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5 (금)

"이 시트콤에선 부산 사투리 쎼빠지게 써도 됩니데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KNN 시트콤 '날아라 메뚜기' 화제

민박집을 찾아온 '서울 할매'는 여행 가방을 잃어버렸다면서 온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아무것도 모르고 마을 공터에서 주인 없는 가방을 타고 놀던 아이들은 혼쭐이 난다. 하지만 가방 안에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봉투만 그득한데…. "올여름 시끌시끌하겠는데? 우짠지 예감이 안 좋네예"라는 파출소 여순경의 혼잣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부산·경남 민방 KNN에서 매주 화요일 방송하는 '날아라 메뚜기'가 '촌티콤'이란 이름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순풍산부인과'(SBS)나 '거침없이 하이킥'(MBC) 같은 시트콤이지만 부산 작가들이 시나리오를 쓰고, 부산 배우들이 나오며, 부산 사투리가 '표준어'란 점에 결정적 차이가 있다. TV만 켜면 온통 서울·수도권 이야기만 쏟아지는 한국에서 지역의 감성을 뜻하는 '촌티'를 제대로 살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시청률도 3%를 훌쩍 넘었다.

조선일보

촌티콤‘날아라 메뚜기’는 부산 기장의 임랑해수욕장을 배경으로 여름철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사진은 서핑을 배우기 위해 코치와 수강생들이 만나는 장면. 왼쪽부터 이선민 진미령 지원이 우승민. /KNN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장의 임랑해수욕장을 배경으로 여름파출소와 펜션, 서핑 스쿨을 오가며 각종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메뚜기는 여름 한 철 보고 살아가는 바닷가 마을 사람들에 대한 비유. 지난 3일 4회까지 방송한 이 시트콤은 파출소 총각 순경이 실수로 여자 서핑 코치의 임시 거처에 들어갔다 오리발에 뺨을 맞고 뻗는 모습, 채식주의자인 서울 할매를 위해 좌충우돌 특별 식단을 짜는 민박집 가족 이야기 등이 웃음을 자아냈다.

배우 선발 오디션은 '사투리 배틀'을 방불케 했다. 서핑 코치 역 이선민은 서울 출신이나 안정적인 사투리를 구사해 발탁됐다. 하지만 부산 토박이들 귀에만 들리는 미세한 어감까지는 따라잡지 못해 극 중 서울말을 쓰는 것으로 대본을 수정했다. 임혁규 PD는 "가슴 따뜻한 줄거리에 사투리가 얼마나 맛깔난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KBS 사극 '대조영' '징비록'에 출연한 부산 출신 배우 고인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올라이즈밴드(올밴) 우승민이 찌질하면서도 의리를 잃지 않는 부산 '싸나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인범은 홍보 영상에서 "여기는 사투리를 아무 때나 그냥 쎼빠지게 팍팍 써도 되거든요. 요런 맛 보면서 보이소. 맞지예?"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부산 배우만 있는 건 아니다. 서울 할매는 가수 진미령이 맡았고, 민박집 주인은 코요태 출신 백성현(일명 빽가)이 연기한다. 비욘세 못지않은 몸매와 춤 실력이라 '트욘세'(트로트 비욘세)로 불리는 지원이가 푼수끼 있는 미녀 역할을 맡았다. KBS 수퍼 탤런트로 데뷔한 윤지숙(파출소장 역)은 "촬영 때마다 고향에 오는 것처럼 즐거웠다"고 했다. 그는 부산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다.

KNN은 지역 민방 중 드라마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1995년 개국 특집으로 배용준 주연의 '해풍'을 만들었고 이듬해 '형제의 강'(SBS합작), 2008년 1월 미니 시리즈 '대박인생'을 제작했다. 2012년 촌티콤의 원조가 된 '웰컴투 가오리', 지난해 '웰컴투 가오리2' 등을 선보여 전국으로 소문이 났다. '날아라 메뚜기'는 KNN 홈페이지와 스마트폰 앱에서 무료로 다시 보기가 가능하고, TV 재방송이 끝나면 네이버TV에도 제공할 예정이다.

수익 측면에선 SBS 프로를 내보내고 중계료를 받는 것이 낫지만 KNN은 "지역 문화를 지키는 차원에서" 드라마 제작을 이어갈 계획이다. 최근에는 지역 기업들도 알아보고 광고 문의를 해온다. 김형곤 동명대 신방과 교수는 "여기서 '촌티'는 실력이 떨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지역 특징을 제대로 살렸다는 의미"라며 "지역 민방은 다른 곳에서 만들 수 없는 콘텐츠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흔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