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매일경제 언론사 이미지

"이대로가면 한국 웹툰 5년 내 고사한다"

매일경제 박창영
원문보기

"이대로가면 한국 웹툰 5년 내 고사한다"

속보
김건희특검,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 자택 압수수색
'미생' 윤태호·'은위' 최종훈·다음웹툰 박정서 대표 인터뷰

지난 1일 경기도 성남시 다음웹툰컴퍼니 본사에서 만난 `미생` 윤태호 작가, `은밀하게 위대하게` 최종훈 작가, 박정서 다음웹툰컴퍼니 대표(왼쪽부터)는 웹툰 불법 복제를 못 막으면 K웹툰 전성기도 곧 막을 내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승환 기자]

지난 1일 경기도 성남시 다음웹툰컴퍼니 본사에서 만난 `미생` 윤태호 작가, `은밀하게 위대하게` 최종훈 작가, 박정서 다음웹툰컴퍼니 대표(왼쪽부터)는 웹툰 불법 복제를 못 막으면 K웹툰 전성기도 곧 막을 내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승환 기자]


"웹툰 복제 사이트를 이대로 두면 한국 만화계가 5년 내로 고사합니다."

최근 경기도 성남시 다음웹툰컴퍼니 본사에서 만난 '미생' 윤태호 작가(49), '은밀하게 위대하게' 최종훈 작가, 박정서 다음웹툰컴퍼니 대표(39)는 한국 웹툰계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K웹툰이 외국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뉴스만 매일 접했을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이야기다. 두 작가와 박 대표는 지난달 웹툰 불법복제 사이트 '밤토끼' 운영자 검거로 만화계 병폐가 뿌리 뽑힌 것 같은 분위기지만 해당 사이트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2016년 개설된 밤토끼는 네이버, 다음, 레진 등 주요 웹툰 사이트 작품을 복제해 무료로 공개하면서 인기를 얻어왔다. 특히 지난해 6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을 탄 이후로 최근엔 월평균 방문자가 3500만명까지 치솟았다. 웹툰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밤토끼로 인한 국내 웹툰계 피해액은 2400억원으로 같은 기간 전체 시장(7240억원) 대비 3분의 1 수준이다.

밤토끼 운영자 검거 당일 인기 만화가 수십 명이 축전을 올려 환영했지만 윤태호 작가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냉혹한 현실을 강조했다. 한국만화가협회장인 그는 "후배 작가 중 밤토끼가 생긴 이후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작가도 많다"며 "무료로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인식이 한번 생긴 웹툰은 불법 게재를 막은 이후에도 매출 회복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향후 제2, 제3의 밤토끼 탄생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점은 업계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 실제 기존 밤토끼 이용자들은 호두코믹스, 어른아이닷컴 등 다른 불법 웹툰 사이트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박정서 대표는 "불법 사이트는 파도 파도 계속 나온다"며 "30개쯤 찾아냈는데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전체 규모가 추정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의 자국 웹툰 산업에 대한 보호가 절실한 때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한국이 2000년대 초반부터 플랫폼사를 중심으로 혁신을 거듭하며 획득한 웹툰 선도국 지위를 자칫하면 뺏길지 모른다는 것이다.


최종훈 작가는 "15년 전 출판 만화 시장이 침몰할 때와 유사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대로 5년쯤 있으면 웹툰도 출판 만화처럼 망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걱정했다. 윤태호 작가는 "다음이나 네이버쯤 되는 대형 플랫폼에서는 향후 몇 년간 버틸 여력이 있겠지만 중소형 플랫폼 중에선 이미 존폐 기로에 선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웹툰이 좌초 위기를 겪는 와중에 일본과 중국은 온라인 만화 경쟁력을 나날이 향상시키고 있다. 박 대표는 "일본에서는 한 달에 웹툰 플랫폼이 3개씩 생기고 있다"며 "국내 플랫폼이 불법 사이트에 수익을 빼앗겨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힘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복제 사이트에 대한 한일 정부 간 대응 차이에도 주목하고 있다. 웹툰 불법 복제 사이트가 외국에 서버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검거를 지난 수 년간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다. 이번 밤토끼 검거도 부산·경남경찰청 두 경사의 선의에 의해 이뤄졌을 뿐이고 제도적 개선이 없어 아쉽다는 지적이다. 반면 일본 정부는 구글과 협조해 불법 사이트가 검색 결과에 노출되는 걸 차단하는 등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지식재산전략본부 범죄 대책 각료 회의를 열고 웹툰 해적판 사이트에 대한 블로킹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최종훈 작가는 "국내 복제 사이트뿐만 아니라 국외 사이트에서도 불법 번역 행위가 만연하고 있다"며 "내 작품이 정식 수출되지도 않은 10여 개국에서 팬 레터를 받는 황당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웹툰 불법 판매 차단을 위해 취해야 할 조치로는 '저작권법 개정안 통과'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한 정기적 실태조사' '수사기관 일원화' 등이 꼽힌다. 만화계에서는 무엇보다도 국회에 계류 중인 저작권법 개정안(김재원 의원실 발의)을 통과시켜 웹툰 복제 사이트를 적시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정서 대표는 "현재 불법 사이트를 신고한 후 방통위 차단 심사에 이어 사이트 차단 결정까지 이뤄지는 데는 6개월 정도 소요된다"며 "개정안을 통해 이 과정을 2주 정도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태호 작가는 "지금은 저작권 피해 사례를 접수하면 각 경찰서에서 수사하는 방식이라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저작권 침해를 조사할 수 있는 일원화된 수사 기관을 마련해서 검거에 속도를 높이고 노하우를 축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각 웹툰 플랫폼은 불법 복제 차단 기술을 고도화하며 저작권 침해를 방지하고 있다. 불법 행위를 범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계정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다음웹툰 '와치타워'나 불법 복제 유출자에 대해 재접근을 차단하는 네이버웹툰 '툰레이더'가 대표적이다. 박정서 대표는 "특정 시간대에 대량 결제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아이디는 특이한 이용 행태를 보이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며 "실제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절차를 더 거쳐 불법 복제 계정을 특정해간다"고 설명했다.

[박창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