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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하거나 미니멀하거나…공간 훔친 두 시선

이데일리 오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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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하거나 미니멀하거나…공간 훔친 두 시선

서울맑음 / -3.9 °
- 이화익갤러리 최영걸 '성실한 순례' 전
1㎜ 붓으로 정밀 묘사… 서양종이 등 전통재료 깬 한국화
- 아트사이드갤러리 황선태 '빛·시간·공간' 전
강화유리에 선으로 단순공간 만들고 LED 부착 햇살 채워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1. 그림자에 혹했다. 바깥 풍경 어딘가를 잡아낸 작품은 온통 흑백톤. 그럼에도 맑은 날인지 흐린 날인지, 양지인지 음지인지를 알아챌 수 있다. 그림자다. 프라하 어느 길가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길거리 아티스트와 카렐교의 브릿지밴드, 베니스의 고풍스러운 건물 앞에서 일광욕 중인 비둘기 등. 이들 모두는 시공간을 가르는 그림자를 내렸다.

#2. 빛에 혹했다. 집안 전경 어딘가를 잡아낸 작품은 쏟아지는 햇살을 품고 있다. 그런데 같은 빛이 아니다. 밀도로 시간을 가늠케 하는 빛이다. 티테이블을 놓은 응접실은 오후 어느 한때, 소파 위 쿠션이 엉클어진 거실은 분명 아침일 거다. 통창 밖으로 낮은 산을 걸친 또 다른 거실은 이제 막 해넘김 중이다.


한 사람은 수묵화를 ‘그리고’, 한 사람은 미디어회화를 ‘만든다’. 한 사람은 사람·동물이 꽉 찬 공간을 옮겨오고, 한 사람은 가구·사물뿐인 공간을 빚어낸다. 작가 최영걸(49)과 황선태(45)다. 두 작가가 국내서 자주 접할 수 없던 작품을 걸고 개인전을 열고 있다. 최 작가는 서울 종로구 율곡로 이화익갤러리서 ‘성실한 순례’ 전을, 황 작가는 자하문로 아트사이드갤러리서 ‘빛·시간·공간’ 전을 열었다.

한쪽은 먹과 한지, 한쪽은 유리와 LED. 기본적인 작업툴이 빚어낸 작업물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두 작가는 다른 듯 닮았다. 흑백·모노톤으로 작품을 내놓고 단 한 지점에 색을 입히는 화법을 즐긴다는 점이 닮았다. 방점으로 뒤바뀔 분위기를 계산한다는 얘기다. 빛과 그림자를 가늠한다는 점 역시 닮았다. 빛이 없다면 그림자가, 그림자가 없다면 빛이 의심을 받는다. 다른 점은 방법론. 최 작가가 미세한 떨림까지 잡아내 공간을 채웠다면 황 작가는 거대한 덩어리까지 빼내며 공간을 비운다. 결국 공간을 훔친 두 시선이다. 디테일하거나 혹은 미니멀하거나.

△1㎜ 세필로 그어낸 풍경…최영걸 전

돌이 차가운 걸 아는 개다. 터키 에게해 연안의 한 유적지에서 넓은 돌계단 하나를 차지한 채 한여름 지친 잠에 빠졌다. 멀찌감치 한 남자가 보인다. 하늘색 셔츠에 푸른색 반바지. 그 혼자만 ‘컬러’다. ‘행복’(2017)이란 작품이다. 편안한 풍경. 하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신경줄이 죄이는 듯했던 이유가 있었다. 작품에 다가갈수록 당혹스러운 탓이다. 멀리서 이미 사진이라 단정했으니까. 유적지 돌계단의 틈새, 개의 콧수염, 남자의 슬리퍼끈까지 모두 붓으로 그어낸 것이었다.



