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7 (일)

고다이라 “당신을 존경해요”… 이상화 “당신도 대단해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평창올림픽]이상화의 네번째 올림픽, 금같은 눈물

동아일보

‘맞수’ 日 고다이라와 포옹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를 마친 직후 이상화(왼쪽)는 태극기를 들고, 고다이라 나오(일본)는 일장기를 어깨에 두르고 나란히 링크를 천천히 돌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고했다. 너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무대에서 내려온 빙속 여제는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을 토닥거렸다. 어쩌면 그의 레이스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이상화(29)는 경기 후 자신의 레이스를 담담하게 복기했다. 첫 100m를 자신보다 바로 앞 조에서 경기를 펼친 일본 고다이라 나오(32·10초26)보다 빠른 10초20으로 끊으며 산뜻한 출발을 했던 이상화는 마지막 코너에서 미끄러지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초반 100m 속도가 빠른 걸 온몸으로 알았어요. 약간 세계신기록 느낌을 받았죠. 그런 속도를 오랜만에 느껴봐서 너무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이상화는 “최선을 다했다. 후회하지 않고 값진 경기였던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또 “무릎 부상을 떠나서, 물론 부상으로 스피드 감을 잃었던 게 사실이다. 감 찾는 데 1년 반 걸렸다. 오래 기다림을 견뎌냈다”고 말했다. 이날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상화는 “당장 은퇴하는 건 아니다”라며 여운을 남겼다.

1988년 캘거리, 1992년 알베르빌,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우승자 보니 블레어(미국) 이후 처음으로 이 종목 올림픽 3연패를 노리던 이상화의 도전은 미완으로 남았다. 레이스를 마친 뒤 눈물을 쏟은 이상화는 최종 순위가 확정된 뒤 대형 태극기를 든 채 안방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금메달을 따낸 ‘맞수’ 고다이라의 손을 잡고 포옹을 하기도 했다.

당초 밴쿠버 올림픽 우승 뒤 은퇴를 고려했던 이상화는 주변의 만류로 소치 대회에 출전했다. 이후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2013년 세계신기록(36초36), 2014년에는 올림픽 2연패 등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대부분을 누렸지만 안방 올림픽이 다시 한번 이상화를 붙잡았다.

동아일보

올림픽 도전은 녹록지 않았다. 부상이 그를 긴 부진의 터널로 몰고 갔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종아리 부상까지 그를 괴롭혔다. 2016∼2017시즌은 월드컵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에 그친 최악의 시즌으로 남았다. 이상화의 어머니 김인순 씨(57)는 “마음은 나가는데 몸이 안 나간다며 상화가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비슷한 시기 일본 고다이라의 급부상도 이상화에겐 마음의 짐이 됐다. 이번 대회 전까지 올림픽 메달은 은메달 하나(밴쿠버 팀 추월)가 전부였던 고다이라는 소치 대회 이후 자비를 들여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면서 뒤늦게 잠재력을 터뜨렸다. 과거 이상화가 차지해 왔던 것들이 하나둘 고다이라의 몫이 되기 시작했다. 이상화도 고다이라에 대한 질문에 ‘그 선수’ 등의 표현을 써가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분위기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건 지난해부터였다. 지난해 3월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은 이상화는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익숙함마저 포기했다. 초반 100m 추진력을 높이기 위해 10년 이상 써온 금색 날을 최근 높이가 낮은 파란색 날로 교체하기도 했다. 부상 후유증으로 주행 시 상체가 들리는 모습이 반복되자 최대한 빙판과 수평을 이루는 낮은 자세 훈련에 집중하기도 했다. 마음가짐도 디펜딩 챔피언보다는 도전자의 입장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2017∼2018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1차 월드컵 1차 레이스 당시 37초60을 기록했던 이상화는 4차 월드컵 1차 레이스에서는 36초71까지 기록을 줄였다. 월드컵 7번의 레이스에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를 따내며 부활의 발판을 마련했다. 올림픽 전에는 자신의 방문에 적어놓은 ‘정상 위에 태극기 꽂는 간지 보여주겠음!’이라는 문구는 우리가 알던 예전의 이상화로 돌아왔다는 하나의 신호였다.

20년 전 스케이팅을 좋아하는 여동생을 위해 운동을 포기해야 했던 오빠 이상준 씨(32)는 올림픽을 앞두고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잘해 왔어. 더 이상 잘하지 않아도 돼.” 마지막 레이스를 마친 빙속 여제에게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강릉=강홍구 windup@donga.com·김동욱·김배중 기자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