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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평창돋보기] 복근왕 레데츠카의 이유 있는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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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18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여자 슈퍼대회전 금메달리스트 에스터 레데츠카. 평창=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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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터 레데츠카(23ㆍ체코).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알파인 스키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는 게 퍽 어색해 보였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광경이다.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어리둥절해하는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떠오른 추억 하나가 나를 3년 전 여름으로 데려갔다.

그를 처음 본 건 2015년 8월 칠레의 엘 콜로라도였다. 전세계 스피드 스키 레이서들은 7~9월이 겨울인 칠레에서 훈련한다. 스피드 스키팀은 훈련할 때 여러 팀들이 힘을 합친다. 구간 별로 비디오 찍는 인원만 4~5명이 필요하고, 기록 계측하는 사람 등 선수 외에도 스태프가 10명 정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치가 나 하나뿐이었던 우리 팀을 훈련에 끼워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수 1명에 코치 1명, ‘팀’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인 레데츠카 역시 같은 처지였다. 우리에게 다가와 합동훈련을 제안했고, 그렇게 ‘스키 후진국’끼리 인연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스노보드 세계랭킹 1위가 굳이 왜 스키까지 타려고 하나 신기했다. 우리 선수들과 실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타고난 센스는 틈틈이 보였다. 내 키가 180㎝인데 몸집이 나와 비슷했고, 훈련 도중 잠깐씩 대화를 나눴을 때 매우 착하고 겸손한 선수라는 게 내가 받은 인상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16년, 같은 장소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같은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실력이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이미 알파인 스키에서 사우스아메리칸 컵 정도는 휩쓸고 다녔고, 지난해에는 12월 캐나다 레이크루이스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는 활강 7위까지 오르는 선수가 됐다. 급기야 이번 올림픽 슈퍼대회전에서 ‘슈퍼스타’ 린지 본(34ㆍ미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 번은 레데츠카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복근에 새겨진 왕(王)자가 웬만한 보디빌더 보다 진했기 때문이다. 코치들에게 들어보니 그는 기술 훈련 못지 않게 체력훈련을 엄청나게 한다고 한다. 스키 경기에서 후반에 힘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선수를 자주 볼 수 있는데, 레데츠카는 피니시라인을 통과하는 순간까지 초반의 페이스를 똑같이 유지한다. 그가 스노보드뿐 아니라 스키까지 점령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아마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레데츠카의 이번 금메달을 ‘이변’ 또는 ‘깜짝 우승’으로만 치부한다면, 그 동안 그가 보여준 훈련과정이나 노력을 평가절하 하는 게 아닐까?

조용제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 후보팀 감독
한국일보

알파인스키 스피드 조용제 감독/2018-02-14(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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