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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코피 흘리던 허약체질 소년, 빙속 에이스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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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규 男 500m 은메달 / 건강 위해 초등3학년 때 쇼트트랙 입문 / 대학 진학하면서 스피드로 종목 전환 / 소치 때 인대부상 좌절… 재활 거쳐 재기 / 거침없는 상승세… “평창서 일 내겠다” / 부스터 단 듯… 달릴수록 점점 빨라져 / 모태범 이후 8년 만에 메달 '새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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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규가 19일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빙판을 질주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남자 500m는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의 신기원을 연 기념비적 종목이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모태범(29·대한항공)이 예상치못한 금메달을 따냈기 때문이다. 1948년 제5회 스위스 생모리츠동계올림픽부터 오랫동안 세계 무대를 노크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처음으로 정상에 선 순간이다. 이후 이상화(29·스포츠토토)가 여자 500m, 이승훈(30·대한항공)이 남자 1만m에서 연이어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역대 동계올림픽 최고 성적을 거뒀다. 이후 이 세 선수가 주축이 돼 8년 동안의 황금기를 달렸다.

이제 그 뒤를 19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깜짝 은메달’을 따낸 차민규(25·동두천시청)가 잇게 됐다. 14조 아웃코스에서 레이스를 펼친 차민규는 첫 100를 9초63의 다소 평범한 기록으로 주파했다. 그러나 이후 믿을 수 없는 스퍼트를 보이며 나머지 400를 24초79초로 끊었다. 점점 빨라지는 차민규의 속도에 강릉오벌을 가득 채운 관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결과는 34초42의 올림픽 신기록. 이후 호바르 로렌첸(26·노르웨이)이 34초41로 새로운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차민규는 2위로 밀렸지만 강릉오벌을 찾은 관중들 중 아쉬움을 보이는 이는 많지 않았다. 챔피언의 기록에 불과 0.01초 뒤진 ‘금메달에 준하는 은메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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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모습 19일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은메달을 따낸 차민규의 어린시절 모습. 차민규 가족 제공


차민규와 스케이트의 만남은 타고난 재능 때문이 아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코피를 자주 흘릴 정도로 허약한 체질을 개선하고자 스케이트를 신었다. 빙판 위를 누비는 자체에 재미를 붙인 차민규는 쇼트트랙 선수 길로 접어들었다. 동북중·고를 졸업한 그는 한국체대 입학을 앞두고 대학 교수의 권유로 종목을 스피드스케이팅으로 바꿨다. 처음에는 부침을 겪었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오른쪽 발목 인대를 크게 다쳐 회복 불가 진단을 받았다.

이후 피나는 재활을 거쳐 기적적으로 다시 일어난 차민규는 2016년 삿포로아시안게임 대표선발전에서 밴쿠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이 종목 국내 최강자로 군림하던 모태범을 꺾으며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후는 거칠 것이 없었다. 지난해 2월 알마티 동계유니버시아드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1000m 2관왕에 오르더니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남자 5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도 차민규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12월 캐나다 캘거리월드컵 3차대회 남자 500m 디비전A에서는 34초31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거머쥐며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다크호스’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금메달을 차지한 월드컵 세계랭킹 2위 알렉스 보이버트 라크로익스(캐나다)와 차이는 단 0.001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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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 19일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깜짝 은메달’을 따낸 차민규가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고 있다. 강릉=남정탁 기자


차세대 주자답게 차민규는 각오도 남달랐다. 대한체육회에서 올림픽을 앞두고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당당히 출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차민규의 기대는 현실이 됐다.

이로써 지난 13일 남자 1500m에서 19살의 김민석(성남시청)이 동메달을 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이날 차민규까지 메달을 따내며 새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특히 남자부에서 10대 후반~20대 중반의 젊은 선수들을 발굴해내 4년 뒤 베이징동계올림픽 전망을 밝혔다.

강릉=서필웅·최형창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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