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D-88] 월드컵 1차대회 매스스타트 우승
중반까지 중위그룹 머물다가 마지막 바퀴 4위서 1위로 질주
곡선 주로 안쪽 집요히 파고드는 '쇼트트랙 DNA'가 위력 발휘
팀 추월서도 금메달 따 2관왕
이승훈 |
'매스스타트 세계 최강자' 이승훈(29·대한항공)은 중위권에 있을 때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레이스 막판 속력을 끌어올린 그는 곡선 주로를 돌 때마다 집요하게 안쪽을 파고들었고, 순식간에 2~3명을 휙휙 제쳤다. 체력과 기술,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까지 모든 면에서 '클래스'가 달랐던 그는 금메달을 목에 걸며 평창올림픽 시즌의 첫 스타트를 기분 좋게 끊었다.
12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의 티알프 인도어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7~18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차 대회 남자 매스스타트 결승전. 경기 중반이 지나도록 이승훈은 중간 그룹에 머물며 팬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16바퀴 중 단 3바퀴를 남기고 이승훈의 본격 레이스가 시작됐다. 그는 선두로 치고 나간 요릿 베르흐스마(31·네덜란드)의 뒤를 바짝 붙으며 역전의 기회를 노렸다.
막판 1바퀴를 남기고 이승훈은 4위로 다시 밀려나는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쇼트트랙 선수 출신인 그는 '쇼트트랙 DNA'로 대역전극을 만들었다. 마지막 바퀴 첫 곡선 주로에서 그는 안쪽 코스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매끄러운 코너링을 하며 단숨에 2명을 제쳤다. 레이스의 마지막 곡선 주로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선두 조이 맨티아(31·미국)를 가볍게 따돌렸다. 결승선을 10m가량 앞둔 그는 금메달을 확신한 듯 오른손 검지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여유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쇼트트랙에서 터득한 코너링과 자리 다툼 기술은 이번 대회에서도 100% 효과를 발휘했다. 지정된 레인(인코스 또는 아웃코스)을 몸싸움 없이 달리는 데만 익숙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쇼트트랙 기술을 장착한 이승훈의 '밀착 코너링'에 속수무책으로 길을 터줬다. 빙속 국가대표 출신 나윤수(55) 관동대 교수는 "쇼트트랙에서 코너 워크를 단련한 이승훈은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곡선 구간을 물 흐르듯 질주한다"고 했다.
이승훈(앞)이 12일 열린 1차 월드컵 남자 매스스타트 결승 마지막 바퀴에서 미국의 조이 맨티아를 제치면서 달려나가고 있다. 쇼트트랙 선수 출신답게 막판 예리하게 코너를 도는 기술을 활용해 짜릿한 역전극을 일궜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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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으로 스케이트화를 처음 신은 이승훈은 스물한 살 때인 2009년 쇼트트랙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하는 모험을 했다. 실패할 거란 주변의 우려와 달리 그는 2010 밴쿠버올림픽 1만m 금메달과 5000m 은메달, 2014년 소치올림픽 팀추월 은메달을 따냈다. 집과 훈련장밖에 모르는 모범생인 그는 평창올림픽에서 새롭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노린다. 지난 6월엔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올림픽을 준비하겠다"며 6년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을 했다.
밴쿠버올림픽에서 그를 지도했던 김관규(50) 전 대표팀 감독은 "밴쿠버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던 선수가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 정상을 유지한다는 건 웬만한 정신력과 자기 관리로는 불가능하다"며 "이승훈이 평창에서도 좋은 소식을 전해줄 걸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승훈은 전날 열린 팀 추월에서도 김민석(18·평촌고3)·정재원(16·동북고1)과 금메달(3분40초20)을 합작했다. 처음 국가대표팀에 승선한 막내 정재원은 이승훈과 이번 대회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으나, 배짱 있는 레이스로 주목받았다. 주니어 시절'장거리 괴물'로 불린 정재원은 매스스타트에서도 동메달을 따며 평창 메달의 전망을 밝혔다.
1차 월드컵을 마친 한국 빙속 대표팀은 노르웨이 스타방에르로 이동해 오는 17일(현지 시각) 개막하는 2차 월드컵에 출전한다. 월드컵 1~4차 결과를 바탕으로 평창올림픽 출전 선수가 가려진다.
☞매스스타트(mass start)
스피드스케이팅 종목. 최대 24명이 지정된 레인 없이 동시 출발해 순위를 가린다. 남녀 모두 400m트랙 16바퀴를 돈다. 4·8·12바퀴째 1~3위에 각각 5·3·1점을 줘서 '눈치보기 느림보 레이스'를 방지한다. 최종 1~3위에 60·40·20점을 주므로 중간 점수 때문에 금·은·동메달이 바뀌지는 않는다. 평창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김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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