함께한겁니다. 행운은 그냥 오는게 아닙니다. 맡을 일에 최대한 노력을 다했을 때 결과물이 나오는겁니다. 오늘 경기도 100% 행운만 따른게 아닙니다."

두바이=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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