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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복수는 누구? 일제강점기 앨범 5만장 판매 기록

파이낸셜뉴스 최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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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복수는 누구? 일제강점기 앨범 5만장 판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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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출신 1호 연예인, 한국가요사 황금기 이룩
'타향살이'는 발매 한 달 만에 5만장 판매
망국의 한, 망향가로 대표되는 곡 큰 인기
일제 군국가요 취입 강요 피해 만주 등으로 떠돌아
고복수를 기리는 음악 살롱 고향 울산에 문 열어


울산에 문을 연 '고복수 음악살롱' 1층 전시관 모습. 일제강점기 북간도와 만주 등 낯선 이국땅으로 떠난 이들의 한을 달래주었던 ‘타향살이’의 가수 고복수(1911~1972)는 울산 출신의 첫 연예인이자 엔터테인먼트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울산시 중구가 9억원을 들여 음악살롱을 만들었다.

울산에 문을 연 '고복수 음악살롱' 1층 전시관 모습. 일제강점기 북간도와 만주 등 낯선 이국땅으로 떠난 이들의 한을 달래주었던 ‘타향살이’의 가수 고복수(1911~1972)는 울산 출신의 첫 연예인이자 엔터테인먼트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울산시 중구가 9억원을 들여 음악살롱을 만들었다.


【울산=최수상 기자】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일제강점기 북간도와 만주 등 낯선 이국땅으로 떠난 이들의 한을 달래주었던 ‘타향살이’의 가수 고복수(1911~1972)는 울산 출신의 첫 연예인이자 엔터테인먼터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한참 인기를 누리던 시기 일제의 군국가요 취입 강요를 피하기 위해 만주와 현 중국 동북 지방으로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민족애를 실천했고 이후 영화제작과 예술학원설립 등 활발한 활동을 통해 한국가요계의 큰 족적을 남겼다.

가수 고복수와 그의 대표곡 ‘타향살이’를 이미지화하고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고복수 음악살롱'이 지난 24일 그의 고향인 울산에서 문을 열어 눈길을 끌고 있다.

울산시 중구 중앙1길 ‘청춘 고복수길’ 안쪽에 위치한 이곳은 울산 중구청이 총 9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 1980년대 지어진 2층 양옥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것으로, 총면적 125.62㎡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다.

건물의 외형 변화를 최소화 해 세월의 흔적을 알 수 있도록 했고 내부는 전시관(1층)과 과거 살롱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빈티지 스타일의 카페(2층)로 리모델링했다.


울산 고복수 음악살롱에 전시되고 있는 라이오와 축음기.

울산 고복수 음악살롱에 전시되고 있는 라이오와 축음기.


울산 고복수 음악살롱 1층 전시관에 있는 오래된 드럼세트.

울산 고복수 음악살롱 1층 전시관에 있는 오래된 드럼세트.

전시관은 고복수의 생애와 그의 작품 등을 설명하는 자료와 오래된 축음기, 피아노, 드럼세트 등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고복수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플레이어와 헤드스피커도 마련돼 있고 전문 해설사의 친절한 안내도 받을 수 있다.

고복수는 어린시설 교회 선교사로부터 드럼과 클라리넷을 배우며 근·현대 서양음악을 접했고 이후 1932년 전국신인가수 선발대회에 3위로 입상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그의 가수 활동과 부인 황금심과의 일화는 한국가요사의 중요한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울산광역시사 인물편에 따르면 20세에 본격적인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1932년 콜롬비아레코드사가 주최한 '전선 9대도시 가요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부터다. 당시 심사는 홍난파, 현제명, 안기영 등 당대의 쟁쟁한 음악인들이었다. 이후 계약금 1000원에 월급 80원에 OK레코드사와 전속계약한 고복수는 22세 때인 1934년 '타향'(현재 타향살이)를 시작으로 '이원애곡' '사막의 한' '짝사랑' 등을 잇따라 히트 시킨면서 국민가수로 부상했다. '타향살이'가 실린 앨범은 발매 1개월만에 5만장이 팔렸다. 가요연구사 박찬호는 자신이 쓴 '한국가요사'에서 "조선 가요의 황금기는 고복수의 '타향살이'에서 시작돼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그의 노래는 국내뿐만 아니라 간도와 만주. 일본 등의 한인사회로도 급속히 퍼져나갔다. 일제에 강제동원됐던 노동자들에게도 나라를 잃고 살아가야 하는 '망국의 한'을 노래한 것이자 고향을 그리워한 망향가였던 셈이다.

울산 고복수 음악살롱은 울산시 중구 중앙1길 ‘청춘 고복수길’ 안쪽에 위치해 있다. 울산 중구청이 총 9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 1980년대 지어진 2층 양옥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이다. 건물의 외형 변화를 최소화 해 세월의 흔적을 알 수 있도록 했고 내부는 전시관(1층)과 과거 살롱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빈티지 스타일의 카페(2층)로 꾸몄다.

울산 고복수 음악살롱은 울산시 중구 중앙1길 ‘청춘 고복수길’ 안쪽에 위치해 있다. 울산 중구청이 총 9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 1980년대 지어진 2층 양옥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이다. 건물의 외형 변화를 최소화 해 세월의 흔적을 알 수 있도록 했고 내부는 전시관(1층)과 과거 살롱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빈티지 스타일의 카페(2층)로 꾸몄다.


울산 고복수 음악살롱 2층의 카페에서는 다양한 음료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울산 고복수 음악살롱 2층의 카페에서는 다양한 음료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고복수는 만주와 간도, 중국의 동북지역에서 순회공연을 다닌 이유는 일제가 군국가요와 일본 노래 취입을 강요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부인 황금심도 고복수가 일본어로 노래부르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의 고향인 당시 울산군 하상면 서리는 현재 울산시 중구 서동으로, 바로 옆 동동은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의 선생의 고향(하상면 동리)이기도 하다. 그의 민족애는 동향인 외솔 선생의 활동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전시관의 2층은 살롱 형태의 카페가 있다. 붉은색 고벽돌과 목재계단 등으로 고풍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테라스에도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 야외 카페 분위기를 자아낸다.


탁자와 의자 등은 1930~1980대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것들로 구성했다. 커피와 다양한 차를 마실 수 있으며 간단한 디저트도 즐길 수 있다.

또 골목 진입부에는 고복수 인물상과 관련 노래를 주제로 한 포토존을 조성했다.

박태완 중구청장은 "지역의 인물을 문화컨텐츠화 해 원도심 골목의 볼거리를 확대했다"며 "거점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복수 음악살롱은 오전 10시~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매주 월요일과 1월1일, 설,추석 당일은 휴관한다.

울산 고복수 음악살롱 진입로 입구 모습.

울산 고복수 음악살롱 진입로 입구 모습.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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