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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월드컵] 기성용의 다짐, 2002년의 황선홍과 꼭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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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2018 러시아월드컵 축구대표팀 주장 기성용이 13일 오후(현지시간) 베이스캠프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첫 훈련을 마친 뒤 응원나온 현지 교민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2018.6.13/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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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뉴스1) 임성일 기자 = "한 장면의 실패와 성공으로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최고의 무대다."

한 축구인이 월드컵을 정의한 것이다. 자체로 멋스럽다. 대상이 그 누구보다 우여곡절 많았던 황선홍이라면 더 와 닿는다. 선수 시절 황선홍의 월드컵 히스토리를 이보다 더 압축할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싶다.

1990월드컵과 1994월드컵에서 스트라이커 황선홍은, 미안한 이야기나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역적'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대회였던 2002월드컵을 통해 '영웅'으로 바뀌었다. 폴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선제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대한민국 월드컵사 첫 승을 견인,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 그 승리를 통해 한국 축구사도 월드컵 4강이라는 믿기지 않는 페이지를 만들었다.

황선홍이 이을용의 패스를 받아 왼발로 슈팅을 날려 폴란드의 두데크 골키퍼 손을 피해 골망을 흔들었던 그 '한 장면'이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그 장면을 위해, 맏형 황선홍이 준비했던 시간이 얼마나 많았고 또 무거웠을지는 짐작도 어렵다.

황선홍 감독은 "앞선 대회들은 다음에도 기회가 있었지만 2002년은 정말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내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사실 불안감이 컸다. 또 다시 실패했을 때 돌아올 파장이 어떨지, 솔직히 두려웠다"는 고백을 전한 적 있다. 개인적인 명예 회복은 둘째 문제였다. 후배들을 위해, 한국축구를 위해 반드시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두려웠다고 했다.

그는 "난 대표 생활만 14년 했다. 후배들을 위해 꼭 발판을 마련하고 싶었다. 월드컵 첫 승 그리고 16강, 한국 축구가 보다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어 놓고 싶었다"면서 "그래서 다른 어떤 경기보다 폴란드와의 1차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그의 왼발을 떠난 폴란드전 선제골이 첫 승을 만들었고 그 1승이 두 번째 승리를 부르더니 결국 아무도 예상치 못한 4강 신화를 썼다. "한 장면의 실패와 성공으로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최고의 무대"라던 황선홍의 월드컵은 그렇게 해피엔딩이었다. 이 이야기를 러시아 월드컵을 앞둔 신태용호 선수들에게 전하면, 가장 심장 근처까지 전해질 이는 기성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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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축구대표팀 기성용과 구자철이 6일 오후(현지시간) 사전 캠프지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근교 레오강(Leogang) 스타인베르그 스타디움에서 열린 훈련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오는 7일 인스부르크 티볼리 스타디움에서 볼리비아(피파랭킹 57위)와 사전캠프 첫 평가전을 치른다. 2018.6.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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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은, 황선홍만큼 어렸던 2010 남아공 대회 때 처음으로 본선 무대를 경험했다. 그때 그는 김남일, 박지성, 이영표 등 형님들과 함께 원정 월드컵 첫 16강이라는 새 이정표를 만들었다. 황선홍의 시작과는 달랐다. 그러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1무2패라는 차가운 결과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황선홍의 중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커리어 마지막 월드컵이 될 수 있는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둔 기성용의 마음가짐은, 그래서 2002 월드컵을 기다리던 황선홍과 비슷할지 모른다. 그는 지금 자신의 명예회복 그 이상으로 한국 축구와 후배들을 기다리고 있다.

기성용은 결전의 땅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발 디뎠던 날 모든 선수들이 머리보다 가슴으로 이해해야할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이번 대회가 커리어의 마지막 월드컵인 선수도 있고 더 나갈 선수도 있겠지만 모두 마찬가지다. 이 소중한 기회를 허투루 버리지 말고 경기장 안에서 자기 자신을 조금 더 표현했으면 좋겠다"면서 "부담도 있고, 결과 잘못됐을 때 오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월드컵 나왔다는 게 영광이라고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단어와 문장이 똑같지는 않으나 결국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있던 황선홍의 마음가짐과 분명 겹친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 발언은 거짓말처럼 더 똑같다. 지난 3일 인천공항에서 만난 기성용은 "지금보다 조금 더 간절함을 갖고 이 무대가 한국축구, 장기적으로 선수들의 커리어, 후배들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무대가 될 것인지 생각해서 준비 했으면 싶다"고 큰 그림을 이야기했다.

미리 황선홍 감독을 만나 상담했을 가능성은 드물고, 황 감독의 과거 발언을 미리 발췌했을 일도 없다. 그게 리더의 책임감이다.

황선홍 감독과 함께 2002 월드컵 당시 팀을 이끌었던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는 "기성용의 월드컵은 다른 선수들의 월드컵보다 무거울 것"이라고 그 고충을 이해했다. 그러면서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겨내야한다. 내가 아닌 기성용이라면, 잘 해줄 것"이라고 마음으로 박수를 전했다. 부디, 기성용의 엔딩도 황선홍, 홍명보와 같기를 희망한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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