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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아시안게임 첫 8강’ 박항서 베트남 감독 일깨운 히딩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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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 번도 스타 플레이어가 된 적 없는 박항서

3부 리그 감독에서 베트남 축구 영웅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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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0만 코치의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한다.”

국내 축구 3부 리그 격인 내셔널리그 창원시청 축구팀 박항서(59) 감독이 지난해 9월 베트남 국가대표팀에 선임됐다는 소식에 한 누리꾼이 단 댓글이다. 당시 베트남 언론들은 대체로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 분위기였다. 베트남 인구는 9500만명인데, 축구는 베트남의 최고 인기 스포츠다. 열광하는 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에 조금만 실수를 해도 비난이 쏟아진다는 말이다.

1991년부터 이제껏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26명(재선임 포함)이 재임했다. 박 감독은 27번째다. 평균 1년에 한 번꼴로 감독이 교체됐다. 26명의 감독 가운데 계약 기간을 넘긴 경우는 13명에 불과하다. 베트남 국가대표팀의 성적은 박 감독이 올 때만 해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0위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 베트남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박 감독이 이끄는 23살 이하(U-23) 축구 대표팀은 23일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브카시의 패트리엇 찬드라바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16강에서 바레인을 1-0으로 꺾었다. 베트남이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에서 8강 진출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베트남 사령탑을 맡은 지 3개월 만에 누구도 예상 못 한 성과를 냈다. 베트남은 중국 창저우 올림픽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23살 이하(U-23) 챔피언십 결승에 진출했다. 지난 1월27일 눈 오는 날씨에 익숙하지 않은 베트남 대표 선수들은 폭설과 악천후 가운데 공을 향해 뛰었으나 우승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베트남 관중은 모두 “박항서”를 외쳤다. 마치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른 한국과 같은 분위기가 베트남을 지배했다.

패배에 고개를 숙인 선수들에게 그가 건넨 말은 이랬다. “고개 숙이지 마라. 너희들은 충분히 준우승을 누릴 자격이 있다.” 선수들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최선을 다한 결과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베트남 정부는 감독의 공로를 인정해 3급 노동 훈장을 수여했다.

한국에서 그는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분명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166㎝의 단신인 그는 1984년 럭키금성에서 미드필더로 뛰었다. 1988년 일찍이 은퇴했고 1996년까지 엘지(LG) 치타스에서 코치로 있다가 1997년 수원 삼성으로 옮겼다. 2000년 11월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가 된 그는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4강 신화를 도왔다. 히딩크와의 만남은 그에게 프로 지도자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그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히딩크와의 추억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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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이 처음 한국에 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고 해서 뭘 믿고 저러나 싶었다. 월드컵 본선 50일을 남기고는 한국 16강 진출 가능성은 50프로인데 매일 1퍼센트를 끌어올려 백퍼센트로 만들겠다고도 했다.”

박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히딩크 감독과의 에피소드를 밝혔다. 그는 히딩크 감독과의 인연이 지도자 생활에 밑거름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나중에 네가 성인팀 감독이 되면 절대 선수를 만들어 쓸 생각 하지 말고 (선수가) 갖고 있는 실력을 극대화해라. 시간은 너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러나 박 감독의 지도자 생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히딩크의 지도 스타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기에 2002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지만 성적 부진으로 74일 만에 경질됐다. 우승이 예상된 부산아시아경기에서 동메달에 그친 것이다. 이후 그는 후배인 최순호 감독이 있는 포항 스틸러스의 수석코치로 돌아왔다. 그는 선수들과 사우나에 가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팀을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전략을 짜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들을 다독이는 역할을 하는 코치, 또는 2인자에 적합하다는 평가마저 들어야 했다.

이후 2005년 경남 FC에서 프로팀 지휘봉을 잡은 그는 전남 드래곤즈(2007~2010) 상주 상무(2012~2015) 등에서 감독 경력을 이었다. 그러나 이렇다 할 각인을 깊이 새기지 못하고 2017년 3부 리그라 할 수 있는 내셔널리그에서 창원시청을 지도했다. 그가 축구계에서 저물어가는 사이 2002년 월드컵에서 선수로 뛰었던 홍명보, 황선홍, 최진철, 최용수 등 스타 선수들이 감독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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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예순을 2년 앞둔 지난해 축구의 변방, 베트남에서 새롭게 시작했다. 한국에서 잊힌 그는 현지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베트남 축구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1988년 선수 은퇴를 한 뒤 30년 만에 본 빛이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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