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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슈 [연재] 매일경제 '쇼미 더 스포츠'

평창에 미니선수단 보낸 58개국 `당신은 소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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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18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상화(왼쪽)가 시상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가운데는 금메달을 획득한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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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 더 스포츠-77] "올림픽대회의 목적은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이 말은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교육학자인 피에르 쿠베르탱이 남긴 유명한 말로 올림픽 정신을 논함에 있어서 가장 빈번히 인용되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림픽을 국가 간 스포츠 대항전으로 인식하고 있고, 실제로도 소위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경쟁이 과열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근대 올림픽의 초창기인 1~3회 올림픽에서는 선수들이 국가의 대표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다. 또한 올림픽을 주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올림픽 헌장(THE OLYMPIC CHAPTER) 1장 6조에는 '올림픽에서의 경쟁은 개인이나 팀의 경쟁이지 국가 간의 경쟁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글로벌 규모의 행사를 함에 있어서 국가 또는 이와 유사한 단위의 조직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올림픽과 같은 종합 스포츠 경기도 마찬가지이다. 혹시 단일 종목이라면, 국가가 아닌 팀이나 개인 단위 경쟁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여러 종목이 혼재된 상태에서는 국가 또는 이와 유사한 단위의 조직의 지원과 행정적 도움이 있지 않고는 대회를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IOC는 국가를 중심으로 한 NOC를 조직하였고, 본의 아니게 국가 간 경쟁을 유도하게 되었다.

*실제로 IOC는 올림픽에서 국가별 메달 순위 발표는 미디어 등을 위한 편의 제공 차원에서 집계하는 것이며, 공식적으로 이를 시상하거나 서열화하지는 않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IOC는 같은 이유로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를, 2016 리우데자네이루하계올림픽에서는 쿠웨이트 NOC에 대해 각각 제제하고 국가 차원 출전은 금지시켰다. 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출전은 막지 않고 오히려 도왔다.

그러나 IOC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 특히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올림픽 하면 떠오르는 핵심 이미지는 여전히 국가 간 종합 스포츠 대항전이다. 각국의 국민은 자국 선수들의 경기 모습에 일희일비하며, 세계에서 자신들의 모국이 어느 정도인지와 자국의 스포츠역량을 가늠하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주변국이나 라이벌 국가와 비교하게 될 수밖에 없기 마련이며, 이는 때로는 과열된 양상을 만들곤 한다. 과거 미국과 소련이 그랬고, 통일 전 독일의 서독과 동독이 그러하였다. 우리나라도 한때는 북한과 또 한때는 일본과 비교하며 라이벌 의식과 애국심을 불태웠던 적이 있었음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사실 IOC는 이러한 국가 간 경쟁에 대해 의도적으로 부추기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금기시하거나 막지도 않았다. 사실 스포츠가 더욱 재미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경쟁과 응원의 요소가 있어야 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며, 이를 막지 않았다고 해서 딱히 비난 받아야 될 일은 아니다. 단순히 참가에만 의의를 두고, 세계평화를 주창하는 일은 모두가 공감하고 지향해야 되는 가치인 것은 맞지만, 스포츠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재미를 좀 등한시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이미 어느 정도 상업화되어 있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는 올림픽의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도 이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쟁이 소위 힘 있는 소수의 '국가'들에 집중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올림픽 초창기만 하더라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되지 않았고, 애초에 근대 올림픽의 출발도 소수 유럽 국가들과 미국 정도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소위 지구촌이 하나가 됨으로써 IOC도 쿠베르탱의 말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다. 올림픽이 진정한 세계인의 축제가 되고, 또 계속해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많은 국가의 참가와 호응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IOC는 더 많은 나라의 참가를 독려하였고, 올림픽 종목과 출전 가능한 선수TO를 지속적으로 늘렸으며,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다.

*30여 년 전인 1984 LA하계올림픽과 1984 사라예보동계올림픽, 2016 리우하계올림픽과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비교하면 참가국 수나 참가 인원이 적게는 48%, 많게는 130% 이상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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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2016 리우하계올림픽의 공식적인 참가국은 207개였다. 전 세계 국가 수가 유엔 회원국 기준으로 193개국이니, 리우올림픽 참가국 수는 이보다 휠씬 많으며, 심지어 국제올림픽위원회 산하 NOC 206개보다도 1개가 많은 것이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전 세계인의 스포츠 대축제라 할 만하다. 금번 평창동계올림픽은 92개국에서 30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역대 최대 규모인데, 이는 동계올림픽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기후적 제약조건)를 감안할 때 과거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2016 리우올림픽은 IOC 산하 NOC 206개 중 205개가 참가하였으며, 2015년 IOC의 제재를 통해 자격을 정지당한 쿠웨이트가 지금 평창의 러시아와 같이 국가가 아닌 별도의 선수단 조직으로 참가했다. 여기에 일부 국가 난민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어 선수단을 조직해 팀을 만드는 등 총 207개 팀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 올림픽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변화와 참가국 및 인원 확대가 의미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속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지난주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유심히 지켜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전체 참가 92개국 중, 소위 '나 홀로 선수단'이 18개국이나 되었으며, 비율로 따지면 전체의 20%나 된다. 범위를 조금 확대해 10명 이하 선수들이 출전하는 '미니 선수단'은 58개국으로 전체 참가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넘으며, 지난 소치·벤쿠버동계올림픽도 동일한 양상을 띠고 있다.

*'나 홀로 선수단'이나 '미니 선수단'의 상당수 선수들이 해당 국가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주로 거주하거나 이민자라는 점도 한편으로는 좋은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겠지만, 조금은 불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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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선수단 인원을 따져보면 이러한 소수 집중현상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는데, '미니 선수단' 58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34개국 참가선수들은 2745명으로 전체 선수들의 95% 가까이 된다. 또 참가가 아닌 승부에서 이긴다는 관점에서 볼 때는 더욱 그러한데 2014 소치동계올림픽 기준으로 단 1개의 메달이라도 획득한 국가 중, 10명 이하의 '미니 선수단'을 파견한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 58개국이 들러리로 보일 수도 있는 이유이다.

반면 단 1개라도 메달을 획득한 국가 수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 기준으로 26개국 30%에 불과하다. 1984 사라예보동계올림픽이 49개국 중 17개국(35%)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퇴보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하계올림픽이 '미니 선수단'이나 '나 홀로 선수단' '메달 획득 국가 수(비율)' 등에서 과거에 비해 점차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상황과 비교된다.

쿠베르탱은 근대 올림픽의 창설자이기 이전에 교육학자였다. 그는 고대 올림픽 스포츠의 가치를 교육에 접목하면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였고, 이를 실천하고자 고대 올림픽을 다시금 현대사회에서 부흥하려고 애썼고 그의 이런 노력은 성공했다. 그는 교육자로서 스포츠를 통해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우정을 나누는 동시에 화합이라는 가치를 배울 수 있으며, 당연히 승부보다는 참가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쿠베르탱이 생각했던 참가의 가치와 의의는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IOC는 어쩌면 상업화와 세계 공존의 가치 사이에서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정지규 스포츠경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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