작가 최영걸에게 굳이 타이틀을 붙이자면 한국화가다. 한지를 고르고 먹으로 작업을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순박한 정서 물씬 풍기는 한국풍경을 고집하지도 않고, 수묵화를 반드시 한지에 그려야 한다는 고집도 없다. 전시작 대부분은 유럽의 어디쯤이고, 절반은 전통한지가 아닌 수채화용 캔버스나 서양종이다. 사실 이는 6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개인전을 하며 달라진 ‘변화 1·2호’이기도 하다.

우연찮은 ‘사고’를 기회로 바꿔낸 순발력 덕이다. 몇년 전 홍콩에서 판 화선지작품에 불평이 들어왔단다. 화폭 뒤쪽에 핀 곰팡이 때문이었다. 한국에선 없던 일이다. 습한 기후 탓에 풀로 한 배접이 문제려니 했지만 그것도 추측일 뿐. 어쩐다? 최 작가의 대안은 이랬다. “판을 바꾸자.” 이후 적어도 홍콩으로 나갈 작품에는 서양종이를 깔았다. 어찌 쉬운 일이었겠나. 점 하나를 찍어도 종이가 다르면 다른 번짐이 나오는 법인데.


‘바르셀로나 찬송’(2017), ‘에르미타주의 두 남자’(2017), ‘프라하의 아티스트’(2017) 등. 마치 여행자의 공간찾기인 듯한 작품 16점을 걸었다. 1㎜ 세필 그림 한 점을 그리는 데 두 달은 족히 걸린단다. 테마인 ‘성실한 순례’가 맞다. 굳이 종교적인 성지를 좇는 것만이 순례가 아니니까. 전시는 7일까지.


△0.41㎜ LED로 창조한 햇살…황선태 전

불투명한 유리판에 초록색 실선. 대략 그어낸 인테리어 디자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끝이 아니다. 반전은 스위치에 있다. ‘온’으로 전환한 순간 빛이 생긴다. 차가운 유리공간에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는 거다.


작가 황선태는 선과 빛으로 공간을 창조한다. 흔히 지나칠 평범한 장소에 선과 빛을 입혀 온도를 높인다. 도구는 유리와 LED다. 우선 사물을 스케치하고 컴퓨터로 라인작업을 한다. 깎고 자른 강화유리에 작업한 이미지를 입힌 뒤, 이어 빛을 붙이고 그림자를 덧대면 완성. 황 작가가 쓰는 빛은 LED다. 특히 전시작은 LG디스플레이가 후원한 0.41㎜ OLED를 사용했단다. 휘기도 하고 얇기도 하고 넓은 판처럼 돼 있는데다가 발열온도도 낮은 “첨단조명이 따로 없다”. 첫 작업에 형광등을 사용했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인 셈이다.


연작 ‘빛이 드는 공간’(2017)을 메인으로 삼고 유리책의 낱장처럼 작업한 소품 ‘낯선 글자들’(2017), ‘낮잠’(2017) 등 24점을 선뵌다. 이번 전시에선 특히 해질 무렵의 노란빛에 주목했다. 햇살에 붉은 기운이 돌고 그림자가 길어졌다면 날이 저무는 거다. 실내가 아닌 실외 작품도 한 점 나왔다. 가로등이 비추는 골목길 전경이다. 자연조명에서 인공조명으로 영역을 확장할 모양이다.


어쩌다 유리판과 씨름하게 됐나. 독일 유학 중이던 어느 날. 책상 위 올려둔 유리판에 햇빛이 들어온 순간 드로잉이 보였던 거다. “이거다!” 싶었단다. 이후 유리로 작업하며 만들 수 있는 시행착오를 죄다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이젠 손에 착 붙는다. 100호 정도라면 한 주면 완성을 본다.

빛의 밀도는 늘 신경쓰이는 대목이란다. 철학은 ‘과유불급’. “좋다고 과하게 쓰면 싸구려처럼 보이게 되니까.” 단순하고 미니멀한 공간이 드라마틱한 생명력을 얻는 건 딱 한 과정이다. 햇살의 찰나를 잡아낸 몰입. 작가는 멈췄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움직였다고 본다. 전시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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