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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다들 숨길 뿐이지. 환자들은 절대 모르니까.”
“전부 주먹구구야 엘리트란 인간들이. 일반기업에서 이렇게 일했으면 벌써 모가지 잘렸지.” 대대적 구조조정을 선포한 사장 구승효(조승우)에게 흉부외과 센터장 주경문(유재명)은 “상급병원은 공공재”라고 외치며 맞선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런 주경문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개인 건강정보 대량 판매 사건을 시청자에게 던져 보인다. 구 사장은 “개인 건강정보 영리목적 사용불가 조항 2016년 8월 삭제”라며 이미 현실에서 벌어진 사실을 드라마에서 또한번 강조한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는 전문경영인 출신 신임 총괄사장 구승효와 그에 반발하는 의사들의 갈등을 그린 의학 드라마다. 거대재벌이 인수한 국내 상급종합병원인 상국대병원을 배경으로 한다. 다른 의학 드라마와 달리 수술실이 등장하는 장면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신 <라이프>의 매스는 사회의 암 덩어리 같은 ‘의료 적폐’ 문제로 향한다. 드라마는 기획의도에서 병원을 사람의 몸에 비유했다. 철저히 시장 논리를 따르는 구승효는 체내에 침입해 특이 반응을 유발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항원’으로, 신념을 중시하는 응급센터 전문의 예진우(이동욱)는 ‘저항력이 필요한 신체 부위로 달려가는 항체’로 표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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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붕괴된 공공의료의 실태를 드러낸다. 진주의료원 폐원은 물론 병원 영리자회사 허용, 재벌의 병원 부대사업 독점, 국립대병원 경영평가 등 노골적인 공공의료 파괴행위가 곳곳에서 언급됐다. “우리만 그런 거 아냐. 어느 병원이나 투약 오류는 항상 있어. 다들 숨길 뿐이지. 환자들은 절대 모르니까.” 암센터에서 항암제 투여 실수로 환자가 사망하자 이를 은폐한 에피소드는 2016년 발생한 인천의 모 종합병원 의료사고 은폐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라이프>는 의료계 내부 적폐인 집단 이기주의도 그린다. 상국대병원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어쩌면 절대선이었을지 모를 병원장 이보훈(천호진)의 죽음에서부터 드라마가 시작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상국대병원 의료진은 환자만을 생각하는 정의로운 집단이라기보다는 각자의 이익 논리에 물든 이기적인 집단이다. 주경문은 인성과 실력을 모두 갖췄지만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동료 교수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부원장 김태상(문성근)은 과거 무면허 의료를 지시·방조한 사실이 드러나자 내부고발자를 찾겠다며 후배 의사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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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판사님께> “대법원장도 뒷거래 하는 마당…”
SBS 수목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전과 5범의 사고뭉치 동생 한수호(윤시윤)가 판사인 형을 대신해 판사로 활약하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법정물인 만큼 판사·검사·변호사 등 다양한 직역의 법조인들 이야기가 서울 법조타운인 서초동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드라마는 법조계 내 성폭력 문제로 시작한다. 서울중앙지검 검사 홍정수(허성태)는 검사 시보인 송소은(이유영)의 신체를 함부로 만지는가 하면, 법원 엘리베이터에서 성희롱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단둘이 있던 술자리에서는 잠자리를 요구하기도 한다. 소은은 책임자인 부장검사에게 홍정수의 행위에 대해 위계에 의한 성추행이라며 문제제기를 하지만, 부장검사는 오히려 소은에게 증거를 내놓으라며 닦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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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판사님께>의 전체적인 틀은 ‘재판 거래’다. 한수호는 정부 발주 사업을 두고 경쟁 중인 오성그룹의 흠집을 잡으려는 경쟁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현금을 받는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면 10억원을 주고, 그룹 법무팀 자리도 마련해놓겠다고 제안한다. 오성그룹 역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로펌과 손을 잡고 증인들에게 거짓 증언을 요구하고, 판사와 검사도 회유한다.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의혹과 미투 등 최근 벌어진 법조계 사건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서울중앙지법 단독 재판부를 담당하는 한수호는 “대법원장도 뒷거래 하는 마당에 나 같은 평판사 정도는…”이라고 말한다. 드라마 속 국내 최대 로펌 설립자이자 대표변호사인 오대양(김명곤)은 검사 홍정수에게 “젊은 판사들이 나서서 수사요청을 하다니 말이 되느냐”고 말한다. 이에 홍정수는 “우리 검사들도 마찬가지다. 하다하다 미투를 하지 않느냐”며 답한다.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재벌 총수 일가의 ‘갑질’도 그린다. 재벌 3세로 오성그룹 계열사 임원을 맡고 있는 이호성(윤나무)은 자신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에게 폭행을 일삼고,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운전 중인 운전기사에게 욕설과 폭력을 퍼붓는다. 이호성은 공장 현장 시찰 중 생수통을 빌미로 책임자를 때려 실명에 이르게 하는데,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거짓 증언을 하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협박하는 모습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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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드라마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역으로 꼽히는 의료계와 법조계를 배경으로, 최근 벌어진 사회문제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드라마 소비 플랫폼 다양화 등 방송환경에 따른 시청자의 취향과 사회문제를 담고 싶어 하는 제작진의 성향이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고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예전에는 TV드라마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방송환경이 변화하며 장르적 속성이 강화되고 좁아진 타깃 대상에 맞게 직설적이면서 노골적으로 다루고 있다”며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해 드라마보다 뉴스가 훨씬 재미있는 상황이라 웬만한 강도로는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어 “작가라면 기본적으로 사회 현상을 드라마에 담고 싶어 하는데 예전에는 암묵적 제약이 있어 시대극이나 역사극이 아니면 대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웠지만 최근에는 플랫폼이 다양화되면서 여러 제약이 해제된 양상”이라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새누리당 시절에는 표현의 자유가 많이 억압돼 표현의 욕구가 억눌러졌고, 최근에는 해방된 측면이 있어 자유롭게 문제점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러브라인으로만 발달돼 온 드라마 시장이 정상적으로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또 현실적인 사회문제를 반영한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면서 이같은 추세는 더 이어질 것으로 봤다. 하 평론가는 “최근 사회적인 요소를 반영한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고, 진부한 사랑 타령보다 사회적인 요소를 리얼하게 그리는 걸 시청자도 원하니 작품의 사회적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며 “앞으로 더 리얼하고 사회 논란이나 문제점 반영하는 작품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학·이유진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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