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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어떤 분이 저를 두고 육성형 감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봤어요. 하지만 하위팀에 주로 있었기 때문이죠. 상위 팀에서 생존형 지도자도 될 수 있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대표팀을 맡기 전의 자신에 대해 스스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고 했다. “내 자신의 현재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강한 승부욕과 특유의 성실함으로 축구 인생을 살아온 박 감독은 베트남 대표팀 감독직을 맡았을 때 자신이 쌓은 모든 노하우를 쏟아 부었다.
박 감독은 1년 만에 베트남의 국민영웅이 되었다. 2018년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상위권 국가들이 전력을 쏟지 않는 대회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4강에 오르자 요행이 아니었다는 것이 판명됐다. 결과적으로 부임 당시 최대 목표였던 AFF 스즈키컵 우승을 이루면서 목표를 달성했다.
박 감독은 대회 전 스포티비뉴스를 만나 베트남 지휘봉을 잡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베트남을 아는 것이었다고 했다. “베트남의 역사도 알아봤고, 베트남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기록도 찾아봤고, 베트남의 문제점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박 감독은 스즈키컵에서 우승하기 전에도 베트남 생활에 만족감이 크다고 했다. 이미 두 개의 대회에서 성과를 냈던 박 감독은 “결과가 좋아서 만족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활이 좋다”고 설명했다. 승리라는 짜릿한 결실의 순간이 아니라 일상에서 잔잔하게 느껴지는 행복을 이야기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러가지로 보고 들으면서 스트레스 받는 게 있는데, 베트남에서는 보지 못하고 읽지 못하고. 가족과 지내고, 혼자 집중할 수 있고. 한국에서는 바쁘게 앞만 보고 갔어요. 경쟁 속에서 살아가다가,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해야 하나요.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그런 부분이 베트남 생활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 감독은 성장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축구에서 거두고 있는 성과에 대해, K리그 시절에도 하위권 팀을 맡아 성적을 낸 연장선상으로 보며 ‘육성형 지도자’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는 다른 생각을 말했다. 자신의 능력과 미래에 한계를 규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어느 해설자가 저를 보고 육성형이라고 이야기 하는 걸 다큐에서 봤는데, 저는 육성형 지도자도 맞지만, 그 이야기가 나온 것은 제가 K리그 1부리그에 있을 때는 하위 팀에 주로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상위 팀에 있었다면 생존형 지도자도 될 수 있습니다. 상주상무, 군 팀에 있으면서 2부리그지만 두 번 우승했습니다. 4년 간 두 번 우승했고, 한번은 제도 때문에 강제로 강등이 되었죠. 그 성과는 육성형 지도자가 아니잖아요. 좋은 선수를 데리고 경기했습니다. 좋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으면 훈련 방법, 관리도 생존형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제 스타일이 꼭 육성형이다? 제 자신은 그렇게는 생각지 않습니다. 팀이 갖고 있는 전력에 따라 다르게 운영할 수 있습니다. 어떤 팀을 맡느냐, 어떤 선수로 구성되어 있느냐, 구단 정책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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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이 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하고 아시안게임 4위에 오른 것은 언더독의 반란이었다. 하지만 스즈키컵에서 베트남은 늘 우승권에 드는 강팀이다. 무패 우승을 이루며 동남아시아 축구 최강의 자리에 올렸다. 강팀의 생존법에도 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박 감독은 자신의 지도자 경력에 결정적인 경험으로 1994년 미국 월드컵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꼽았다. 실제로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감독으로 김호 전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을 꼽기도 했다. 미국 월드컵에 막내코치, 한일 월드컵에 수석코치로 참가한 박 감독이 국제 대회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또 다른 배경이다.
“저는 선수 때의 국제 경험과 지도자로 국제 경험을 보는 시각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로서 큰 레벨의 경기를 뛴 것과 벤치에 앉아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1994년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 치러봤고, 2002년 월드컵까지 경험했어요. 선수로는 월드컵에 못 나가봤지만, 그런 큰 대회를 치러본 것이 저한테 지도자로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 월드컵 벤치에서 어떤 역할이든 경험하고, 준비 과정을 함께 해본 점에서, 우리 세대의 지도자 중에서는 전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호 감독님과 대표팀부터 수원삼성까지 같이 있으면서 6~7년 같이 생활했었습니다. 그분의 축구에 대한 열정, 생각, 노하우에 대해 제가 어린 지도자였으니까 많은 영향을 받았고, 많은 가르침 주신 게 사실입니다. 또 한번 변신한 계기가 2002년도에 히딩크 감독님 만나면서 입니다. 지도자는 이렇게 해야되는 구나라는 부분에서 제가 많이 변신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C급부터 B급,A급, P급 등 지도자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세대는 아니었습니다. 독학처럼 공부하다가 지금처럼 준비하고 연속성을 만들 수 있는 지도자로 변신할 수 있게 해준 분이 히딩크 감독님입니다."
현역 생활을 마치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설 때를 묻자 박 감독은 “대표팀 감독을 꿈꾸기도 했죠. 모든 지도자가 똑같지 않습니까?”라며 웃었다. “지도자로서 앞만 보고 달렸지 뒤돌아 보지 않았습니다. 프로팀 감독이 되겠다는 열정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박 감독은 한국 나이로 60세가 된 지금도 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을 거부한다. 박항서 감독은 아직 길 위에 있고, 그는 여전히 더 높은 곳을 열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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