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KIA 선발 임창용이 역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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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 더 스포츠-131] 1995년 6월 18일, 대구에서 삼성을 상대로 마운드에서 첫 공을 던졌다. '검빨' 해태 유니폼이 동경의 대상이었던 아직은 앳된 모습의 19살 소년이 마침내 어릴 적 꿈을 이루게 된 순간이었다. 세상이 변해 1980년대 무적 해태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타이거즈는 여전히 최강팀 중 하나였다. 임창용은 데뷔 2년 차인 1996년, 만 20세 나이에 우승을 처음 맛보았다. 그는 곧 타이거즈 아니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젊은 투수로 발돋음하였고, 앞으로의 야구 인생은 모든 게 탄탄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1997~1998년 대한민국은 IMF라는 수렁에 빠졌지만, 임창용은 구원투수 부문 1위 자리에 오르며 대한민국 최고 투수 반열에 오르게 된다. 1998년 그의 평균 자책점은 1.89였다. 대단한 기록인 것은 분명하지만, 마무리 투수들에게서 간혹 볼 수 있는 수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가 그해 133.2이닝이나 던졌다는 사실이다. 임창용은 그해 KBO리그 전체 투수들 중 평균 자책점 2위를 기록한다.
임창용은 최고 자리에 올랐지만, 해태는 그렇지 못했다. IMF 직격탄을 맞고 모기업이 휘청거렸고, 야구단 또한 위기를 맞는다. 해태는 임창용을 내주며 당대 최고 타자 중 하나인 양준혁, 유망주 황두성, 곽채진을 받음과 동시에 당시로는 천문학적인 액수인 20억원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임창용의 트레이드를 통해 해태라는 이름은 수명을 연장하게 된다. 타이거즈 팬들에게 임창용이라는 이름 석자가 아픈 손가락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16년 임창용은 다시 광주로 돌아오고,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그가 떠난 17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전성기를 맞기도 하고, 부상도 입으며 좌절하기도 했다. 일본에 건너가 일본 프로야구 최고 마무리 투수 중 하나로 리그를 지배했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메이저리그 무대에도 밟아봤다. 그 와중에 이런저런 개인적 구설을 겪으며 비난도 받았다.
사실 그의 타이거즈 컴백 또한 좋은 상황에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타이거즈 팬들은 임창용의 광주 복귀를 환영해 주었다. 그 또한 꿈에 그리던 일이었고, 마침내 돌아오게 된 것을 감격스러워했다.
지난 12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KIA 선발 임창용이 역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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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즈 복귀 2년 차인 2017년, 임창용은 다시 KBO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예전만큼 위력적이지는 않지만, 팀 우승에 한 축을 담당했다. 선수들이 임창용을 헹가래 치는 감격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해 보이는 세레모니일지 모르지만, 타이거즈 팬들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순간이었다.
스포츠, 특히, 야구가 특별한 이유는 스토리가 있어서다. 그게 먹고사는 일상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스토리가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크다. 또한 자신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야구와 함께한 추억이 각인돼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1995년과 2018년. 24년의 시간은 무척 길다. 아이가 태어나 대학을 졸업해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데 충분한 시간이고, 40·50대 장년들이 인생을 정리하는 노년이 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임창용이 대단한 이유는 그 긴 시간을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한 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뱀직구는 19살 때나 43살 때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그렇게 느껴질 뿐 사실 전성기만큼은 못할 것이다). 여전히 평균 145㎞를 넘는 직구로 타자와 승부한다. 때로는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터프함에 팬들은 매력을 느낀다. 리그에서 그런 구위와 배짱을 가진 투수는 나이를 불문하고 별로 없다. 임창용이 지금도 그런 공을 던지는 것은 철저한 몸 관리 덕분이다. 군살 없이 탄탄한 몸은 결코 노력 없이 얻어질 수 없다. '야구선수' 임창용이 특별하고, 대단한 이유다.
수많은 스토리의 주인공이었고, 팬들에게 수많은 추억을 만들어 줬던 임창용이 이제 또 다른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고참 선수가 팀을 떠나는 데 있어서 이렇게 팬들이 나서는 경우는 KBO리그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타이거즈 팬들 상당수가 그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향후 임창용의 야구 인생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계속해서 유니폼을 입으며 지금처럼 신나게 한 해, 한 해 더 던질지, 아니면 이대로 유니폼을 벗게 될지. 아이러니하지만, 야구를 잘한다고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기에 이번 일이 어떻게 결론 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이번에 임창용이 만들어낸 스토리의 결말이 타이거즈 팬, 아니 야구 팬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정지규 스포츠경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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