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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임성일의 맥] '이길 수 있다'는 교민들의 응원이 바보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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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1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축구대표팀의 베이스캠프 첫 훈련에서 경기장을 찾은 현지 교민들이 태극전사들을 응원하고 있다. 2018.6.13/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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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뉴스1) 임성일 기자 = 축구대표팀이 결전의 땅 러시아에서 첫 훈련을 펼치던 지난 13일 오후(이하 현지시간). 베이스캠프가 차려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는 꽤 많은 교민들이 찾아 선수들에게 기를 전달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월드컵 본선 진출국들에게 대회 기간 중 최소 1번 팬들과 언론에게 훈련 모습을 의무적으로 공개토록 방침을 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러시아 입성 후 초반에 '공개훈련(OPEN-TO-PUBLIC TRAINING SESSION)'을 진행하는데, 13일이 그날이었다.

두 딸과 함께 훈련장을 찾은 한 교민은 "여기에 오려고 얼마나 기다리고 준비했는지 모른다. 이곳(러시아)에서 월드컵이 열려 이런 행운을 잡게 됐다"며 정말 밝게 웃었다.

먼 타지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이들을 접한다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은 잘 모르는 감정을 전달한다고 한다. 그를 비롯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교민들이 그런 벅참을 안고 태극기를 흔들며 아리랑을 불렀다. 경기도 아니고, 훈련 내용도 그리 대단할 것 없는 날이었으나 교민들은 벅차게 목을 놓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모스크바 버금가게 한국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라고 한다. 약 1300~1400명, 등록되지 않은 인원을 합치면 2000명가량의 교민들이 살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의 조별예선 경기가 없다. 대표팀은 각각 니즈니(1차전 vs스웨덴), 로스토프(2차전 vs멕시코), 카잔(3차전 vs독일)에서 본선을 치른다.

상트에서 경기가 없는 게 아쉽다고 말하자 그는 "무슨 소리냐. 16강이 상트에서 열린다"고 강한 어조와 함께 더 환하게 웃음을 보였다. 그의 말은 사실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한국의 조별예선은 없으나, 신태용호가 토너먼트에 진출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해진 스케줄 상 한국이 F조 1위로 조별예선을 통과하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E조 2위와 16강전을 치르고, 2위로 오르면 사마라에서 토너먼트 첫 경기를 갖는다. 그는 "우리가 조 1위로 조별라운드를 통과하면 16강전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독일 스웨덴 다 이겨서 1위로 16강 가야한다. 어렵게 16강 티켓을 구매했는데, 남의 나라 경기 볼 수 없다"면서 "공은 둥글다. 꼭 힘내서 좋은 결과를 냈으면 좋겠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 목소리와 눈빛을 보며 가슴이 꽤 뜨거워졌는데, 그들의 모습을 보고 한반도에서 날아온 댓글을 보며 몸의 온도가 급히 되돌아 왔다. 그 교민의 목소리를 전해들은 팬들은 '정신 못 차리네' '축알못(축구를 알지 못하는)' '미안하지만 4위' '웃기고 있다' '이 사람 축구 처음보네' 등의 빈정과 조롱으로 일관했다.

종합해보면 "축구를 아는 사람으로서 설명해주겠는데, 한국의 실력으로는 택도 없어" 정도가 되겠다. 사실 틀리진 않는 말이다. 그래서 그 교민의 웃음을 보며 딱하게 혀를 찼다. 하지만, 사실 진짜 딱한 이들은 그렇게 월드컵을 기다리는 이들일지 모른다. 4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한 달. 심지어 응원할 '우리 편'도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뉴스1

2018 러시아월드컵 축구대표팀 주장 기성용을 비롯한 태극전사들이 13일 오후(현지시간) 베이스캠프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첫 훈련을 마친 뒤 응원나온 현지 교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2018.6.13/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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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감독은 "왜 우리 선수들은 상대 선수들 이전에 우리 국민들과 먼저 싸워야하는지 모르겠다. 핸드폰을 다 압수할 수도 없고..."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축구를 꽤 잘 안다고 자처하는 팬들의 '태클'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는 하소연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전망이 어둡다고 평가하는 게 문제될 건 아니다. 한 선수는 "정말 우리도 나라를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뛰고 있다. 목숨 걸고 뛴다. 응원을 해주시면 정말 좋겠지만, 최소한 손가락질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우리 놀지 않는다"는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삐딱한 시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오스트리아 레오강에서 전지훈련 할 때는 "저렇게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잘 놀다 오라"더니 러시아에 입성하자 "백야 때문에 내내 해가 떠 있으니 놀기 좋을 것"이라니, 선수들이 아플 만도 하다. 설마 날이 밝다고 선수들이 놀까 싶다.

2002년 월드컵 기적의 중심에 있었던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는 "팬들의 응원이 선수들을 한 발 더 뛰게 하는 원천이다. 죽을 것처럼 힘들어도, 힘이 다 소진되어도 팬들의 응원을 받으면 멈출 수가 없다. 2002년 때 그랬다. 정말 못 뛸 것 같은데, 그때는 우리가 안 뛸 수 없었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팔이 안으로 굽은 축구인이라 오해할까봐 탁구의 레전드 현정화 감독의 경험담도 덧붙인다. 현 감독은 "운동을 해본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많은 이들이 주는 '기'는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사실 넘치는 응원을 받으면, 설명할 수 없는 기운으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이상의 초능력적인 힘이 솟아날 때가 있다. 할 수 없던 것도 할 수 있게 해주는 긍정의 에너지"라고 설명한 바 있다.

상트의 교민은 "독일 스웨덴 다 이겨서 1위로 16강 가야한다. 어렵게 16강 티켓을 구매했는데, 남의 나라 경기를 볼 수는 없다"면서 "공은 둥글다. 꼭 힘내서 좋은 결과를 냈으면 좋겠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축구는, 스포츠는 그냥 그렇게 바라봐도 괜찮다. 그들이 결코 바보스럽지 않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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