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의 마리오 만주키치(가운데)가 지난 1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연장 후반 4분에 극적인 역전 결승골을 터뜨린 후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하고 있다. /사진=모스크바 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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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 더 스포츠-104] 1994년 11월 16일. 유로 1996 예선전에서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가 만났다. 이탈리아는 모두가 알다시피 유럽 축구 최강팀 중 하나이고, 크로아티아는 수년째 내전을 겪고 있는 신생 독립국이었다. 한때 '유고'라는 이름으로 뛰던 선수들은 크로아티아의 상징인 붉은색과 흰색의 격자무늬 유니폼을 입기 위해 이탈리아 팔레르모로 모였다. 본국이 아닌 다른 리그에서 뛰던 선수 13명은 자비로 비행기표를 구매하여 합류했다. 이들은 '전선에 나가 있는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펼치자'고 다짐한 후 경기에 임했다. 그리고 그들은 적진 한복판 전투에서 거함 이탈리아를 2대1로 격침하였다. 그렇게 기적은 시작되었다. (장원재,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중에서)
지난 11일(현지시간) 크로아티아가 2018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잉글랜드를 2-1로 꺾고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결승에 진출하자 크로아티나 수도 자그레브에서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열광하고 있다. /사진=모스크바 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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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는 유럽의 소국이다. 인구는 400만명이 조금 넘으며, 국가 면적도 5만6000㎢로 대한민국의 절반 수준이다. 경제 수준도 유럽에서는 하위권이다. 옛 유고연방에서는 1991년 독립했으며, 수년간 전쟁을 치르며 20세기 말을 보냈다. 영토 또한 땅따먹기를 한 듯 기이한 형태다. 결승전에서 맞붙는 프랑스와는 여러모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경제대국이자 인구도 6000만명이 훨씬 넘고, 국토도 10배 이상 크다. 게다가 프랑스는 월드컵을 개최해봤고 우승컵을 들어올린 경험도 있다.
크로아티아는 강자들에게 강했다. 사실 그게 그들의 매력이다. 월드컵에서의 성적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1998 프랑스월드컵은 크로아티아를 세계 축구팬들에게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무대였다. 8강전에서 세계 최강 독일을 3대0으로 셧아웃시켰다. 월드컵에서 독일이 득점하지 못하고 내준 가장 많은 점수 차 경기였으며, 굴욕 그 자체였다(그 후 다시 탄탄대로만 걷던 독일은 20년 후, 대한민국에게 다시 수모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3·4위 결정전에서는 히딩크가 이끄는 네덜란드마저 꺾고 첫 월드컵에서 3위라는 기적의 역사를 쓴다.
크로아티아는 유럽 팀들을 상대로 강했는데, 월드컵에서 유럽 팀을 상대로 5승2무1패를 기록 중이다. 여기에는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잉글랜드가 포함되어 있다. 월드컵에서 한 번도 붙어보지 못했던 스페인에도 유로 2016에서 승리해봤다. 유럽 메이저 팀들을 상대로 이렇게 많은 승리를 따낸 변방 팀은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재미있는 점은 이번에 결승에서 맞붙게 되는 프랑스와의 인연이다. 두 팀은 크로아티아의 최전성기 시절이던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한 차례 맞붙었고, 프랑스가 이겼다. 지금까지 크로아티아가 월드컵 무대에서 유럽 팀에 당한 유일한 패배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크로아티아는 친선경기를 포함해 프랑스와의 A매치에서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5번의 경기에서 3승2무로 프랑스가 절대적으로 앞서 있다. 그나마 최근 2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했다는 점이 위안거리인 상황이다.
여러 정황상 많은 축구팬들과 축구전문가들이 이번 결승전에서 프랑스의 우세를 점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상당히 합리적인 추론으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과거 상대전적도 그렇지만, 다른 여러 상황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먼저 스쿼드 구성이나 그동안에 보여준 경기력 측면에서 그렇다. 물론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핵심 미드필더인 모드리치와 라키티치가 이끄는 크로아티아의 중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음바페, 그리에즈만, 지루, 포그바가 이끄는 프랑스의 공격진은 더 강하고 화려하다. 게다가 프랑스는 젊고 활기차기까지 하다. 반면 제2의 황금세대로 불리는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다.
지난 3번의 토너먼트 경기에서 모두 연장전을 소화했다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연장 30분씩 3경기를 했다는 것은 프랑스보다 한 경기를 더 뛴 것을 의미한다. 3경기는 불과 10일 동안에 치러졌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러한 체력 소모를 하고도 결승전까지 올라왔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좀 다른 의미에서도 크로아티아가 결승전에서 승리하여 우승한다면 축구사에서 특별한 기적을 쓰게 된다. 1994년 이후에 월드컵 우승팀들의 피파랭킹은 모두 5위권 이내였다. 피파랭킹에 대한 신뢰도에 대한 의문은 늘 있어 왔지만, 그래도 강팀들이 우승하는 지극히 단순한 원칙은 지난 20년 이상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 직전 크로아티아의 피파랭킹은 20위였다. 10위권 밖의 팀이 우승은커녕 결승전에 올라온 예도 전무하다. 사실 피파랭킹 7위인 프랑스가 우승해도 전례가 없던 일이다. 크로아티아가 이미 엄청난 일을 해내고 있다는 증거다.
기적의 사전적 의미는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거나 '신'에 의해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기이한 일을 말한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양 팀 간의 전력차가 매우 크고 승부를 쉽게 점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의 결과가 났을 경우에 우리는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기적은 현실 세계에서보다 스포츠 세계에서 휠씬 빈번히 일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크로아티아는 늘 기적을 보여주던 팀이었다. 이번 결승전이 크로아티아에 여러 가지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기대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지규 스포츠경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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