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베트남축구대표팀 감독이 베트남 하노이의 대우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응한 뒤 엄지를 올리는 포즈를 취했다. 하노이=송지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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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런 이야기 제법 들어요. 2002년 히딩크 감독님처럼 정상에 올랐을 때 깔끔하게 물러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분들의 조언이라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어쩌지요. 우리(베트남)는 아직 더 올라갈 곳이 남아 있는데. 허허허.”
박항서(59) 베트남축구대표팀 감독에게 올 한 해 영광의 발자취는 모두 ‘어제 내린 눈’이었다. 1월 23세 이하 아시아 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8월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 그리고 12월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까지. 내딛은 걸음마다 베트남 축구의 새 역사지만, 그는 “이젠 다 지난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21일 베트남 하노이의 축구대표팀 숙소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마주한 박 감독은 “스즈키컵에서 우승하고 딱 하루만 쉬었다. 코치들에게도 ‘긴장이 풀어지면 안 되니 축배는 나중에 들자’고 주문했다”면서 “아시안컵 본선(내년 1월5일 개막)이 눈 앞이다. 지금은 오직 그것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트남 선수들의 체력훈련을 지켜보는 박항서 감독. [사진 디제이매니지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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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지도자 박항서’의 인생 물줄기를 바꾼 해다. 지난해 10월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할 때만 해도 성공 스토리를 예감한 이는 드물었다. 축구계 관계자들도 ‘예순을 바라보는 노장의 마지막 도전’쯤으로 여겼다. 박 감독은 ‘동남아시아’라는 낯선 무대에 진출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던졌고, 큰 성공을 거뒀다. 지도자로서 승승장구하며 명예를 드높인 건 물론, 한국과 베트남의 정치ㆍ외교적 거리를 좁히는데 공헌했다는 찬사를 함께 받았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지난 27일 발표한 ‘올해(2018) 최고의 인물’ 여론조사(95% 신뢰수준, 표본오차 ±4.4%포인트)에서 박 감독은 16.7%의 지지를 받아 문재인 대통령(25.0%)에 이어 전체 2위에 올랐다. 케이팝 그룹 방탄소년단(9.9%),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9.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5.6%) 등 올 한해 뜨거운 주목을 받은 국내ㆍ외 인사를 두루 제쳤다.
박항서 감독은 축구를 통해 한국-베트남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사진 베트남 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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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성공의 비결로 ‘기본에 충실한 원칙주의’를 꼽았다. “많은 분들이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과 비법, 특효약을 찾느라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고 언급한 그는 “베트남에서 내가 거둔 성과는 가장 평범하게, 기본부터 철저히 챙긴 결과물이었다”고 했다. 힘들어하는 한국의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또한 “성공으로 가는 로얄 로드(royal road)를 찾느라 귀한 시간을 허비말라”는 냉철한 충고였다.
성패를 결정할 중요한 변수로는 ‘효율성’을 꼽았다. 박 감독은 베트남 지휘봉을 잡은 이후 지난 2002년 한ㆍ일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72ㆍ네덜란드) 전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배운 분업 시스템을 적극 활용했다. 코칭스태프 각자에게 대표팀 업무를 합리적으로 배분한 뒤 감독은 ^업무 진행 확인 ^적절한 통제 ^내부 갈등 관리 및 수습 등의 역할에 전념하는 방식으로 팀을 이끌었다.
박 감독은 “일사불란한 팀 분위기가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 또한 잘못됐다”고 짚었다. “나와 이영진(55) 수석코치는 하루가 멀다하고 싸운다. 크게는 스즈키컵이나 아시안컵 같은 중요한 대회의 목표 설정에서부터 작게는 당장 내일 훈련 프로그램을 가지고도 자주 툭탁거린다”고 소개한 그는 “단결력이란 의사결정 과정에서 모두가 ‘예스(yes)’를 외치는 게 아니다. 각자 의견이 달라도 ‘팀을 위한 고민의 결과’로 서로 존중하고, 일단 결론이 정해지면 최선을 다해 따르는 것”이라 말했다.
박항서 감독(왼쪽 첫 번째)과 이영진 수석코치(맨 오른쪽). 럭키금성 시절 한솥밥을 먹으며 친분을 쌓은 두 사람은 베트남에서 축구 한류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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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이영진 수석코치는 “코치가 늘 감독이 원하는 답을 들려줄 필요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면서 “어차피 최종 결정은 감독의 몫이지만, 그 전에 코치들이 제시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최대한 듣는 게 박항서 감독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베트남에서 박 감독은 ‘국민 영웅’이다. 베트남 대표팀에 기업들의 격려금이 쇄도하고, 광고 촬영 제의가 줄을 잇는다. 가는 곳마다 ‘박항세오(박항서의 베트남식 발음)’를 외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베트남 현지에 박항서 감독의 고향(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을 방문하는 여행 프로그램이 등장했을 정도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인데도, 어떻게들 알았는지 사인과 사진 촬영을 원하는 현지 팬들이 끊임 없이 나타났다.
스즈키컵 우승 직후 선수단으로부터 헹가레를 받는 박항서 감독.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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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인기는 바람과 같다. 갑자기 몰려왔다가 어느날 연기처럼 사라진다”면서 “나에 대한 뜨거운 관심 또한 지금 당장이라도 없던 일이 될 수 있다. 2002년에 같은 경험을 해본 터라 특별한 감흥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이른바 ‘박항서 신드롬’을 관리하는 이유는 베트남 축구 역사에 새로운 분기점을 만들어주고 싶어서다. “한국 축구가 2002년을 기점으로 모든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듯, 베트남 축구가 2018년을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으로 삼기를 원한다”는 게 박 감독의 설명이다.
‘박항서가 다른 나라 또는 리그로 터전을 옮길 지 모른다’는 루머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당사자인 박 감독은 “나는 (베트남을) 떠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 또한 베트남 축구에 공헌할 부분이 아직 남았다는 확신 때문이다. 박 감독은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베트남축구협회와 계약 기간이 아직 1년 남았다. 계약은 약속이다. 나에게 기회를 준 베트남과의 신뢰를 저버릴 순 없다”면서 “나는 아직 배고프다. 베트남 축구 또한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노이=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왼쪽)과 박항서 감독. 박 감독은 2002년 당시 히딩크 감독이 활용한 분업시스템을 베트남 대표팀에 적용해 성공을 거뒀다. [일간스포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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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보낸 온라인 연하장. [사진 디제이매니지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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