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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아빠 리더십’ 박항서, 베트남서 활짝 꽃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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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 2018 AFF 스즈키컵 ‘우승’

2002 월드컵 때 수석코치로 히딩크 보좌 ‘4강 신화’ 영광

AG 감독 데뷔 후 경질 아픔 딛고 ‘베트남 국민영웅’ 우뚝

축하금 10만달러 베트남 축구계 쾌척 “한국도 사랑해달라”



경향신문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위)이 지난 15일 베트남 하노이의 미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말레이시아와의 2018 아세안축구연맹 스즈키컵 결승에서 승리한 뒤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다. 하노이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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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59)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수석코치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묵묵히 팀을 이끌었다. 그로부터 16년이 흘렀다. 그의 축구 지도자 인생은 영광과 시련을 거쳐 마침내 제2막의 화려한 꽃을 피웠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지난 15일 열린 2018 동남아시아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에 1-0으로 승리했다. 1차전을 2-2로 비긴 베트남은 합계 3-2로 말레이시아를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8년 첫 우승 이후 10년 만에 차지한 스즈키컵 패권이다. 베트남은 현재 A매치 16연속 무패를 달리며 세계 각국 대표팀 중 최다 무패 기록도 이어갔다. ‘동남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스즈키컵 우승으로 베트남 전역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박 감독은 경기 후 “지도자 생활 중에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베트남 국민에게 우승 트로피를 가장 먼저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를 사랑해주신 만큼 베트남 국민들께서 대한민국도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감독은 자동차 업체 타코그룹으로부터 받은 우승 축하금 10만달러(1억1345만원)를 베트남 축구발전 등을 위해 쾌척했다.

박 감독은 현역 시절 다부진 플레이를 펼쳤지만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국가대표로 뛴 건 1981년 일본과의 친선전 1경기가 전부다.

1988년 은퇴 후 트레이너와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쌓은 그는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 사단의 수석코치로 축구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을 보냈다.

월드컵 성과를 인정받아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감독으로 처음 데뷔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란에 패해 동메달에 그친 뒤 곧바로 경질됐다. 이후 프로팀 코치를 거쳐 2005년에 막 창단된 경남FC의 감독으로 취임해 2007시즌에는 팀을 4위까지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구단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사임하고 이후 전남 드래곤즈와 상주 상무 등을 거쳤으나 눈에 띌 만한 성적을 내진 못했다. 이후 프로에서 불러주는 팀이 없어 실업축구 창원시청에서 감독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감독 무대에서도 잊혀져 갈 무렵인 지난해 10월 베트남 대표팀의 부름을 받아 새로운 인생을 열었다. 박 감독은 베트남 대표팀을 맡은 지 불과 3개월 만에 깜짝 성과를 냈다.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서 베트남은 물론 동남아 국가 중 처음으로 4강 진출에 성공한 것을 넘어 준우승까지 했다. 이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베트남 축구 사상 처음으로 4강 진출을 달성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늘 자신감을 심어주고 독려하며 할 수 있다는 긍정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었다. 20대 초반의 베트남 축구 황금세대들은 박 감독의 조련 속에 더 단단해져갔다. 그리고 베트남 대표팀은 스즈키컵에서 염원이던 우승을 일궈냈다. 우리 나이로 예순, 여전히 열혈남아인 박항서 감독은 뚝심 하나로 ‘베트남 국민 영웅’이 됐다.

양승남 기자 ysn9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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