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준 디제이매니지먼트 대표가 16일 베트남 하노이의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본지를 만나 인터뷰한 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하노이 | 정다워기자 |
[하노이=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박항서 신화’ 뒤엔 이동준(33) 디제이매니지먼트 대표가 있다.
이 대표는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을 베트남축구협회에 소개한 인물이다. 그는 2017년 9월 박 감독을 새로운 나라로 안내했다. 이 대표는 지난 1년2개월간 박 감독의 베트남 적응을 돕고 신화를 이룩하는데 숨은 공헌을 했다. 에이전트로서 단순히 이적을 성사시킨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적응, 협회와의 소통을 도우며 박 감독에게 힘을 보탰다.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그리고 이번 스즈키컵까지 역사의 현장에 늘 그가 있었다. 스스로를 박 감독의 ‘그림자’라 칭하는 이유다. 본지는 지난 16일 하노이 노이바이국제공항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두 달 만에 경질 위기, 신화 시작도 못 할뻔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사실 박 감독은 부임 두 달 만에 경질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12월 U-23 선수들이 출전한 M-150컵에서 과감한 실험을 한 게 화근이었다. 당시 베트남은 조별리그서 미얀마를 4-0으로 이겼으나 2차전서 우즈베키스탄에 1-2로 졌다.박 감독은 최정예가 나선 미얀마전과 달리 우즈베키스탄전에 후보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켰다. 더 중요한 대회인 U-23 챔피언십을 준비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박 감독은 최대한 많은 선수들을 확인하려고 했다. 이 대표는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이지만 당시 협회와 축구팬 반응이 싸늘했다”라며 “협회에서는 황당해 하면서 경질 이야기까지 했다. 그래서 급하게 박 감독께 전화해 설명했다. 급박한 상황이니 다음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라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위기에 빠진 박 감독은 이어진 3~4위전서 운명의 라이벌 태국을 이기며 반전에 성공했다. 베트남이 U-23 이상 연령대에서 태국을 이긴 것은 무려 10년 만의 일이었다. 박 감독 주가도 이 때를 기점으로 반등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기억이다. 만약 태국에게 패했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챔피언십과 스즈키컵
박 감독 부임 후 베트남은 실패를 모르는 팀이 됐다. U-23 챔피언십 준우승, 아시안게임 4강은 모두 베트남에 전에 보지 못했던 성적이었다. 여기에 베트남 온 국민이 염원하는 스즈키컵 우승도 10년 만에 해냈다. 박 감독은 협회와의 약속을 모두 지켰다. 이 대표는 “계약 당시 계약서에 명문화 된 대회가 있다. 바로 U-23 챔피언십과 스즈키컵이었다”라며 “구체적인 성적은 명시하지 않았지만 이 두 대회에서만큼은 반드시 성적을 내야 한다고 협회가 강조했다. 사실 아시안게임은 여기 들어가 있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박 감독은 2018년 세 개의 중요한 대회에서 모두 제 몫 이상을 했다. 이 대표는 “협회에 박 감독을 소개했던 표현 중 하나가 ‘약팀(underdog)을 강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였다. 그런데 스즈키컵 우승 후 협회 직원이 와 그 얘기를 했다. ‘당신 말이 맞았다. 베트남은 이제 약팀이 아니다’라고 말하더라. 굉장히 뿌듯했다”라고 말했다.
이동준(오른쪽) 대표가 지난 4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지도자 연수 현장에서 박항서 감독, 박지성,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출처 | 이동준 대표 페이스북 |
◇스즈키컵 결승이 긴장됐던 또 다른 이유
이 대표는 아시아 축구 ‘통’이다. 지난 2016년 베트남 간판 미드필더 르엉 쑤언 쯔엉을 인천으로 데려오며 본격적으로 베트남과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에는 정해성 감독을 베트남의 호앙아인잘라이 사령탑에 앉혔다. 홍콩서 뛰는 백지훈(리만), 김동진(호이킹)도 이 대표가 이적시켰다.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홍콩에 있던 시절에도 이 대표가 여러 일을 도왔다.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의 중국 항저우행도 이 대표 작품이었다. 이 대표와 함께하는 또 다른 인물은 말레이시아의 탄 쳉호 감독이다. 탄 쳉호 감독은 올해 초 이 대표에게 직접 연락을 해 자신을 관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시아 전역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 대표 손을 잡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박 감독과 탄 쳉호 감독이 스즈키컵 결승에서 맞대결했다. 이 대표는 자신이 돌보는 두 명의 지도자가 싸우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 대표는 “경기 전 날 훈련에서 탄 쳉호 감독을 만났다. 베트남이 정말 좋은 팀이라고 칭찬하더라. 개인 능력은 말레이시아가 우위에 있지만 조직력은 베트남이 앞선다며 우승에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기분이 묘했다. 경기 날에도 베트남이 이겨서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탄 쳉호 감독을 위로하게 되더라”라는 뒷 이야기를 꺼냈다.
이동준 디제이매니지먼트 대표가 16일 베트남 하노이의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본지를 만나 인터뷰한 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하노이 | 정다워기자 |
◇“박항서의 최대 장점은…”
박 감독은 말투가 어눌하다. 경기 중엔 자주 흥분하는 모습을 보인다. ‘완벽’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박 감독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는 이 대표는 박 감독을 “영리한 사람”으로 표현한다. 이 대표는 “박 감독은 쉽게 말하면 완성도가 높은 사람이다. 본인 스스로도 노력하고 연구하는 부분이 많은데 분업을 정말 잘한다. 코치 한 명 한 명에게 임무를 나누어 조직 전체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능력이 탁월하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감독 한 명이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코치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구경하는 것도 좋다고 보긴 어렵다. 이 대표는 “진짜 능력 있는 리더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한 회사의 대표로서 배운다. 박 감독을 만난 이후로 저 역시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지시하는 스타일이 달라졌다. 박 감독을 따라해보니 확실히 회사가 더 잘 돌아간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에는 박 감독이 조급한 마음에 조직원들을 다그치거나 힘들게 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 이제 많이 달라졌다. 여유도 생기고 연륜도 있다. 시행착오가 그를 더 영리하게 만든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내려올 일만 남았다”
베트남 전역이 박 감독에게 열광하고 있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박 감독 위상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이 현상이 얼마나 유지될까. 이 대표는 “사실 지금이 정점에 있다고 봐야 한다. 앞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내려올 일만 남았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박 감독이 “인기는 연기처럼 사라진다”라고 말했던 것과 궤를 같이한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최강팀이 됐지만 아직 아시아 전체로 보면 언더독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위기가 온다 해도 박 감독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박 감독은 평범한 사람이다. 밖에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집에서 편하게 TV를 보고 밖에도 편하게 돌아다니고 싶어 한다. 지금의 인기가 유지되지 않아도 자신에게 집중하며 할 일을 할 것”이라며 크게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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