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6 (일)

'더 라스트 키스' 비극적 사랑 이면의 씁쓸한 뒷맛 [리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포츠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1889년, 마이얼링의 왕실 전용 별장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몰락하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황태자 루돌프와 그의 어린 연인 마리 베체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른바 '마이얼링 사건'. 이를 모티브로 꾸며진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가 3년 만에 돌아왔다.

지난 2012년 '황태자 루돌프'란 이름으로 초연된 이 공연은 2014년 재연까지 16만 명을 끌어들인 흥행작이다. 이번 공연은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한국에서는 다소 낯선 이름인 루돌프 대신 두 사람이 라스트 키스를 나누는 마지막 장면을 따 '더 라스트 키스'(연출 로버트 요한슨)로 이름을 바꿨다.

극은 스테파니 황태자비와의 사랑 없는 정략 결혼, 아버지 요제프 황제와 정치적 이념 차이로 인해 설 곳 없이 궁지에 몰린 루돌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황제는 황실의 변화를 주장하는 아들에게 집안을 먼저 돌보라며 대를 이을 후손만을 강요한다.

어느 것 하나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상황. '줄리어스 펠릭스'라는 가명으로 자유를 외치는 신문 기고를 쓰는 그는 마리 베체라와 몇 번의 우연한 만남을 갖게 된다.

두 사람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마리 베체라 역시 가난한 집안을 위해 사랑 없는 결혼을 강요 당하고 있었고, 동시에 줄리어스 펠릭스의 사상을 동경했던 것. 어찌 보면 둘은 서로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던 셈. 마리 베체라는 줄리어스 펠릭스가 루돌프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후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루돌프에게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사랑해준 마리 베체라는 말 그대로 '운명'이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동의받지 못한 두 사람의 사랑은 순탄할 수 없었다. 마리는 수번 위협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 루돌프는 몇 번이나 사랑을 포기할 뻔했다. 여기에 루돌프가 교황청에 보내려 했던 이혼 청원서는 황제에게 발각됐고, 헝가리 독립 계획까지 들통나면서 그는 황태자 자격을 박탈당하게 됐다.

두 사람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이들은 결국 둘뿐인 곳에서 죽음으로써 운명적인 사랑의 종지부를 찍는다.

스포츠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유럽이라는 배경이 주는 로맨틱함과 궁전과 왈츠, 의상 등 화려한 볼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황태자의 공허함, 가난에 허덕이는 하층민의 분노 등과 대비되는 효과를 자아낸다. 더불어 비극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더없이 아름답기만 한 스케이트장 신이나 라스트 키스 신은 결말이 가져다주는 슬픔을 극대화시킨다.

다만 스토리와 캐릭터성은 아쉽다. 예상 가능한 내러티브의 고루함은 차치하더라도, 두 사람의 사랑을 단순히 '아름답고 비극적인 스토리'라고 포장하기엔 다소 불쾌한 지점이 있다. 사회적인 통념상 사랑 없이 시작한 정략 결혼이라 하더라도 명확하게 관계를 정리하지 않은 채 시작한 황태자의 새 사랑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긴 힘들다. 심지어 다른 한쪽(스테파니)의 사랑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이라니 더더욱.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명제는 언제나 유효하다. 어떤 것이든 어긋난 것들을 바로 맞추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 때로는 희생까지 필요하다. 어느 것도 매조짓지 못한 상태에서 마리와의 사랑만을 외치는 황태자의 모습은 자칫 고위층의 배부른 투정에 가까워 보인다.

이는 극에 당시의 시대적, 역사적 사상을 제대로 녹여내지 못한 탓이 크다. 매체의 특성상 이를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사회 상황이나 루돌프가 추구했던 신념이 겉핥기식으로 잠깐 그려지는 게 전부다 보니 두 사람의 전사와 관련한 사전지식이 없다면 '사랑 이야기' 자체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다행인 건 배우들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극을 이끌었다. 특히 타페 수상 역의 민영기와 라리쉬 백작부인 역의 신영숙의 '하드캐리'가 돋보였다. 카이는 루돌프의 유약하고 불안한 모습에 집중해서인지 간혹 루돌프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민영기에 밀릴 소지가 있었다. 그만큼 민영기의 찌를 듯한 송곳 성량은 힘이 있었다. 3월 11일까지 엘지아트센터에서 공연.

윤혜영 기자 ent@stoo.com
<가장 가까이 만나는, 가장 FunFun 한 뉴스 ⓒ 스포츠투데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